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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기 [175] 여행단상 15 : 식탁 앞에 앉아 코 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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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2-01-04 15:03 조회 92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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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탁에 앉아 코 풀기



 밥 먹을 때 소리를 내면 안 되었다. 아무리 맛있어도 ‘짭짭거리며’ 먹어선 안 되었다. 말을 많이 해도 안 되고, 밥상 앞에서 물을 머금어 입을 헹구는 일은 절대 금물. 어릴 적부터 엄하게 배워온 우리네 밥상 예절 중의 일부다. 


             ***


 유럽 여행을 하면서 이곳 사람들과 한 공간에서 식사를 하게 될 때가 종종 있다. 아침식사가 제공되는 호텔이나 펜션, 모텔 등의 아침식사 시간. 그리고 간혹 들르는 레스토랑에서의 점심이나 저녁시간 등이다. 그들이 무얼 시켜 먹든, 어떻게 먹든 그건 우리가 관여할 바가 아니다.

 그러나 참으로 이해할 수 없고 참기 어려운 점 하나가 있다. 그들은 식당에 들어오자마자, 아니 식탁에 앉기가 무섭게 코를 풀어댄다는 사실이다. 길을 다닐 때도 심지어 화장실에 들어가서도 이들이 코를 푸는 모습을 목격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이들은 식탁에만 앉으면 거리낌 없이 코를 ‘팽팽’ 푸는 것이었다. 그 점에 대하여 누구에겐가 물었더니, 유럽에서는 그게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는 것. 우리가 느끼기엔 ‘단순히 문제 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권장사항’(?) 쯤 되는 듯 했다. 


             ***


 독일 메어스부르크에서의 아침 식사 시간. 열 팀 가까운 사람들이 한 레스토랑에 앉아 아침식사를 하게 되었다. 동양인은 우리 내외뿐. 예절을 지킨답시고 나이프와 포크가 접시에 부딪쳐 소리라도 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던 우리. 말소리도 조심조심 낮추었다.

 그런데 어느 팀의 누군가가 코를 ‘팽!’하고 풀었다. 그러자 연이어 이곳저곳에서 코들을 ‘팽! 팽!’ 풀어대는 것이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리고 식당에 들어올 때까지 무던히도 참고 있었다는 듯. 말하자면 식당은 그들에게 음식도 먹고 ‘코도 푸는 장소’인 셈이었다. 

 우리는 참으로 난감했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이 녀석들이 우리를 뭘로 보고 이렇게 ‘야만적인’ 짓거리들을 벌이고 있는 것인가. 당혹스러우면서도 우스꽝스런 ‘오랑캐들(?)’의 행동. 우리 둘은 서로 마주보고 어이없는 웃음이나 지을 뿐이었다. 

 그러나 유럽생활에 어지간히 익숙해진 지금. 식탁에서 코를 푸는 그들의 모습이 낯설지도 이상하지도 않게 되었다. 그들의 관습이려니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우리 스스로는 그런 행위를 용인할 수도 따라 할 수도 없다. 식탁 아니라 식당 근처에서일지라도 결코 그들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코를 풀 수는 없다. 내 비록 코스모폴리탄을 자처하는 입장이지만, 식당에서 코 푸는 일만큼은 결코 허용되어서는 안 되리라 본다. 코의 내용물을 생각하면 도무지 입에 든 음식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질 않는 것이다.  


             ***


 종족이나 나라에 따른 관습의 차이란 참으로 크다. ‘인지상정(人之常情)’이란 말이 있다. 인간이기 때문에 보편적으로 갖게 되는 공통의 정서가 그것. 기본적인 일곱 가지 정서(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야 동양인이나 유럽인 사이에 차이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오랜 세월 서로 다른 환경 속에 살아오며 서로 다른 문화를 가꾸다 보니 많은 차이들이 생겨났을 것은 당연한 이치. 그런 차이가 가끔씩 나그네를 당황케 하는 것이다. 

 오늘 크로아티아의 한 레스토랑에서 그들의 코 푸는 소리를 들으며 문득 생각해 보았다. 

<계속> 


**사진 위는 11월 26일 부다페스트 바치거리의 안나까페의 모습, 아래는 10월 31일 바하우계곡 쇤뷔헬의 게스트호프 슈툼퍼 Gasthof Stumpfer의 아침식사


2005-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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