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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기 [24] 에피소드2-심야 주차장에 갇혔다가, 추격전을 벌이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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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12-24 13:58 조회 1,131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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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2. 주차장에 갇히고, 납치범으로 오해받다



9월 13일 오후 4시. 벨기에의 브루헤Brugge를 향해 페깜 출발. 

하늘의 도우심인지 조상님의 보살피심인지 그동안은 숙소를 잡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값도 비교적 저렴했을 뿐 아니라 대부분 단점보다 장점이 많은 방들이었다. 바로 그게 화근이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유럽에서 잘만한 숙박시설을 잡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직 뜨거운 맛을 보지 못한 터였다. 그래서 우리는 이곳을 내 조국으로 착각하고 마냥 게으름을 부렸던 것이다. 

오후 4시라면 이미 다음 지역에 도착하여 숙소를 잡고 들어 앉아 있어야 할 시각이었다. 그 때쯤이면 대서양으로 넘어가는 석양은 또 얼마나 강렬한가. 등지고 가는 석양을 아직 중천에 떠서 이글거리는 태양으로 착각한 우리였다. 마구 늑장을 부리다가 겨우 그 시각에, 그것도 휘파람을 불며 D926을 타게 되었다. 

누가 방을 잡아놓고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벨기에의 브루헤로 방향을 잡은 것이다. 누가 들었다면 그 만용에 대하여 진짜로 기가 찰 일 아닌가. D926을 전속력으로 달리다가 A29로 갈아타고 아미앵Amiens 근처에 이르자 날씨가 컴컴해지기 시작했다. 아미앵에서 보면 릴Lille도 까마득한데, 벨기에의 브루헤라니? 마음속으로부터 점점 무언가 깨달아지기 시작했다. 유럽 사람들은 대충 4시나 5시면 일을 마친다는 사실을 사방이 거뭇거뭇해지면서 문득 생각하게 된 것이다. 심지어 구멍가게도, 일반 호텔은 물론 무인호텔들까지도 ‘만원사례’의 팻말을 내어걸고 문을 닫아건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마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더구나 대도시 아미앵을 속수무책으로 지나쳐버리고 말지 않았는가.


             ***

 

고속도로를 통해 대도시를 지나다 보면 길 가에 침대표시며 나이프 표시를 한 광고물들이 가득 서 있길래 아미앵도 그러리라고 믿었다는, 내비게이터navigator 역할을 제대로 못한(?) 아내의 핑계 아닌 핑계였다. 하는 수 없이 휴게소에 들렀다. 기름을 가득 넣고는 작업 중인 인부들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근처에서 숙박 가능한 지역을 물었다. 그러자 이구동성으로 아미앵으로 다시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근처에는 아무런 숙박시설도 없을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나 브루헤로 향하던 기수를 다시 복잡한 대도시 아미앵으로 돌리기는 싫었다. ‘설마 아무리 시골이라 해도 여인숙 하나 없을소냐?’ 근거 없는 믿음과 자신감이었다.  늦은 시각에 도착하고도 몽생미셸 시골바닥의 멋진 B&B에 투숙한 경험으로부터 생겨난 배짱과 자신감이기도 했다. 

