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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기 [294] 이탈리아 제3신(13) : 드디어 역사와 문화의 대양(大洋)을 만나다-로마의 감동(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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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2-01-05 14:45 조회 1,06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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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제3신(13) : 드디어 역사와 문화의 대양(大洋)

                            을 만나다-로마의 감동(13)



베드로 성당에서 다시 만난 <피에타>. 미켈란젤로 25세 무렵의 작품이었다. 인간에게 25세와 60세의 차이는 무엇인가. 육체의 나이와 정신의 나이, 그 둘은 과연 함께 간다고 할 수 있는가. <피에타>에 깔린 미학적·종교적·심리적 배경은 무엇인가. 볼수록 의문만 커져갔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시 찾았다가 새로운 문제만 안게 되었다.

 로마문명의 핵심을 찾아왔다가 바티칸을 만났고, 바티칸을 이해하려다가 새로운 문제들만 여럿 안게 되었으니. 참으로 딱한 백규여!

 로마를 마무리하려하자, 이제 시작에 불과함을 로마는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과연 앞으로의 공부는 어떻게 감당해나갈 수 있을지.  


             ***


유럽문명의 길을 찾으니 로마가 나왔고, 로마문명의 핵심에 들어가니 바티칸이 있었다. 그러나 바티칸을 찾다가 길을 잃고 말았다. 아무도 그 길을 알려주지 않았다. 아니, 그 길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손에 쥔 지도 한 장으론 아무리 보아도 그 길을 찾을 수 없었다. 길을 찾다가 길을 잃은 난감함. 드넓은 벌판에 홀로 서서 길을 찾는 나그네의 고단함이여!  


다섯 달 가까이 계속된 우리의 유럽 문화 답사. 로마는 사실상의 종착역이었다. 로마문명이 현재 지속되고 있는 유럽 문화의 근원이라는 점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로마로부터 시작하여 주변국들을 돌아보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각 나라나 민족이 지닌 문화의 개성이 사상(捨象)될 우려가 컸다.

 어느 나라나 민족을 막론하고 문화는 늘 ‘내 것과 남의 것’이 복합된 구조를 갖는다. ‘내 것은 내 것이요, 남의 것도 내 것’으로 되는 것이 문화의 본질이다. 내 문화 속에 들어있는 ‘남의 것’이라 하여 생판 남의 것이 아닌 것도 바로 그 때문.

 ‘내 것으로 변한 남의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내 것이다. 지적·물적 소유권 모두 내게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흥하는 민족은 늘 남의 것을 잘 받아들여 내 것으로 만든다. 로마 제국이, 로마문명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던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바로 수용의 관대함에 있었다.

 다른 나라의 체제를 인정해준 것. 그것이 바로 정복 전쟁에서 그들이 보여준 탁월성이었다. 정복한 나라를 그들은 억지로 병탄(倂呑)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의 왕을 존속시키고 문화도 인정했다. 총독을 파견하여 감시는 했지만.

 그리고 상·하수도, 도로 등 기간시설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정복지 백성들의 생활을 편하게 하고 자존심을 상하지 않게 해줌으로써 자신들의 영향력을 영속시키고자 했다. 참으로 교묘하면서도 ‘밉지 않은’ 수단이었다.

 약삭빠르고 탐욕스런 일본을 보라. 그들은 우리를 ‘집어 삼키려’ 했다. 우리의 왕을 폐위시켰으며, 우리말도 못 쓰게 했다. ‘동조동근(同祖同根)’이나 ‘내선일체(內鮮一體)’ 등 말도 안 되는 억지논리를 내세워 우리를 그들 나라의 한 지방으로 만들려고 했다. 그게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그래서 그들은 결국 망한 것이다. 

 우리는 지금도 우리끼리 그 ‘역사의 설거지’ 문제로 ‘진흙탕 속의 개싸움’을 벌이고 있다. 일본인들은 느긋하게 팔짱을 끼고 우리의 ‘개싸움’을 관전하고 있으니, 비통한 일이다. 

 로마인들은 그런 수모를 주지 않으면서 이민족들을 지배하는 지혜를 발휘했다. 아니 그보다 한 발 나아가서 그들의 우수한 문화를 수용하려고 했다. 그리이스 문명을 열심히 배운 것이 그 대표적인 예가 아닌가.

 우리는 그리이스의 아테네에 가서 아주 이른 시기에 이룩한 문명을 목격했다. 그리고 그 영광과 대비되는 그들의 초라한 현실도 보았다. 로마의 대선배이면서도 그리이스가 이토록 기를 펴지 못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우리가 보기엔 그들이 이질적인 문명의 수용에 실패했기 때문인 듯 했다. ‘선택과 수용’을 통한 끊임없는 자기 개량만이 문화를 유지·보존할 수 있다는 것이 역사의 가르침이다. ‘적자생존의 원리’는 생물의 세계에서만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문화나 문명처럼 왕성한 생명력을 갖고 있는 실체는 없다. 자기보다 우수한 문화나 문명과의 접촉을 통해 부단히 바꾸어 가야 다른 것들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 제 것만 우수하다는 착각 속에 문을 닫아걸고 ‘단순 재생산’에만 몰두한다면, 머지않아 ‘말뚝감이 고욤으로’, ‘감귤이 탱자’로 작아지듯 몰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이스 문명과 로마 문명의 차이는 바로 그 점에 있었다. 좁디좁은 한반도에서 ‘도토리 키 재기’ 놀음이나 하고 있는 ‘고매한 분들’, 몇 줌 안 남은 문화유산과 역사에 현미경을 들이 대고 용케도 ‘남의 것’을 도려내어 시궁창에 버리는 일들을 주업(主業)으로 삼고 있는 ‘곡학아세(曲學阿世)’의 모리배들과 정상배들. 국민들이 성금을 모아서라도 이들을 어서 바삐 세계문화의 현장으로 견학을 보내야 한다. 우리가 세계 속에서 당당해지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고 배우게 해야 한다. 

 그것이 로마의 한 복판에서 우리가 배운 점이다. 

 우린 이제 오르비에또를 거쳐 아씨시로 떠난다. 우리의 배움을 굳히기 위해!

<계속>


**사진 위는 베드로 대성당 큐폴라에서 내려다 본 로마 시내, 아래는 같은 곳에서 내려다 본 베드로 광장


2006-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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