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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기 [170] 크로아티아 제2신(2) : 하루 종일 구름 좇아 황무지를 달렸네-드브로브닉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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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2-01-04 14:53 조회 665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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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 제2신(2) : 하루 종일 구름 좇아 황무지를 

                              달렸네-드브로브닉 가는 길(2) 



내전의 잔해들과 작별하고 언덕을 서둘러 내려온 것은 다름 아닌 안개 때문이었다. 이미 들어찬 안개. 그러나 언덕 아래로부터 새로운 안개는 다시 피어오르고 있었다. 코라나Korana 강. 그 강은 열심히 안개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복판에서, 버드나무들 사이에서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김이 소담스러웠다. 그 김이 모여 안개가 되고, 한곳에 모인 안개는 슬금슬금 언덕을 기어오르고, 종당엔 공중으로 올라가 구름이 되는 것이었다. 변덕스런 크로아티아 날씨의 비밀을 코라나 강은 우리에게 알려 주었다. 

 카를로바치에서 A1 고속을 타고 스플릿으로 달리는 길은 고원(高原)의 연속이었다. 먼 산 높은 봉우리의 눈 더미에서 피어오르는 구름은 저지대의 강들에서 피워 올린 안개와 합세하여 더 검고 무거운 구름으로 바뀌고 있었다. 터널 하나를 지날 때마다 온도 차이는 4-5도씩 벌어졌다. 비와 눈이 번갈아 내리는 것도 그 때문. 5-6km가 넘는 터널 여럿, 심지어10km가 넘는 터널을 지날 때도 있었다. 돌산을 뚫어 터널을 만든 크로아티아인들의 저력. 새삼 아드리아해를 따라 가는 이 고원의 국토를 독차지한 이유를 알만했다. 

 저 산 바깥에 늘 대기하고 있는 구름들. 시시때때로 비요 눈이요 뿌려주어 크로아티아의 아름다운 자연을 가꾸고 있었다. 그 비 덕분인가. 고산 지대의 침엽수림이 볼만했다. 아내의 검은 머리털 속에 새치 보이듯 간간이 희고 늘씬한 자작나무들도 더러 섞여 있었다. 아름답고 독특한 자연이었다. 

 고원을 달리는 넓은 길. 아무도 없는 길을 우리는 외로이 질주했다. 모두들 어디로 간 것일까. 하기야 이 추운 겨울 바다를 만나겠다고 달려가는 얼간이는 아마 우리뿐일 걸? 이 길도 여름엔 밀려드는 차량으로 쉴 틈이 없을 것이다.

 얼마나 달렸을까. 큰 고개를 넘어 내리막길을 탔다. 내려가는 품으로 미루어 바다가 가까워진 듯. 그런데 산 모습과 식생이 달라졌다. 사막지대에 들어선 것이었다. 사방을 둘러보니 흡사 미국 캘리포니아 모하비 사막 한 복판을 달리던 느낌, 바로 그대로였다. 돌투성이의 산에 틈틈이 자라는 키 작은 식물들. 죠슈아 트리(여호수아 나무)라고 불리던 키 큰 선인장만 없을 뿐, 모두 사막 지대의 그것들이었다.

 사막지대는 곧 대평원으로 연결되었다. 평원에는 떡갈나무가 주종인 키 작은 활엽수림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제야 단풍이 드는가, 보라색 가까운 주황 일색. 윤기가 흘러서 고왔다. 곧 닥쳐올 봄엔 어떻게 하려고 한 겨울에 접어든 지금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가. 

 황무지. 그렇다. 아주 오랜 옛날 언젠가 이 평원에선 생명의 향연이 베풀어졌을지도 모른다. 울창한 수림과 그 사이를 뚫고 다니는 동물들이 우글거리던 시간대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불임의 삭막함으로 변해버린 그 생명의 현장. 그렇게 모든 건 변하는 법이다. 한 순간도 쉼 없는 순환과 변화의 고리 속에 우리도 나고 죽는 것이다. 그 자연의 이법을 이 황무지는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는 황무지 밖 지평선 너머의 구름을 향해 달렸다. 하늘이 가까운 이 곳. 그리고 그 속에 떠 있는 구름. 흡사 손에 잡힐 듯 했다. 아내는 그 구름이 흡사 성당의 프레스코 화 같다고 했다. 듣고 보니 그럴 듯 했다. 그 화가들도 어쩌면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구름들의 대향연을 모티프로 삼았을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유럽 성당들을 장식하는 천정의 프레스코 화. 뭉게구름 사이에 천국을 그리는 것이 공통의 구도였다. 예수와 성인들, 천사들이 구름 궁전을 누비는 서사의 세계를 우리는 그들 프레스코 화에서 발견해 왔다. 

 황무지의 미학이랄까. 우리는 크로아티아에서 자연이 구현해낸 거대 예술을 목격했다. 제대로 된 곡식 한 톨, 쭉 뻗은 교목 한 그루 키워내지 못하는 돌투성이의 황무지. 끝없이 달려 나가는 길, 그 소실점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는 구름궁전. 그러나 막상 달려가 보면 구름궁전은 다시 저 멀리 달아나 있고, 그 자리엔 한 줌의 허무만 남아 있었다. 그걸 확인하고 싶었던 걸까. 참으로 먼 길을 달려 온 우리였다.


<계속>


**사진 위는 크로아티아의 칼로바치에서 스플릿Split으로 오는 도중 만난 산과 들, 그리고 구름, 아래는 칼로바치에서 스플릿Split으로 오는 도중  스타리그라드Starigrad 근처에서 처음으로 만난 아드리아해


2005-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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