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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기 [47] 독일 제12신 : 놓칠 뻔한 헤렌베르크Herrenberg, 판타지 가도의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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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12-24 14:32 조회 1,601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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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제12신 : 놓칠 뻔한 헤렌버그Herrenberg, 판타지 가도의 진주


 10월 4일 화요일. 여전히 비가 내린다.
 일어나 호텔 창문을 여니 울창한 나무들에 가린 동네 주택들은 이미 깨어나 연기를 내뿜고 있다. 빗속에서도 모이 찾기에 부지런한 참새들. 칼브를 떠나야 하는가. 참새들처럼 또 무언가를 찾으려고.
 칼브에서 우리는 헤세의 꿈과 고뇌를 느낄 수 있었다. 지금보다 그 때는 훨씬 울창하고 고적한 시골마을이었으리라. 도심 그득 공룡같이 웅크리고 앉은 마켓과 주차장도 없었을 것이고, 가끔 말발굽 소리들만 돌 포장길을 울리며 지나다녔을 것이다. 그 속에서 어린 헤세는 바깥세상을 부단히 동경했을 것이다. 고향에 갇혀있던 그가 여행을 통해 자아를 깨달았던 것일까.
 나도 그랬다. 어린 시절, 나는 늘 ‘탈출’을 꿈꾸었다. 보이는 건 소나무와 황토 뿐. 내가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은 아무데도 없는 듯 했다. 그 후 고향으로부터의 탈출에 성공은 했으나, 아직도 나는 내 자아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것이 헤세와 나의 차이다. 우리는 헤세에 대한 그간의 신비감이나 환상을 접기로 했다. 한 때 우리들의 소년기를 지배했던 그를 이제 현실로 끌어내리기로 작정했다.
 그래서 오늘,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르며 다시 길을 나선 것이다.  

             ***

 11시 40분. 칼브의 인포메이션 센터에 마지막으로 들렀다. 우리가 어제까지 탐색한 것 이외에 무언가 더 있을지도 모른다는 한 가닥 미련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었다. 떠나는 마음이 오히려 홀가분했다.
 매력적인 대학도시 튀빙겐을 향하는 마음이 느긋하고 즐거웠다. 1477년에 설립된 명문대학. 세계의 수재들이 몰려드는 이곳을 찾아보는 것이 내 오랜 소망이었다. 하이델베르크와 튀빙겐 대학. 네카강으로 연결되는, 독일 서부지역의 세계적인 명문대학들. 대학을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된 점, 성벽 근처에 위치해 있다는 공통점 외에, 두 학교 모두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학생감옥을 갖고 있었다는 점도 흥미롭다. 그런 튀빙겐으로 달려가는 길이니 기대가 클 수밖에.

          ***
 
 안개 자욱한 296번을 타고 달렸다. 한동안 달리는데, 눈앞에 신기루처럼 나타나는 게 있었다. 아름다운 목조건물들 사이로 양파 모양의 탑이 솟은 교회였다.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튀빙겐에 대한 갈망을 잠시 미루고 우린 그 도시로 들어갔다. 12시 20분. 빙빙 돌다가 주차한 곳이 마르크트 광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길가 주차장이었다. 양파 모양의 탑을 찾아 올라가니 시청과 호텔, 상가 등으로 둘러싸인 광장이 나왔다. 광장 중심에는 사자 한 마리가 사나운 표정으로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교회는 시청 바로 뒤의 비탈진 곳에 우뚝 솟아 있었다. 교회와 시청의 위치. 흡사 어머니가 아이를 앞세우고 보호하는 형국이었다. 유럽 기독교의 역사와 관련지어 생각하니 두 건물의 위치나 관계가 흥미로웠다.
 슈티프트 교회Stiftkirch. 가톨릭 아닌 프로테스탄트였다. 교회는 가까이 갈수록 거대했다. 산에 오르는 듯 장엄했다. 올라가니 온 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왔다. 생각보다 시가지는 넓게 퍼져 있었다. 들판 한 가운데로 강이 흐르고, 시가지는 강 건너에까지 번져 있었다. 이 도시가 범상치 않은 곳임을 그제서야 깨닫게 되었다.
 안에 들어가기 전 우리는 교회를 한 바퀴 돌았다. 옛날에 쓰던 종 두 개가 뒤뜰에 전시되고 있었다. 주추나 기둥, 건축양식 등은 지금까지 보아오던 성당이나 교회들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안으로 들어갔다. 추수감사절 예배에 쓰였음직한 각종 곡물들이 강대 주변에 그득했다.
 외관에 비해 좌석의 규모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단정함과 중후함이 느껴졌다. 이상한 건 예수님의 고상이 강대 앞에 걸려 있는 점이었다. 현관으로 나아가니 나이 지긋하신 어른 한 분이 책을 읽고 있었다. 목사님으로 생각되는 그 분께 몇 마디 여쭈었다. ‘이 교회는 가톨릭인지 프로테스탄트인지, 프로테스탄트라면 왜 예수고상을 강대 앞에 안치해 두었는지, 이 지역에서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교세는?’ 등등이었다. 먼저 가톨릭 교회였다가 200 여 년 전부터 프로테스탄트 교회로 바뀌었다고 한다. 시내에 있는 큰 교회 둘은 모두 프로테스탄트이며 가톨릭은 오히려 시 외곽에 새로 지은 교회들을 갖고 있다는 것, 지금 양 측 사이에 큰 갈등은 없으며,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에서도 예수고상을 흔히 모신다는 것 등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헤렌베르크의 가장 두드러진 이정표 역할을 하는 이 교회는 1293년에 지어졌고, 1493년에 외면의 개·보수 작업이 완성되었다. 당시 이 교회는 뷔르템베르크 주의 교회들 중 첫 고딕양식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양파 모양의 탑이었다. 1749년 두 개의 고딕양식 탑들이 철거되고 궁정의 바로크 양식으로 대치되었다. 이 때 양파모양의 탑은 선을 보인 것이다. 그런데 이 교회가 서 있는 곳의 지질이 연약하여 약간씩 이동한다고 한다. 교회의 건물과 지반이 한 해에 1mm씩 구 시가지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 1971년과 1982년 사이에 대대적으로 개·보수를 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

 도시는 조용했다. 가는 곳마다 득실대던 관광객들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가게들은 열려 있지만, 물건 사는 사람들을 볼 수가 없었다. 교회의 사진이 나온 우편엽서를 구하려 했으나, 파는 곳이 없었다. 그러나 이 도시가 우리들의 마음에는 꼭 들었다. 깊은 역사적 향기를 지닌, 조용한 도시 헤렌베르크. 튀빙겐을 가다가 우연히 들른 이곳에서 우리는 잔잔한 감동을 받았다.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그 갈등의 역사 또한 훔쳐볼 수 있었다. 그래서 이곳이야말로 우리에겐 이 지역의 감추어진 보배였다.
<계속>
 
**사진 위는 헤렌버그의 프로테스탄트  슈티프트 교회, 아래는 시청광장의 아름다운 상가 


2005-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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