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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기 [289] 이탈리아 제3신(8) : 드디어 역사와 문화의 대양(大洋)을 만나다-로마의 감동(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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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2-01-05 14:40 조회 1,285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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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제3신(8) : 드디어 역사와 문화의 대양(大洋)

                           을 만나다-로마의 감동(8)



다음 날은 포럼을 중심으로 로마의 유적들을 만났다. 네로 황제의 황금궁전이 있던 언덕을 출발, 콜로세움과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등을 통과하여 공회장으로 들어갔다.

 콜로세움. 지금은 비록 폐허로 남아 있지만 대단한 건축물이었다.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때 세우기 시작, 그의 아들 티투스 황제 때 완공되었다. 긴 쪽이 188m, 짧은 쪽이 156m의 타원형으로 높이는 48.5m, 전면 80개의 아치형 문이 있고, 5만 5천명을 수용할만한 크기라고 한다.

 이 경기장엔 도리아식, 이오니아식, 코린트식의 세 가지 스타일로 이루어진 둥근 기둥들이 사용되었다. 1년 내내 이곳에서는 경기(맹수들의 싸움, 검투사들의 시합)가 열렸고, 로마시민들은 그 경기의 향락성에 중독되어 갔다. 당연히 근로의욕은 감소하고 국력 또한 쇠약해져 로마는 결국 망하고 말았다. 콜로세움이 로마 멸망에 일조한 것이라고나 할까. 

 우리는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티투스 개선문, 셉티미우스 세베리우스 개선문 등을 거쳤고, 각종 신전, 황제들의 공회장, 시저의 무덤, 원로원 등도 만났다. 그 뿐인가. 돌로 포장된 도로는 지금도 끄떡없으며, 일부 파운틴도 하수구도 살아 있었다.

 건축물들 대부분은 폐허로 변해 있지만, 좋았던 시절에는 흥청대던 로마의 중심이었다. 팔라티노 언덕과 로마 공회장 사이로 올라가면 제우스 신전이 있던 캄피돌리 언덕이 나오고, 그 광장에서 당시인들이 콘스탄티누스 황제로 착각하여 이곳에 살려둔 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 황제의 기마상을 만났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기독교인이었다. 로마인들이 콘스탄티누스 황제를 좋아하는 이유를 거기서 분명히 이해할 수 있었다.

<계속> 


**사진 위는 콜로세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개선문


2006-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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