그 근처에 사는 듯한 그 사람들의 충고도 무시한 채 나는 핸들을 성당의 첨탑이 우뚝한 근처의 작은 마을로 틀었다. 브르또뉴Bretoneux라는 한적한 시골이었다. 어둑어둑해지는 거리에는 간간이 오가는 자동차의 불빛만 요란할 뿐이었다. 성당이 서 있는 마을 중심부에서부터 탐색해 나갔으나 여관 비슷한 표지 하나 보이지 않았다. 마을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아줌마에게 물었더니, 당장 아미앵으로 나가야 한다고 충고하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국도를 통해 아미앵으로 향했다. 아미앵으로 진입하는 30분이 흡사 3년이라도 되는 듯 했다. 시가지 입구에 호텔촌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빈 방 있는 집은 한 곳도 없었다. 어느 호텔의 사무원이 우리의 처지가 딱했던지 한 곳을 찾아가보라고 알려 주었다. 그가 말하는 불어 가운데 알만한 단어들만 추려보니 A29를 타고 가다가 게르떼제베Gare TGV로 나가서 삐깐디Picandie역을 찾아가라는 내용이었다. 이미 우리는 A29를 타고 올라가다가 내려온 몸인데 이 늦은 시각에 다시 그 길을 타고 올라가라고? 그렇게 할 만큼 우리의 마음엔 여유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나 새까만 유럽의 밤, 허허벌판에 차를 세워놓고 그 속에서 하룻밤을 새워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먼저 깜깜해지기 시작했다. 시각은 이미 8시를 넘었고, 속은 바작바작 타들어갔다. 그래도 어쩌면 ‘오뗄드빌Hotel de Ville’이 있는 시가지엔 방 하나쯤 있을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시가지로 과감히 진출했다. 가끔은 눈치를 보아가며 신호등도 무시할 정도로 초조감은 고조되었다. 그러나 시가지 중심에 몇 안 되는 고급호텔들에도 빈 방은 없었다. 

아, 이제 노숙(露宿)아닌 차숙(車宿)을 하는 수밖에 없구나! 체념하고 있던 우리는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으로 멀긴 하지만 호텔 사무원이 알려준 그곳을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만약 그것도 안 된다면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24시간 영업하는 휴게소에 들러 차숙의 쓴 맛을 보리라 결정했다. 


             ***


시각은 10시로 육박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알려준 곳을 수월하게 찾을 수 있을 것이며, 빈 방이 있다한들 과연 이 시각에 문을 열어줄 호텔이 있을 것인가.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는 마구 달렸다. 밤만 되면 벌써 오싹해지는 추위가 이미 우리 곁에 엄습해왔는데, 차숙이라니? 안 될 일이었다. 마구 달렸는데 요행히 게르떼제베 인터체인지가 보였고, 그곳을 나가 좌회전·우회전을 여러 번 하니 과연 오뜨 삐깐디Haute Picandie가 나타났다. 

그런데 이게 뭔가? 바로 고속열차인 떼제베 역이 아닌가? 도대체 그 녀석은 왜 우리에게 떼제베 역을 알려준 것일까? 참으로 해괴한 일이었다. 주차장엔 자동차들이 가득 세워져 있고, 차를 타려는 듯 사람들의 모습만 간간이 보였다. ‘아하, 그 녀석이 우리보고 여기 와서 노숙을 하라고 한 것이로구나’ 라는 판단을 내렸다. 말하자면 그가 ‘빈 방 있는 호텔’ 아닌 노숙 장소를 알려주었다고 판단한 우리는 자못 분개하기까지 했다. 우리를 얼마나 우습게  보았으면 기차역에 가서 노숙이나 하라고 보냈을까?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하릴 없이 노숙이나 차숙을 하리라 작정하고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던 중 떼제베 표를 사는 노신사 부부를 발견했다. 큰 기대를 걸지 않고 내 사정을 말했다. ‘시내 호텔의 어느 사무원이 이곳을 가면 방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해서 우리는 이곳으로 왔다. 와서 보니 떼제베 역이다. 우리는 자동차 여행자들인데 이럴 수가 있는가?’라는 원망조의 말을 건넸다. 그러자 그는 이 말을 매표원에게 불어로 전달하는 듯 했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 매표원의 뒤에 있던 청년 하나가 냉큼 뛰어 나오는 것이었다. 그는 종이와 연필을 갖고 나오더니 호텔의 약도를 그려주는 게 아닌가. ‘아, 그 친구가 우리를 노숙이나 하라고 이곳에 보낸 게 아니었구나!’라는 깨달음이 뒤늦게 찾아들었고, 그에게 가졌던 야속함은 일순 사라지고 말았다. 


             ***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냉큼 그리로 달렸다. 조막만한 멧토끼들이 갯펄 위의 게들처럼 우리 차의 헤드라이트에 놀라 가로 뛰고 세로 뛰는 적막한 들판을 수 십 분이나 달리자 ‘진짜’ 거짓말처럼 저 멀리에 ‘포뮬러원Formule1’이란 호텔의 간판이 보이는 게 아닌가. 옆자리의 아내는 성호를 그었다. ‘제발 빈 방 좀 있도록 해 주십사’라는 기구였을 것이다. 

