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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기 [238] 터키 제3신(5) : 욕망과 허무, 그 파노라마의 현장-파묵칼레(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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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2-01-05 01:15 조회 835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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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제3신(5) : 욕망과 허무, 그 파노라마의 현장-파묵

                     칼레(5) 



파묵칼레로 돌아온 우리는 또 한 번 허무의 현장을 목격해야 했소. 바로 히에라폴리스요. 이 도시는 BC 2세기 퍼가몬(Pergamon)의 왕 에우메네스(Eumenes) 2세에 의해 확립되었소. 그런데 왜 ‘히에라폴리스’냐구요? 바로 이 도시의 전설적인 기초자 텔레포스(Telephos)의 아내인 ‘히에라(Hiera)'에서 따온 이름이지요.

 이 도시는 수 세기 동안 건강, 종교, 예술의 중심이었소. 주야로 온천물이 흘렀으니 도시민들의 건강에 도움이 되었고, 여러 개의 교회와 성당 등을 중심으로 기독교가 뿌리를 내렸으니 종교의 핵심이 되었음은 물론이오. 교회를 중심으로 종교예술 또한 발달했던 곳이었소. 기독교 초기 일곱 개의 교회가 있지 않소?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곳에서 7km 쯤 떨어진 라오디게아에 있었다 하오. 그러니 한창 좋을 땐 8만의 인구가 모여 살았을 정도였다고 하오. 

 그러나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로 망가지고, 셀축 터키군과 비잔틴 제국 군대가 이곳에서 싸우는 바람에 이곳은 거의 초토화 되다시피 했소. 아직도 위용을 자랑하는 원형극장은 한때 1만여 명이나 수용할 수 있었다 하오. 냉탕과 온탕을 갖추었던 로마식 목욕탕도 있었던 호화판 도시가 자연재해와 전쟁에 의해 폐허로 변한 것이오.

 그 세월이 무려 8세기. 히에라폴리스는 지금까지 800년 이상이나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진 도시였었소. 이 폐허 속엔 필립 순교 기념교회도 있소. 이처럼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혹은 종교적으로 한 때는 대단한 위용을 자랑했던 도시였소. 그런데 지금 보는 바와 같이 폐허로 바뀌어 있소. 잘 나가던 그 시기에 그들이 오늘날과 같은 폐허를 상상이나 했겠소? 그것이 바로 가정을 허용하지 않는 역사가 불시에 선사하는 현실이오.

<계속>


**사진 위는 파묵칼레 히에라폴리스의 폐허가 된 모습, 아래는 그 현장에 굴러다니는 돌의 아름다운 문양


2005-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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