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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기 [226] 터키 제2신(7) : 암굴(巖窟) 속에 꽃 핀 인간의 생존본능-카파도키아의 충격(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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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2-01-05 01:00 조회 916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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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제2신(7) : 암굴(巖窟) 속에 꽃 핀 인간의 생존본

                     능-카파도키아의 충격(7)



전체 8층 가운데 5층까지 내려갈 수 있었다. 흡사 개미굴 같았다. 페르시아와 아랍인들의 침입으로부터 자신들을 방어하기 위해 6세기부터 10세기에 걸쳐 건설된 것이 이곳의 지하도시였다. 가파르고 좁은 통로가 각 층을 연결하고 있었으며, 각 세대마다 거실과 침실은 물론 와인을 제조하고 저장하던 시설까지 갖추고 있었다. 공동 주방 및 식당, 교회, 까페 또한  마련되어 있었다.

 각 방마다 아래층과 교신을 할 수 있는 구멍이 뚫려 있었으며, 맷돌도 보였다. 거실 천정에 갓난아기의 요람을 걸 수 있는 구멍이 나 있는 것으로 보아, 그들은 상당 기간 지하에서 생활했음을 알 수 있었다.

 좌우, 상하로 연결된 통로는 끔찍한 미로였다. 세대와 세대 사이, 층과 층 사이를 맷돌 모양의 문으로 잠그기라도 한다면 꼼짝 할 수 없었다. 비상문을 잠글 경우 침입자는 암흑 속에서 헤매다가 보안요원들에게 잡히거나, 함정에 떨어져 결국은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호전적인 아랍인들조차 이 지하도시를 한 번도 정복하지 못했단다.

 불가사의였다. 아무리 무른 돌이라지만, 지하에 틀어박힌 암석을 도려내어 이처럼 정교한 주거용 공간을 만들어냈다니! 자그마치 8층 깊이로. 거기서 파낸 돌가루나 흙은 모두 어디로 내어갔단 말인가.

 얼마나 오랜 기간에 걸쳐 그런 시설들을 완성했으며, 실제로 이곳에서 누가 살았는지 알 수도 없다고 했다. 다만 평화로울 땐 바깥에 살다가 외부의 침입자가 있을 때 들어와 상당 기간 피신해 있었던 것은 확실한 듯 하다. 말하자면 피신용 주거지였다. 최장 6개월을 버틸 수 있었다고 한다. 

 말문이 막혔다. 겨우 새우잠을 잘 수 있을 만큼의 캄캄한 공간에서 숨죽인 채 침입자의 일거수일투족을 바라보고 있었을 아이들이 눈에 밟혔다. 생존을 위한 싸움이 얼마나 치열하고 필사적이어야 하는가를 이곳에서 비로소 깨달았다.

 그 비좁은 공간에서도 와인을 만들어 신에게 바친 그들이었다. 아기를 낳아 기르기도 했다. 태양을 볼 수 없는 지하세계의 극한상황에서도 해뜰 날을 기다리며 희망을 가꾸어가던 그들의 모습을 차가운 암굴의 돌벽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는 그들과 감동적인 해후를 한 것이었다. 이제 우린 더 이상 삶에 관한 배부른 투정을 지속할 수 없으리라.

<계속>


**사진 위는 카이마클르의 언더그라운드 시티를 설명하고 있는 가이드 무스타파씨, 아래는 그곳의 거실에 있는 맷돌


2005-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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