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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기 [22] 프랑스 제7코스(4)-에뜨르타와 페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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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12-24 13:54 조회 1,14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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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양의 조각품, 에뜨르타와 페깜



9월 12일. 오전에 실낱같은 비가 흩뿌리다가 갬. 

기대와 두려움이 교차했다. 옹플뢰흐를 떠나 노르망디대교를 건너며 새삼스럽게 확인한 우리의 마음이었다. 갈수록 아름다워지는 도시들과 보고배울 것이 많아지는 노정들이다. 그러나 시간은 짧은데 갈 길은 멀었다. 20개 나라에 달하는 유럽을 모두 돌아보려는 야심 찬 계획이 출발지 프랑스에서 주춤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앞으로 만나게 될 도시는 얼마나 아름다우며 얼마나 고풍스러울까. 성당을 중심으로 조성된 시가지는 어떤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을까. 여행이란 ‘만남’임을 새삼 느끼는 요즈음이다. 카메라 렌즈를 어디에 들이대도 모두가 작품이 되어 나오는 이곳 도시들의 풍모는 부러움과 짜증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도시가 머금고 있는 천수백년의 나이테는 그것들이 지닌 가장 아름다운 요소들이었다. 세월의 흔적을 지우기에 여념이 없는 우리들. 20년도 안 된 아파트를 때려 부수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우리들. 관청으로부터 ‘아파트 부실 진단’을 받은 사실을 자랑스럽게 현수막으로 내거는 우리들. 이런 나라의 백성인 내 눈으로 수백 년 된 주택에 살고 있는 그들이 이채롭게 보이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빠리에서 활동하는 건설회사 직원을 만난 적이 있다. 주인들이 가장 중시하는 것은 '벽돌 한 장, 나무 한 도막도 옛날에 사용한 것을 그대로 사용할 것/ 외관을 형성하는 색상과 질감을 그대로 유지할 것 등'이란다.  관청의 엄한 통제 때문일까. 주거시설의 리모델링을 주문하면서 주인이 특히 강조하는 내용이라니, 그런 그들이 신기할 따름이다. '전통미학을 고수하려는 의지'.  파리를 필두로 지금까지 거쳐 온 프랑스의 모든 도시들에서 받은 공통적인 느낌이다. 유럽의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이겠으나, 특히 프랑스인들의 미의식은 특별한 듯하다. 언필칭 프랑스인들을 예술성이 강한 민족으로 평하는 말을 우리는 의례적인 찬사로 이해하고 있었으나 여러 도시들의 건축미와 색상에 대한 그들의 배려를 감안하면 전혀 근거 없는 말도 아니었다. 


             ***

     

이제 꽃의 도시, 옹플뢰흐를 떠나 노르망디의 또 다른 꽃 에뜨르타와 페캄Fecamp으로 향하는 길이다. 프랑스인들이 세계에서 최고로 멋진 다리라고 자부하는 노르망디 대교. 우리가 타고 넘은 그 다리의 형상미가 보통 아니었다. 다리 상판을 지탱하는 줄들의 미세한 아름다움은 말할 것도 없고 가운데가 삼각형의 꼭지점마냥 뾰족이 솟아오른 점은 매우 특이했다. 다리 중간지점까지 위로 솟아오르다가 중간지점을 넘기면서 땅으로 곤두박질치듯 하는 다리의 디자인은 종래의 미적·공학적 상식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르하브르Le Havre로 들어가는 길이 나타났다. 잘은 모르겠으나 영어의 항구harbor라는 말과 상통한다고 보는 것은 그 도시가 운하를 통해 바다로 연결되는 도시로서 갖가지 공업이 발달한 항만도시이기 때문이었다. 몽생미셸에서 같은 B&B에 묵었던 프랑스 아줌마도 이곳 출신이었다. 그녀 역시 아침 밥상머리에서 자신의 고향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었다. 

르하브르에서 D940번을 타고 에뜨르타Etratat로 향했다. 가는 도중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마을들이 두엇 있었다. 그 마을들 역시 마찬가지로 성당을 중심으로 수백 년 된 주택들이 늘어서 있었고, 그 중심에는 광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몇 십 분을 달리자 깨끗하고 아름다운 고풍의 도시가 나타났다. 바로 에뜨르타였다. 집 한 채, 거리 하나 예외 없이 모두 보석처럼 빛나는 곳이었다. 에뜨르타의 멋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깨끗하게 보존된 옛집들로 이루어진 시가지의 아름다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의 아름다움이 그것들이다. 자갈이 깔린 널찍한 해변을 따라 절벽에 오르니 하얀색 절벽이 끝 간 데 없이 대서양을 따라 늘어서 있다. 그 중의 압권은 코끼리 바위. 코끼리가 코를 바다에 박고 물을 마시는 형국이다. 그 다음의 바위를 아내는 ‘말 바위’로 명명했다. 흡사 말이 물을 마시는 형국이었다. 그녀의 관찰력은 아직 쓸만하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정확하게 본 듯 하다. 에뜨르타의 절벽은 소설 <괴도 루팽>과 <여자의 일생>의 배경이 되었던 곳이며 모네는 이곳의 절경을 <바다>라는 제목의 그림으로 남겼으니, 에뜨르타는 문학과 예술의 산실 역할을 한 곳이기도 하다.

