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에피소드1-불법주차 딱지를 떼이고, 경찰서를 항의방문하다 > 여행기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여행기

유럽여행기 [23] 에피소드1-불법주차 딱지를 떼이고, 경찰서를 항의방문하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12-24 13:57 조회 1,130회 댓글 0건

본문

*에피소드의 연재를 시작하며


여행을 하다보면 예상치 못한 일들을 많이 만난다. 그러나 그것들을 전부 기록할 수는 없다. 자질구레하기도 하지만, 별로 드러내고 싶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게는 개인의 인생사부터 크게는 민족이나 국가의 역사에 이르기까지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운 일만 있는 건 아니다. 때로는 감추고 싶은 일들이 더 많은 법이다. 읽는 분들에게 참고가 될 수 있도록 짬짬이 그런 일들을 이곳에 밝혀 두고자 한다. 에피소드는 말 그대로 긴 여정 중 단편적인 낙수(落穗) 쯤으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에피소드1. 불법주차 딱지와 경찰서 항의방문


유럽에서 차를 몰면서 가장 힘든 것이 주차문제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요즘에는 불법주차에 가차 없는 벌금이 부과되고 있긴 하지만, 이곳은 진짜로 너무 가혹한 점이 없지 않다. 기본적으로 옛날에 조성된 시가지를 그대로 안고 가려니 길은 좁고 사람은 늘어나 시내 교통이 말이 아니게 복잡한 점도 그 이유이긴 할 것이다. 그런 그들의 현실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렇다 해도 지나치게 심한 것이 그들의 주차단속이다. 어딜 가도 가게 주인에게 눈 한 번만 끔쩍해주면 잠시 주차가 가능한 ‘교통의 천국(?)’ 대한민국 백성인 나로서는 유럽이라고 대수이겠느냐는 안이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프랑스의 경우 최근 자동차세를 폐지한 이후 자동차 대수가 급격히 늘어나 주차문제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한다. 길거리 주차를 하려해도 나 같은 이방인들은 틈을 찾기가 쉽지 않다. 빠리 근교에서 주차 공간을 찾아 헤매다가 남의 가게 차고 근처에 세웠다가 40유로가 넘는 딱지를 뗀, 쓰디쓴 경험을 한 바도 있다. 


             ***  


페깜에서의 일이다. 이곳에 오니 우선 눈에 뜨이는 것이 다른 도시들보다 훨씬 너그러운 주차인심이었다. 다른 도시들에는 촘촘히 서 있던 길거리 주차의 동전 투입기가 이곳엔 그리 많지 않았다. 바닷가 도시인 것이 큰 이유이겠지만, 해안을 따라 조성된 도로가 비교적 넓은 것이 마음에 들었다. 가는 곳마다 동전을 넣어야 주차를 할 수 있는 다른 도시들의 ‘좀스러움’을 내심 욕하면서 이곳이야말로 ‘양반동네임’을 은근히 칭찬까지 하게 되었다.


             ***


베네딕틴 수도원을 방문하면서 수도원이 지정한 주차장에 차를 대러 갔다. 바닥에 복잡한 금을 그어놓기도 하고, ’BUS'니 ‘CAR'니 하면서 자못 알 수 없는 말들을 깨알처럼 적어놓긴 했으나,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하는 그들이나 불어를 한 문장 한 단어도 읽지 못하는 내 형편이나 피장파장이었다. 대충 둘러보니 ’CAR'라고 쓰인 공간에는 틈이 없었다. 그러나 그 차들의 옆 공간은 텅 비어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베네딕틴 주차장이니 텅 빈 곳에 주차 좀 했다고 뭐라고 탓할 일은 없겠지’ 라고 생각한 나는 의기양양하게 주차를 해놓고는 수도원 투어를 시작한 것이다. 

두어 시간 동안 우리는 수도원 투어를 즐기며 성당 내의 양조장에서 베네딕틴 꼬냑으로 후한 대접(?)까지 받았다. 한껏 고조된 기분에 휘파람을 불며 주차장으로 돌아오니 아내가 벌레 씹은 표정을 짓는 게 아닌가. 와이퍼와 유리 사이에 35유로짜리 티켓이 자랑스러운 모습으로 끼여 펄럭이고 있었던 것이다. 

내 눈에서 불이 났다. 29 유로짜리 포뮬러원Formule1이면 하루 숙박에 식사까지 해결할 수 있고, 비앤비B&B나 이탑Etap의 경우라도 하루 숙박비에 해당하는 금액이 아닌가. 심호흡으로 분노를 갈아 앉히고 티켓을 곰곰이 살폈다. ‘BUS'니 ’CAR‘니 하는 말들이 들어있는 문투로 보아 버스가 주차할 장소에 ’CAR'를 세웠다는 지적인 듯 했고, 티켓 발부자는 현지 경찰서였다. 버스를 세워야 할 곳에 자동차를 세운 게 잘못이라니 할 말은 없었지만, 화가 치밀었다. 애당초 BUS니 CAR니 하는 구획 표시가 불분명했다. 분명했다 해도 당시 자동차 코너엔 공간이 없었고, 버스 코너엔 텅텅 비어 있었다. 도대체 현지 프랑스인이 아니면 잘 알지도 못할 규정이나 관습을 생판 낯선 외국인이 어찌 알아서 준수할 수 있으리오? 

