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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기 [315] 여행단상 23 : 아, 그리운 고국의 음식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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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2-01-05 15:15 조회 1,178회 댓글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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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그리운 고국의 음식이여!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우리네 속담이 있다. ‘아무리 좋은 구경꺼리라 해도 배고프면 소용없다’는 것이 그 1차적 의미이리라. 이것만큼 해외여행자들에게 절실하게 들어맞는 속담이 있을까.

 나는 적어도 음식에 있어서만은 코스모폴리탄임을 자처해왔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끔찍한 중국에 십 수 일씩 대여섯 차례를 다녀왔건만, 음식으로 고생한 적은 없었다. 중국인의 요리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향채(香菜)’도 무난히 사귀었으니 내 먹성이 얼마나 좋은지는 짐작들 하시고도 남으리라.

 그 뿐인가. 학생들과 메콩강 델타지역의 베트남 오지로 봉사활동을 나가서도 다른 사람들은 비장(秘藏)해간 고추장으로 근근이 연명할 때 나는 보란 듯이 그 지역의 음식을 즐긴 바 있다.

 그러나 이번 여행은 좀 달랐다. 고국으로부터 한 시간 남짓 날아간 이웃 중국이나 대여섯 시간 남짓 걸린 베트남과 헤아릴 수도 없이 먼 길을 날아온 유럽이 같을 순 없을 터. 참으로 음식문제가 고달프다.

 대개 아침은 숙소에서 제공하는데, 빵과 버터, 치즈, 차(혹은 커피), 주스, 우유 등으로 모든 나라가 거의 동일하다. 얼마나 아름답게 식탁을 꾸미는가, 계란 반숙이나 요구르트 등 후식이 나오는가의 여부에 약간씩 차이가 있을 뿐이다. 물론 좀 더 나은 등급의 호텔이 그보다 못한 곳보다 낫고, 동유럽보다는 서유럽의 식탁이 나은 점은 있었다.

 음식의 화려함이나 맛으로 잊지 못할 곳은 이스탄불의 베스트웨스턴 호텔. 이곳은 아침식사가 좋기로 여행자들 사이에서 정평이 나 있는 곳이었다. 다양하고 맛있는 터키의 빵도 빵이려니와 집에서 만든 다양한 잼, 우유, 요구르트, 과일, 케익, 쥬스, 심지어 천연 로열제리까지 두루두루 갖추어 놓고 있었다. 일부 주변 호텔들에서도 자신들의 투숙객들을 이곳에 보내 아침을 해결할 정도였다. 그 나머지 나라들이나 숙소들은 대개 ‘거기서 거기’였다. 

 그렇게 아침을 해결하고나면 점심과 저녁이 문제다. 이곳저곳 들르다 보면 점심은 때를 넘기기가 일쑤. 숙소를 정하면 들어가 짐을 풀고 나서 저녁을 해결해야 한다. 왜 외국인들이 샌드위치나 빵 쪽들을 씹으며 거리를 돌아다니는지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


 헤르만 헤세의 고향 칼브의 거리에서다.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마트와 붙어있는 대형 식당엘 들어갔다. 음식이 괜찮은지 사람들이 바글거렸다. 들어가는 순간 진열된 음식들 가운데 불에 구운 통돼지 한 마리가 눈에 뜨였다. 노릇하게 익은 돼지고기를 보는 순간 침이 꼴깍 넘어갔다.

 ‘고놈’을 달라고 하자, 종업원은 긴 칼로 쓱싹 한 조각을 자르더니 갈라놓은 빵에 넣어주는 것이었다. 씹어보니 별미였다. 비로소 우리는 입맛에 맞는 음식을 발견하게 되었다. 간도 맞고 약간 질깃하게 씹히는 돼지고기의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다. 값도 쌌다.

 밖에 비는 내리고, 쌀쌀한 바람이 살갗을 파고드는 날씨. 뜨겁게 데운 와인(글뤼바인) 한 잔과 돼지 바비큐를 넣은 빵 한 조각은 잊지 못할 맛의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그 뒤로 종종 이 음식을 애용한 것은 물론이다. 

 터키에 오니 빵이 일품이었다. 때만 되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베개만한 빵들을 안고 다녔다. 한 끼 식사를 위해 갓 구어 낸 것들을 사가는 것이리라. 가게에는 그 빵들이 그득그득 쌓여 있었다.

 어른들의 심부름으로 빵을 한 자루씩이나 사가는 아이들. 그 사이를 참지 못해 한 쪽씩 떼어 먹으며 걸어가는 녀석들을 바라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참 맛있는 빵을 먹고 사는 터키인들이었다. 그 빵의 바삭하고 부드러우며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다.