 에뜨르타로부터 역시 D940을 타고 30분 정도 달리니 대서양의 또 한 보배 페캄이 나온다. 에뜨르타와 마찬가지로 수km에 이르는 해안과 끝없이 펼쳐진 하얀 절벽이 명물이며 가톨릭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 해안도시다. 에뜨르타, 이뽀르뜨Yport, 페캄 등으로 연결되는 이 지역은 노르망디를 대표하는 문화의 중심이다. 전통적으로 어업 중심인 페캄은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관광업에 주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정신적 지주는 베네딕틴 수도원으로 대표되는 가톨릭이다. 베네딕틴 수도원은 출범한지 1000년 이상이나 되었으며, 현재는 양조산업의 중심이기도 하다. 페깜의 베네딕틴 수도원은 성당·수도원·어부의 성당 등으로 분산되어 있다. 성당 안의 박물관에는 각종 성화·기록물·기념물·각종 골동품 등이 소장·진열되어 있으며, 맞은편은 양조박물관과 양조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 


우리는 베네딕틴 성당 가까운 페깜 중심지Fecamp Centre의 한 호텔에 투숙했다. 프랑스에서 늘 당하는 일이지만, 이른바 관광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마저 영어가 안 통한다는 사실 때문에 괴롭다. 프랑스 말이나 영어나 근원은 같을 것이니, 웬만하면 영어가 통하리라는 우리의 생각은 매우 순진한 것이었음을 프랑스 여행 며칠 만에 절감했다. 손짓·발짓으로 숙박  의사와 날짜만을 겨우 알려줄 수 있으니, 가격에 대한 딜deal은 애당초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굳이 영어를 하지 않아도 관광객은 밀려드니 필요하면 너희들이 불어를 배워 오라는 것일까. 잘난 조상들 덕분에 먹고 사는 그들의 고자세가 참으로 가관이다. 

일박 후 찾은 베네딕틴 수도원은 말 그대로 장관이었다. 돌을 떡 주무르듯 다듬어 세운 각종 부조물들이 수도원의 장엄미를 북돋운다. 누가 저런 것들을 모두 만들어 세우고 붙였을까. 참으로 불가사의의 극치다. 이것을 그저 예술이라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예술이란 단순히 신앙의 구현물이란 말인가. 프랑스에 와서 지금까지 풀지 못한 수수께끼는 바로 ‘인격-신앙-예술’의 상관성이다. 인간이 예술을 만드는가. 아니면 신앙이 예술을 만드는가. 그렇다면 예술과 신앙의 위상은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는가. 프랑스의 성당들을 돌아보면 볼수록 그런 근본적인 물음은 더욱더 미궁에 빠짐을 느낀다. 

나를 혼란스럽게 만든 것은 그  뿐 아니다. 그곳에 양조장을 차리고 술을 빚어 판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왔다. 베네딕틴이 세계적인 술의 브랜드로 정착한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지하의 양조시설과 술의 재료로 쓰이는 각종 약초들까지 자세히 구경시키는 그들의 의도는 무엇일까. 꼬냑 맛의 베네딕틴 술을 시음한 나는 취기와 흥분에 잠겨 하나의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술은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킨다. 마비된 이성을 대신하는 것은 감성이다. 이성과 감성이야말로 인간의 세속성을 완성시키는 두 측면이다. 그러니 신성한 성당에서 술을 빚는 행위는 신성에 대한 모독이 아니라 한 울타리 안에서 인간의 삶을 완성시키는 한 축으로 보아도 무방할 듯 하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간의 내면을 정화시키고, 술을 통해 인간의 괴로움을 소멸시킬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 삶을 윤택하게 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그 존재이유는 확실해진다. 

언덕 위의 성당을 찾았다. 아기예수를 안은 성모 마리아가 성당 첨탑에 서서 바다를 굽어보는 형상이다. 이 지역이 어촌이었음을 감안하면 어로작업에 나간 어부들의 무사귀환은 이들의 가장 큰 소원이었을 것이다. 그런 연유로 높은 곳에 성당을 짓고 바다를 굽어보는 마리아의 형상을 첨탑 끝에 모셔 놓은 것일까. 어쨌든 아름다운 자연 속의 아름다운 성당이었다. 성당으로부터 이삼십 미터만 바다 쪽으로 발길을 옮기면 끝없이 펼쳐진 흰색 절벽의 장관을 볼 수 있다. 그 뿐인가. 절벽 위에는 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들이 사용한 각종 시멘트 벙커들이 고스란히 남아 나찌의 허망한 꿈을 입증하고 있었다. 나찌의 벙커들과 주변의 절벽들을 보며 언젠가 흥미롭게 관람한 영화 <나바론 요새>를 떠올린다. 이곳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전장이 아니었던가. 영화 속의 참상과 인간의지가 바로 내 문제인 듯 절벽을 내려다보며 몸을 떨었다.


             ***


9월의 따가운 햇볕과 대서양의 서늘한 바람이 만들어 내는 박무(薄霧) 속에 잠겨 있는 페깜. 술을 빚어 파는 양조장과 수도원이 한 울타리 안에 공존하는 이 모순의 현장은 참으로 이채롭다. 그러나 크게 생각하면 이 모순의 양자는 보다 높은 차원에서 ‘인간에 대한 신의 은혜’로 승화된다고 보면 그다지 문제 삼을 일은 아니다. 성과 속의 결합은 양자가 분리된 상태로 있는 것보다 오히려 바람직한 이상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페깜은 내게 분명한 메시지를 준 깨달음의 공간이었다

<계속>


**사진 위는 에뜨르타 시가지와 해변, 아래는 페깜의 베네딕틴 수도원


2005-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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