‘고지식한 *들이로고!’라고 혀를 차고 그냥 넘길까 했으나, 그들에게 한 수 가르쳐 주지 않고는 내 자존심이 허락지 않을 듯 했다. 관광이고 뭐고 뒤로 미룬 채 물어물어 경찰서를 찾아갔다. ‘이번에야말로 이 **캐들에게 동방예의지국의 이른바 예절이란 것을 가르치겠노라’고 잔뜩 벼르며 찾아간 것이다. 

육중한 문을 밀고 들어가니 규모로 미루어 경찰 본서는 아니고 페깜 지역의 치안과 교통질서를 담당하는 파출소쯤 되는 듯 했다. 제복을 입은 그 중의 한 녀석을 불러 유창한(?) 영어로 내가 온 사연을 말하니, 이 친구 꿀 먹은 벙어리라. ‘앵글리쉬~’어쩌고 말하더니 다른 사람을 부른다. 그 녀석 또한 영어인지 불어인지 두어 마디 대꾸하더니 또 다른 녀석을 부른다. 이번엔 제법 나이가 지긋한 배불뚝이 콧수염이 나타난다. 나는 장황하게 내 생각을 토로했다. ‘나는 외국인 관광객이다. 이곳엔 초행이다. 베네딕틴 수도원에서 지정한 주차장에 내 차를 세웠다. 티켓의 내용으로 보아 내가 무언가를 위반한 것 같은데, 도대체 왜냐? 보아하니 이곳 사람들만 능숙하게 주차할 수 있고, 이곳에 처음 온 외국 관광객들은 잘 알아먹을 수 없다면 규정이든 시설이든 무언가 잘못된 게 아니냐? 특히 관광대국을 지향하는 프랑스로서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이런 식으로 대한다는 게 도리 상 맞지도 않다. 프랑스 문화에 깊은 경의를 갖고 있는 외국인들을 단돈 35유로 때문에 적으로 돌릴 생각인가. 고의 아닌 실수에 35유로라는 거금(?)을 부과하는 것은 타당치 않다.’는 게 내가 내세운 주장의 골자였다. 

한참 동안의 설교를 끝내고 그 친구의 표정을 살폈다. 아뿔싸, 그런데 이 친구 역시 영어를 한 마디도 못 알아듣는 게 아닌가. 내 발음에 문제가 있는가 하여 다시 ‘또박또박’ 반복해 주었으나 큰 눈만 멀뚱멀뚱 굴리기는 마찬가지였다. 힘이 쏙 빠져나갔다. ‘이렇게 무식한 *들이 국제적 관광도시의 경찰관을 하고 있다니 말도 안 된다’는 것이 내 분노의 근원이었다. 

잠시 허탈해 있는데, 좀 그럴 듯하게 생긴 장년의 경찰관 하나가 점심을 마치고 들어오는 길이었다. 보아하니 이 친구는 다른 사람들보다 나이도 계급도 높은 듯 했다. 내 말을 잠자코 듣더니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영어단어들을 구사하며 그들의 입장을 설명했다. ‘이미 발부된 티켓은 어쩔 수 없다. 뒷면에 주소가 있으니 컴플레인을 적어 우편으로 보내면 교통부에서 최종 판정을 할 것이다. 그러니 지금 당장 그 벌금을 낼 필요는 없다’는 요지의 답변인 듯 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관광으로  보태줘, 벌금으로 보태줘, 이래저래 후진국 백성인 내가 잘 사는 나라 프랑스에 ‘피 같은 돈’을 단 한 푼이라도 거저 줄 필요까지야 있겠는가. 그것이 내 생각의 골자였다. 프랑스 정부에 항의를 전달할 기회가 생겼으니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

 

나로서는 참으로 기이한 체험을 한 셈이었다. 난생 처음 유럽에 발을 디뎠고, 발 디딘지 사흘 만에 운전대를 잡고 그 복잡한 빠리 시내를 종단·횡단·우회하는(사실은 길을 잘못 들어 헤맨 것이지만) 경력까지 쌓았다. 이젠 지방의 대도시에 와서 불법주차 딱지까지 떼인 처지에 경찰서로 항의하러 가서 그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설교까지 잔뜩 늘어놓았으니, 생각하면 내 ‘어거지’도 대단하다 할 수 있다. 그 덕분에 일시적으로나마 분은 풀렸지만. 우리나라 교통경찰들을 떠올렸다. 불법주차 딱지를 받은 외국인이 경찰서에 찾아와 항의를 하면 그들은 어떤 반응을 할까. 그걸 생각하며 당장 오늘 밤 그들이 알려준 곳으로 동방예의지국의 선비(?) 다운 교훈적 메시지나 한 장 적어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경찰서를 나오는데 여전히 하늘은 푸르고 갈 길은 멀었다. 그리고 이곳이 내 조국이 아닌 것도 분명했다.

<계속>


**사진 위는 페깜 베네딕틴 성당 내부의 양조 박물관, 아래는 페깜 해안의 절벽


2005-09-19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개인정보처리방침 서비스이용약관

:::白圭書屋:::
대표자 : 조규익 | Tel : 010-4320-8442
주소 : 충청남도 공주시 | E-mail : kicho@ssu.ac.kr

Copyright ©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