 베개만한 빵 하나를 먹고 나서도 배가 더부룩해지거나 소화가 안 되는 등 뒤끝 안 좋은 경우가 전혀 없었다. 먹고 돌아서면 또 빵 생각이 났다. 재료도 재료이려니와 터키인들의 빵 굽는 기술과 전통은 놀라울 정도였다. 오죽하면 사람들이 ‘열흘 지난 터키 빵이 갓 구운 그리이스 빵보다 훨씬 좋다’고 하겠는가.

 찬양과 비판이 반반인 고등어 케밥도 우리에겐 일품이었다. 막 잡아온 고등어를 그릴에 익혀 다진 야채와 함께 길쭉한 빵에 싸주는 고등어 케밥. 간간한 고등어의 간이 우리 입맛엔 절묘하게 들어맞았다. 물론 값도 쌌다.

 돌아본 나라들 가운데 터키 음식이 우리의 입맛에 가장 근사치로 들어맞았다. 시장을 돌아다니다가 고추장 비슷한 것을 발견한 것도 터키에서였다. 하도 신기하여 한참 동안 통 안을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주인아저씨가 나와서 손가락으로 찍어 권한다. 맛보라는 것이었다. 낼름 혀를 내밀어 맛을 보니 영락없이 맵고 칼칼한 고추장이었다.

 물론 우리처럼 메주를 빚어 만든 것은 아니고, 으깬 고추를 발효시킨 데 불과했지만. 풍미는 우리의 고추장에 가까웠다. 무엇보다 손가락으로 찍어 맛보라는 아저씨의 동작이 우리네 시장 통의 아줌마들과 똑 같아서 정겨웠다. 서유럽에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터키의 정서가 우리와 통한다고들 말하는 걸까.

 터키 다음으론 이탈리아가 그나마 나았다. 이미 세계의 음식으로 보급된 핏자와 파스타 덕분이었다. 바쁜 점심시간. 저렴한 값의 핏자 세트 하나면 충분했다. 화덕에 막 구어 낸 이탈리아 핏자의 바삭하고 고소한 맛은 무엇보다 매력적이었다.

 이탈리아 식당에서 발견한 ‘해물 파스타’ 또한 일품이었다. 홍합이나 새우 등 해물을 얹은 파스타. 거기에 고추기름이나 고춧가루로 매콤한 맛만 더하면 한국인에겐 최고의 요리였다. 이탈리아 맥주 한 잔과 해물 파스타 한 접시가 오랜만에 입 안의 근지러움을 해결해 주었다. 

 

             ***


 운수(雲水)처럼 떠도는 여행자들이 어디 한 군데 참하게 앉아 마음껏 입맛을 즐길 수 있으랴. 더구나 얄팍한 호주머니를 생각하면 비싼 음식들을 덥석 사 먹을 수도 없다. 흔히 여행을 하면 현지의 전통적인 음식을 맛보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식당에 가보라. 꼬부랑글씨로 그득 적혀 있는 수십 가지의 메뉴들에 영어 한 마디 안 통하는 종업원들이다. 맛이 어떤지를 어떻게 물어볼 것이며, 무엇을 재료로 만드는지를 어떻게 물어본단 말인가.

 그러니 만만한 게 콩떡이라고, 우리의 눈과 귀에 익은 것들만 시켜먹을 따름이다. 우리는 유럽에 오기 전 읽은 기행문들을 통해 그들이 맛있다고 추천한 음식들을 적어왔다. 그러나 와서 먹어보니 ‘별로’였다. 왜 그럴까. 그들이 거짓말을 한 걸까. 아니다. 적어도 그 순간 그곳에서 그 음식은 그에게 ‘최고’였을 것이다.

 혹시 ‘임절미(인절미의 원래 이름이라하나 정확한 것은 모른다)’와 ‘도루묵’의 고사를 아시는지. 조선시대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해 공주로 몽진했을 적의 일. 임금이 피난 와 있으니 그곳 토호들이 얼마나 신경을 썼겠는가. 그래서 떡을 해다 바치고, 금강에서 고기를 잡아다 바친 모양이다.

 도망 쳐 온 신세였으니 찬 밥 더운밥 가릴 형편은 아니었을 것이다. 배 고픈 김에 허겁지겁 먹어보니 맛이 그만이었다. 그 때부터 ‘임씨네가 만들어다 준 기막힌 맛’이라 하여 그 떡 이름이 ‘임절미’가 되었고, 지금은 인절미로 불린다 한다.

 문제는 도루묵이다. ‘도루메기’라고도 불리는 그 물고기였다. 임금이 조리해온 물고기를 먹어보니 기가 막히도록 맛이 좋았다. 난이 그치고 도성에 돌아온 뒤, 임금은 그 물고기의 맛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물고기를 가져오게 하여 다시 먹어본즉 예전의 그 맛이 아니었다. 임금은 ‘도로 갖다 버리라!’ 했고, 그래서 ‘도루묵’ 혹은 ‘도루메기’의 이름이 붙었다 한다.

