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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기 [169] 크로아티아 제2신(1) : 하루 종일 구름 좇아 황무지를 달렸네-드브로브닉 가는 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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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2-01-04 14:50 조회 78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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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 제2신(1) : 하루 종일 구름 좇아 황무지를 

                              달렸네-드브로브닉 가는 길(1)



 11월 29일 아침 9시. 밤새 내린 찬비에 푹 젖은 카를로바치의 아침. 차창은 얼어 있었다. 서둘러 드브로브닉 행에 나선 우리. 그곳에 가기 위해선 또 한 곳을 거쳐야 한다. 스플릿Split. 카를로바치에서 380km가 넘는 거리다. 서울에서 대구 쯤 될까. 더구나 오늘처럼 눈과 비가 교대로 내린다면, 스플릿 가기에만도 벅찬 하루였다. 

 그 뿐인가. 동네를 빠져 나오는 길에 그만 엄청난 것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이곳에 들어오던 어젯밤, 어둠으로 미처 보지 못한 격전의 유물들이 한 바닥 그득 남아 있었다. 우리가 곤한 잠에 빠져 있던 동네 어귀였다. 운 좋게도(?) 크로아티아 내전의 비극, 그 마당 한 가운데 서게 된 것. 아무리 에머럴드빛 아드리아 바다가 유혹해도 우리는 가던 길을 멈추어야 했다. 동네 한 복판엔 격전의 와중에 죽어간 이웃들의 위령비가 세워져 있고, 그 앞엔 채 시들지 않은 꽃들이 찬비를 맞고 있었다. 

 포탄과 총탄에 날아간 지붕, 허물어진 벽. 건물들의 처참한 잔해, 서너 개. 집중공격을 받은 듯. 아마도 이 언덕에 이 마을의 지역사령부라도 있었던 걸까.

 벽돌에 새겨진 탄흔을 만져 보았다. 열기는 이미 식고 돌의 껄끄러움만 구멍 가득 살아 있었다. 언덕 위 공터에는 각종 무기들이 놓여 있었다. 대공포, 장갑차, 기관총 등등. 그 가운데 가장 생생한 비극을 증언하는 것은 바로 구겨지고 찢어진 소형 비행기의 잔해. 하늘을 날아 사람들에게 가슴 서늘한 무서움을 안겨주던 그 비행기는 악동들의 장난감마냥 함부로 ‘짓이겨져’ 있었다. 동체를 지탱하던 철사와 알미늄 판들은 제멋대로 휘어져 있고, 날개도 어디론가 떨어져 나가고 없었다. 비행기는 그냥 그렇게 가슴을 파헤친 채로, 그 언덕 위에 죽어 있었다. 죽어서 인간들의 어리석음과 탐욕을 증거하고 있었다.

 언덕을 내려오니 큰 간판이 서 있었다. 이곳에 뮤지엄을 만들겠다는 계획. 기발한 생각이었다. 그래야지. 물건들의 열기가 채 식기 전에 내전의 참혹함을 보여주어야 하리라. 포신을 하늘로 겨눈 채 말없이 누워있는 저 대포도 아마 비극적 서사(敍事)를 신나게 읊어댈 것이다. 크로아티아 사람들 뿐 아니라 세계인들은 포신을 어루만지며 그 서사를 들을 것이다. 그러면서 전쟁의 참혹함에 몸서리를 치겠지만,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 다음엔 또 어쩔 수 없는 싸움에 휘말리기도 할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그렇게 진행되어 왔다. 전쟁을 막는다는 명분 아래 더 큰 전쟁을 벌이는 인간의 어리석음. 이 언덕에 끔찍한 뮤지엄을 만든다고 어찌 그런 어리석음의 역사가 종식될 수 있을까. 


<계속>


**사진 위는 크로아티아 내전 격전지 유물(찢어지고 구겨진 전투기), 아래는 칼로바치City of Carlovac의 숙소근처의 코라나Korana강과 안개


2005-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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