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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기 [214] 터키 제1신(6) : 공존과 조화, 그리고 발효의 공간-이스탄불(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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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2-01-05 00:49 조회 950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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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제1신(6) : 공존과 조화, 그리고 발효의 공간-이스탄불(6) 



3시가 되어서야 우리는 본당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엄청난 넓이였다. 51m×53m, 정사각형에 가까운 모양이었다. 벽면은 대략 파란색과 녹색. 그래서 이 사원을 블루 모스크라 부르기도 한다. 본당의 바닥에 의자가 있는 교회와 달리, 이 사원엔 카펫이 깔려 있었다. 기도시간이 끝났음에도 그곳에 꿇어앉아 기도를 올리는 모슬림들이 있었다. 본당 중앙 돔은 43m 높이에 직경이 23.5m나 될 만큼 거대했다. 그 천정엔 햇살로 보이는 문양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주위로 돌아가며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된 창문들이 있었다. 창문이 그곳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벽에 다섯 줄, 본당에만 모두 260개의 창문이 달려 있었다. 밖으로 나왔다. 밖엔 여섯 개의 첨탑이 본당을 호위하고 있었다. 터키의 모스크 중 6개의 첨탑을 가진 경우는 이곳이 유일하다고 했다. 잠깐 눈을 돌리니 보스포러스의 푸른 물이 발 아래 넘실거린다. 사원 앞쪽에 바라보이는 아야소피아와 대척점에 놓이면서도 그보다 훨씬 생동감 넘치는 것은 지금 ‘살아있는’ 사원이기 때문이리라. 본당 안은 따뜻했다. 붉은색 카펫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곳엔 열정적인 몸짓으로 무언가를 기구(祈求)하는 모슬림들이 있었다. 그 기원의 열기가 우리에게 전해져 왔다. 절대자에게 간구하는 모습은 텅 빈 공간의 냉기를 제어하고 있었다. 그 힘을 우리는 분명 느꼈다. 

 모스크를 빠져나와 건너편의 아야소피아를 향했다. 비잔틴 시대에 건축된 가톨릭 성당. 537년 완공되어 비잔틴 제국이 멸망하기 916년간 교회로 사용되었고, 오스만 제국이 이스탄불을 장악한 1453년부터 1934년까지 480년 이상을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된 곳이다. 터키의 국부 아타튀르크의 명령으로 대규모 복구 사업을 벌임으로써 비로소 빛을 보기 시작한 모자이크 성화(聖畵)들이 그곳에서 빛나고 있었다. 오스만 제국이 이스탄불을 정복하자마자 모슬림들은 이곳을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했다. 모자이크 성화들은 모두 석회로 덧칠해졌으며, 십자가 형상들은 모두 철거되었다. ‘아야’는 ‘성스러움’을, ‘소피아’는 지혜를 뜻한다. 말하자면 ‘성스러운 지혜’라는 뜻일 것이다. 가톨릭에서 신에게 봉헌한 세 항목 ‘지혜, 평화, 힘’ 중의 하나가 그것이라 한다. 그 얼마나 멋진 이름인가. 그러나 나라가 멸망하니 교회마저 설 자리를 잃어 모슬림들에게 접수되고 만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무수한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시대를 읽을 줄 알던 아타튀르크의 용단으로 다시 옛 모습을 되찾게 된 아야 소피아였다. 성당으로서의 본 모습이 아니라 옛 모습을 보여주는 박물관으로 태어나게 된 것이었다. 1935년의 일이었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도 석회 덧칠 제거 작업은 진행 중이었다. 우리는 본당 내부의 웅장한 규모와 분위기에 압도당해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파이프 오르간의 웅장한 연주에 맞추어 미사가 진행되고 있어야 할 성스러운 공간. 텅 빈 채 나그네들의 발자국 소리와 카메라 플래시의 불빛만 번쩍이고 있는 현실은 분명 비극이었다.

<계속>


**사진 위는 이스탄불의 아야소피아, 아래는 아야소피아 벽의 모자이크 예수 그림 원화(이슬람에 의해 덧칠된 석회의 일부가 벗겨진 상태임)


2005-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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