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8] 이탈리아 제6신(6) : 돌 속에 약동하는 생명의 숨결, 아름다운 삶과 예술의 공간-피렌체와 피에솔레의 서정(6) >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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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기 [308] 이탈리아 제6신(6) : 돌 속에 약동하는 생명의 숨결, 아름다운 삶과 예술의 공간-피렌체와 피에솔레의 서정(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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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2-01-05 15:05 조회 1,161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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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제6신(6) : 돌 속에 약동하는 생명의 숨결, 아

                           름다운 삶과 예술의 공간-피렌체와 

                           피에솔레의 서정(6)



우리는 <다비드>의 감동을 안고 피렌체의 센트로에서 돌아왔다. 그리고 오후 내내 피에솔레의 탐색에 나섰다. 피에솔레는 기원전 7세기 경 에트루리아 사람들이 건설했고, 정복자 로마인(기원전 1세기-기원후 5세기)들이 완벽하게 손질했다 한다. 

 피렌체에서 바라보면 산 위로 높이 솟은 모양의 피에솔레. 그래서 피에솔레를 ‘피렌체의 모체’라고들 불렀다. 우리는 성당, 뮤지엄, 로마 극장, 공중목욕탕, 성 프란치스꼬 교회 등의 순으로 피에솔레를 둘러보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로마식의 투박함이 두드러진 성당이었으나 내부에 걸린 각종 부조물들은 섬세했다. 특히 채색의 성모자상, 여러 성인상들, 천정과 벽의 프레스코화들 모두 화려했다.

 성당에서 나와 둘러본 로마 극장. 아름다운 반원형의 전통 로마식이었다. 이런 양식은 이미 터키, 그리이스, 로마 등의 폐허에서 확인한 바 있었다. 상당 부분 무너지긴 했으나, 지금도 가끔 음악회나 오페라 등의 공연에 사용될 정도로 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었다.

 공중목욕탕의 폐허를 거쳐 들른 곳은 고고학 박물관. 발굴 현장에 덮어지은 점이 이 박물관의 특징이었다. 전시된 유물들과 함께 발굴현장까지 보여주는 효과를 거두고 있었다. 피에솔레 이전 시대의 유물들, 수백 년 전의 인골, 각종 장신구들, 도자기들, 조각품들, 그림 등등. 지금의 우리 눈에도 결코 뒤져 보이지 않는 디자인이나 색상, 편의성 등은 놀라울 정도였다. 이곳에 꽃 피웠던 그들 문명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었다. 

 피에솔레 고고학박물관에서 목격한 잊지 못할 사실 하나. 바로 알피에로 코스탄티니(Alfiero Costantini) 교수의 콜렉션이었다. 어디에 내 놓아도 꿇리지 않을 양과 질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리이스, 그레이시아마냐(Graecia Magna), 에트루리아 등의 빛나는 세라믹들. 모두 소더비, 피렌체 등 세계 유수의 경매장에서 사비(私費)로 사 모은 것들이었다. 이곳에서 출토된 것은 아니지만, 이곳에서 생산되어 세계 시장에 팔려나간 것들이었다.

 놀라웠다. 세계 각지를 돌면서, 경매장을 기웃거리면서 유물 한 점을 입수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보다 더 많은 돈과 노력이 필요한 분야가 또 있을까. ‘섭치’에 가까운 옛날 책 하나를 손에 넣기 위해서도 두툼한 돈지갑을 들고 여러 달 공을 들여야 하는 고문화 시장. 골동 취미는 인생을 살찌우면서도 인생을 갉아먹는 일임을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확인해온 우리다.

 그것들이 원래 태어난 곳에 아낌없이 기증하고 표표히 이승을 떠났을 알피에로 코스탄티니 교수. 그가 존경스러웠고, 그를 갖고 있는 이탈리아가 부러웠다. 그의 코너에서 우리는 한동안 발을 뗄 수 없었다. 돈과 지식은 어떻게 써야 하는가. 그는 말없는 큰 소리로 우리를 깨우치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베니스로 떠나기 전 우리는 맞은 편 산 중턱의 공동묘지를 찾았다. 최소한 한 세기 이상이나 되어 보였다. 무덤을 돌보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가족의 무덤에 꽃을 갈아주는 사람, 남편의 묘비를 어루만지는 할머니, 사다리에 올라 성인의 사진을 쓰다듬고 나서 연신 성호를 긋는 노인 등등.

 감동적인 모습들이었다. 서양인들이 보여주는 가족애가 얼마나 지극한지를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공동묘지를 주택 근처에 마련하고, 수시로 찾아와 묻힌 이들과 대화하는 사람들. 공동묘지에는 오래된 무덤부터 최근의 것들까지 질서정연하게 늘어서 있었다.

 무덤들 모두에는 아름다운 꽃다발이 놓여 있었고, 개중엔 촛불이 켜져 있기도 했다. 우리는 ‘아름다운’ 공동묘지를 거닐면서 새삼 죽음의 의미를 생각했다. 죽은 자를 멀리 떠나보내지 않으려는 산자들의 소망과 정성. 그건 사랑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랑은 삶과 죽음을 이어주는 정신적 끈이었다. 그들은 그걸 놓으려 하지 않았다. 유럽의 마을들을 지나면서 수도 없이 목격한 공동묘지. 으레 마을 한 복판이나 앞산 양지 바른 곳에 있었다.

 문만 열면 묘지가 보이는 곳이었다. 서양인들이 지극히 현세적이고 정이 메마른 사람들이라고? 천만에. 우리가 본 받아야 할 점은 바로 그것이었다. 허울만의 효자·효부들이 그득한 우리나라. 학대 받는 늙은 부모들이 가장 많은 우리나라. 그러면서도 남들로부터 효자·효부라는 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위선의 사회, 우리나라. 죽은 사람을 깊고 깊은 골짜기에 묻어놓고 한 대(代)만 지나도 무덤의 위치조차 까맣게 잊어버리는 우리나라.

 우리는 피에솔레의 ‘아름다운’ 공동묘지에 서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뒤죽박죽 사생관(死生觀)’을 떠올렸다. 이런 생각을 당차게 내뱉는 우리는 과연 어느 나라 사람들인가.


             ***


 피렌체와 피에솔레는 ‘아득한 옛날에서 지금까지’ 시간적인 이어짐을 표상하는 공간들이었다. 과거의 자양분을 바탕으로 현실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면서도 미래를 지향하는, 아름다운 시공(時空)이었다. 로마로부터 이어지는 고대와 중세의 현란한 아름다움이 피렌체에 와서 꽃으로 피어났음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꽃의 도시를 뜻하는 피렌체. 그것이 괜한 이름이 아니었음을 우리는 보고 느낀 것이다. 별처럼 빛나는 인물들이 동시대인들의 열렬한 지지 속에 역사와 문화를 리드해온 이곳에서 비로소 이탈리아의 저력을 보고야 말았다. 

 피에솔레와 피렌체를 가꾸어 나가는 이들의 지혜를 어떻게 익힐 수 있을 것인가. 우리에겐 버거운 문제였다. 꽃의 도시에서 물의 도시 베니스로 달리는 우리의 마음에 무거운 짐 하나가 더 얹힌 셈이었다. 그 짐을 덜어놓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베니스에서 물을 바라보며 이탈리아 기행을 마무리해야 할 입장이다. 



**사진 위는 피에솔레의 로마 극장, 아래는 피에솔레 고고학 박물관에 소장된 알피에로 교수 컬렉션 중 '여인 얼굴 모양의 도자기'


2006-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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