 음식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배낭을 지고 다니다 보면 때를 넘기기 일쑤 아닌가. 배는 고프고 호주머니는 얄팍한데 어디 판을 벌이고 앉아 ‘거한 음식’을 먹을 수 있으리. 그 순간 눈에 보이는 게 최고의 음식일 수밖에 없다. ‘여행자들이 추천하는 음식을 굳이 찾아가 먹는 사람은 바보’라는 말도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


 긴 유럽 여행의 막바지. 다시 프랑스로 돌아왔다. 이곳에서 ‘까르푸’란 대형 마트에 들를 기회가 가끔 있다. 미국의 대형 마트들과 달라 이곳엔 온갖 음식들이 완전 조리 혹은 반조리(半調理) 상태로 진열되어 있다.

 놀라운 것은 얌전하게 두 발을 가슴에 올려붙이고 실로 동동 묶인 채 오그리고 있는 생닭도, 다리 살·가슴살 등을 분리하여 포장해놓은 것도 있다. 음식의 천국인 우리나라에서라면 전자는 삼계탕이나 통닭구이용으로, 후자는 프라이드치킨용으로 적절히 쓰일 만 한 것들이다. 그 뿐이랴! 매장을 둘러보니 감자며 양파며 상치·파·마늘까지 없는 게 없다. 한 쪽에는 횟감으로 제격인 물고기들도 펄펄 살아서 뛰고 있다.

 그러고 보면 음식에 있어서만큼은 ‘단순무식한’ 미국인들(미국인들에겐 미안!) 보다 유럽 사람들은 얼마나 섬세하고 민감한가. 대충 우리의 수준을 위협하는 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유럽인들 역시 조리에 있어선 우리를 따라 오려면 아직 멀었지. 그들도 분명 이 멋진 물고기들을 사다가 ‘엉망으로’^^ 만들어 먹을 것이다.

 메어스부르크란 곳에서의 일이다. 그곳만의 음식을 먹어보라는 누군가의 말만 듣고, 보덴호숫가의 레스토랑엘 갔다. 큰 맘 먹고 그곳 호수에서 잡았다는 물고기의 요리를 시켰다. 멋지게 생긴 물고기였다.

 잠시 후 정체불명의 양념을 누르팅팅하게 끼얹어 내온 요리를 보는 순간, 아차 싶었다. 한 입 먹어보곤 절망했다. 세상에, 이렇게 귀한 물고기를 이렇게도 맛없이 요리하다니! 곱게 회를 쳤더라면, 아니 그것까진 바라지 않더라도 소금 살살 뿌려 노릇노릇 굽거나 칼집 살살 낸 뒤 갖은 양념을 치고 살짝 쪄냈더라면 얼마나 맛있었을까. 그들이 내온 요리는 참으로 그 물고기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


 갈수록 몸부림치는 우리의 후각(嗅覺)과 미각(味覺). 이제 고국으로 돌아갈 시간이 가까워졌다는 신호이리라. 갈수록 고국의 향기가 그리워지고, 혀를 감아 도는 ‘우리의 맛’이 절실해진다. 바로 그거였다. 미각은 지문보다 더 정확하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어딜 가도 따라다니는 음식의 속박으로부터 우리가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는가. 

 따뜻한 불판에 몇 점의 삼겹살을 올려놓고 맘에 맞는 친구들과 소줏잔을 부딪치는 일. 단골 횟집에 들러 굵직하게 썬 막회 몇 점과 대포 한 잔으로 삶의 애환을 삭이는 일. 화덕 위의 불판에 척 올려붙인 빈대떡이 지글지글 익어가는 소리를 들으며 막걸리 통을 기울이는 일. 이보다 더 즐겁고 소중한 일이 대체 어디에 있을까. 

 손님은 많아도 쥐 죽은 듯이 조용한 유럽의 레스토랑. 그곳에 앉아 소화불량에 걸릴 만큼 말소리를 낮추어가며, ‘위하여!’를 외치고 있을 고국의 내 소중한 친구들을 그려본다.


 고국의 음식과 술맛, 그리고 친구들과의 변함없는 우정을 위하여!!!   



**사진 위는 보스포러스 크루즈 도중 상륙하여 점심을 먹은 살리에르의 한 식당, 아래는 이즈미르의 카디페칼레 공원에서 맛있는 빵으로 요기를 하는 백규(이 공원에서 우리는 흙으로 만든 화덕에 빵을 구어 파는 늙은 아주머니와 그녀의 이쁜 딸들을 만났습니다. 빵을 먹어보니 맛이 기막혔죠. 백규의 품위에 약간의 문제가 없지 않지만, 이 모습을 백규서옥 손님들께 공개합니다.^^ 눌러 보아주소서) 


2006-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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