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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기 [172] 에피소드 7 : 부다페스트에서 만난 검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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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2-01-04 14:56 조회 80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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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다페스트에서 만난 검표원



 부다페스트에서의 일. 데아크 광장 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도나우 건너편 모스크바 광장으로 가던 길이었다. 환승역인 옥토곤에 도착하기 직전 역 구내의 벽에서 우리나라 대기업 S사의 멋진 광고판을 발견했다. 옥토곤역에 내린 우리. 혹시 이 역에도 붙어있나 하고 두리번거리며 그 회사의 광고판을 찾았다. 

 잠시 후 팔에 완장을 찬 두 사내가 다가왔다. 만면에 미소를 머금었지만, 태도는 자못 단호했다. 표 좀 보잔다. 역 구내를 배회하는 동양인들을 발견하곤 무임승차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그들 나름대로 판단한 모양이었다.

 사실 우리는 이런 기회가 오길 기다렸다. 검표원이 어디선가 불쑥 나타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고, 그 사람들의 모습을 찍어두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이들을 불시에 만난 것이었다.

 나는 S사의 광고판 사진을 찍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나 쥬라기 공원에서 몸에 피를 묻히고 다니다 무서운 공룡 티라노를 불러들이듯 괜히 역 구내를 배회하다가 검표원을 불러들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사람들인가. 하루 세 끼 밥 먹듯 정확하게 법을 지키며 살아온 사람들이다. 더구나 표 검사를 않는다 하여 무임승차할 배포조차 갖지 못한 위인들이다.

 우리는 시내에 나오기 전 3일짜리 부다페스트 카드를 끊어 두었다. 그 카드만 지니면 대중교통요금은 모두 무료. 어차피 자동차는 주차장에 고이 모셔두고 다리품을 팔거나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그 카드를 사 두었던 것이다. 그 카드를 사고 나서 우리는 ‘제발 검표원이 우리에게 표 좀 보자고 했으면 좋겠다’는 농담까지 하고 다닌 터였다.   그러나 막상 표 제시를 요구받게 되자 기분이 나빠진 건 사실이었다. ‘동양인이라고 우습게 보는 것인가?’라는 좀스런 마음도 슬그머니 드는 것이었다. 어쨌든 우리는 그 카드를 자랑스레 내 보였다. 그러자 그들은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땡큐’를 연발하며 사라졌다. 사라지고 나서야 내가 그들을 카메라에 담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모스크바 광장 역에서 트램으로 바꾸어 타고 영웅광장으로 가던 중 검표원을 또 만났다. 단 몇 시간 만에 두 번씩이나 걸린 것이다. 이번에도 그 카드가 유효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우리 옆에 있던 한 아가씨는 걸리고 말았다. 아마 거액의 벌금을 물게 되었을 것이다. 


             ***


 서유럽에도 가끔 검표원이 출몰한다는 소문을 들은 바 있다. 그러나 실제로 목격했거나 맞닥뜨린 일은 없다. 그 뿐 아니라, 예컨대 스위스나 오스트리아 같은 데서는 유효기간 안의 통행권을 부착한 차만 고속도로를 이용할 수 있었다. 만약 붙이지 않았거나 기한이 넘었을 경우 거액의 벌금을 물게 된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그런 나라들에 들어가자마자 그것들부터 사서 자동차의 앞 유리에 붙이고 다녔다. 그러나 어디서도 검표원을 만난 적은 없다.

 서유럽의 나라들에서 트램을 타든 버스를 타든 지하철을 타든 표 검사를 하는 경우를 아직 본 적이 없다. 그만큼 국민들은 규정을 잘 지키고 관은 국민들을 믿기 때문인 듯 했다. 꼬박꼬박 표를 끊어서 승차하지만, 한 번도 표를 보자는 사람이 없어 가끔은 ‘표를 살 필요가 없는 게 아닌가’ 착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러나 비극은 늘 순간에 찾아오는 것. 1년 내내 표를 사가지고 승차하다가 마지막 날 하루 무임승차할 경우 걸릴 수도 있는 법. 그 경우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을 것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늘 1%의 ‘만약’에 대비하기로 했다.   


             ***


 그런데 왜 동양인들이 주로 검표원들의 표적이 될까? 들리는 말에 의하면 동양인 관광객들이 무임승차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다니다 보면 구조적으로 무임승차의 유혹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다.

 대부분의 역에 설치된 승차권 무인판매대는 동전만 사용할 수 있다. 난감한 것은 호주머니에 동전이 없는 경우. 더구나 우리나라처럼 도처에 구멍가게라도 있어서 동전을 바꿀만한 환경이라면 별 문제 없을 것이다. 시간을 다투는 배낭 여행자들과 우리처럼 ‘있는 건 시간밖에 없는’ (?)사람들과는 사정이 다를 수도 있다. 무임승차의 유혹은 그럴 때 생기는  듯 하다. ‘이번 한 번이야 무슨 문제 있으랴?’ 라는 안이한 생각. 그러다 운 나쁘게 걸려서 국제 망신까지 당하는 건 아닐까. 

 검표원의 수시 출몰에 대하여 아내는 독특한 의견을 갖고 있었다. 공공 교통기관의 적자 보전책일 것이라고. 무임승차 1회의 벌금은 정규 요금의 무려 10배 이상이었다. 그러니 무임승차 1명만 잡으면 열사람 이상의 요금을 받아내는 셈이니 그게 어디냐는 것이다. 우리나라나 파리의 지하철과 달리 개방형으로 만들어 놓은 곳들은 대부분 무임승차를 유도하는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는 분석이었다. 곰곰 생각해보니 그럴 듯한 생각이었다. 


             ***


 검표원의 출몰을 보면서 ‘정직이 최상의 정책’이란 서양의 속담을 생각한다. 푼돈 아끼려고 잠시라도 가슴 졸이며 살아야 한다면, 그 얼마나 큰 고문인가. 거칠 것, 걸릴 것 없이 ‘발 뻗고’ 살아가려면 최소한 규정만은 지켜야 한다. 지금도 지하철 안을 배회하고 있을 검표원들이야말로 우리들에게 ‘양심의 종소리’를 들려주고 싶은지도 모른다. 정직하게 사는 게 최고라고.

 

<계속>


**사진 위는 부다페스트 모스크바광장 앞의 트램, 아래는 부다페스트-지하철 영웅의 광장 역 표지


2005-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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