11시가 넘은 한밤의 프랑스 농촌 들녘. 방향마저 분간할 수 없는 그곳을 오직 호텔 간판의 불빛만 보고 달려가다 보니 부닥치는 난관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차를 몰아 여관 앞으로 갈 수가 없는 것이 문제였다. 길이 너무 복잡하고 사방은 너무 어둡기 때문이었다. 동네를 서너 바퀴나 돌았으나 도저히 호텔 앞으로 갈 수는 없었다. 빠리 시내보다도 더 복잡한 길을 겨우 찾아가 외곽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달려가니 시각은 이미 11시 30분. 방이 있다는 말에 아내는 한 번 더 성호를 긋는 것이었다. 우리는 체크인을 하고 사무원으로부터 현관문과 방문을 열 수 있는 비밀번호를 받았다. 

그러나 새로운 문제는 그 때부터 시작되었다. 우리는 자동차들이 쌩쌩 달리는 여러 개의 간선도로들을 넘어 여관으로부터 100m 이상이나 떨어진 외곽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았었는데, 그 차를 호텔 앞으로 끌고 와야 짐도 쉽게 풀 수 있고, 무엇보다도 자동차의 안전에 대한 불안감이 덜어질 듯 했다. 그래서 프론트의 사무원 아가씨에게 물었다. 어떻게 자동차를 이곳까지 갖고 올 수 있느냐고. 그러자 피곤에 절은 듯한 그 아가씨는 알아들을 수 없는 불어로 대충 설명을 하는 것이었다. 그녀가 우리의 질문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무성의하게 그려주는 도로 지도를 받아들고는 다시 여관 앞으로의 진입을 시도했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그건 불가능했다. 

하는 수 없이 차를 대기 위해 외곽 주차장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외곽 주차장 가운데 텅 빈 마당이 있었고, 그 앞쪽에는 높은 철조망 울타리와 CCTV로 보호되는 부분이 있었다. 그곳을 출입하기 위해서는 비밀번호를 필요로 하는 듯 했다. 우리 생각엔 우리에게 주어진 현관과 방의 비밀번호가 이 문에도 통하리라 믿었다. ‘아, 우리로 하여금 이토록 멀리 여관으로부터 떨어진 곳에 주차하게 했어도 안전에 대한 관리만은 철저히 해 주는구나!’ 라고, 자못 감탄까지 하면서 마침 우리보다 앞서 그곳으로 들어가는 차를 따라 들어갔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나는 귀찮게 비밀번호까지 누를 필요가 없었다. 우리 차가 들어오자 육중한 철문은 철커덕 소리를 내며 잠겨 버렸다. 철조망 울타리 안의 적당한 곳에 주차한 그 사람은 우리의 몰골을 힐끔힐끔 바라보며 잽싸게 비밀번호 버튼을 누르더니 나가버렸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방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나가리라 느긋하게 생각하며 차에서 짐을 내리기 시작했다. 짐을 다 내린 우리가 그곳에서 나가려고 비밀번호의 버튼을 누르니 어쩐 일인지 문은 열릴 생각도 하지 않았다. 들어오던 문에 달려가서 방의 비밀번호를 눌러 보았으나 문짝은 요지부동. 아뿔싸, 이것 일 났네. 일순 눈앞이 캄캄해져왔다. 포뮬러원의 경우 밤중엔 무인 통제시스템이라 직원들은 모두 퇴근했을 것이고, 설사 직원들이 있다한들 여기서 거기까지 무슨 수로 연락한단 말인가. 

흡사 동물원 철망에 갇힌 두 마리 호랑이의 신세였다. 철망을 뛰어넘어보려 했으나 2m에 가까운 높이였다. 문의 난간을 통해 뛰어 넘으려 했으나 그 역시 불가능했다. 설사 해군 유격훈련을 잘 받은(?) 나 혼자 뛰어 넘는다 한들 호주머니에 넣을 수도 없는 아내는 어찌할 것인가. 속절없이 철망 우리 속에서 들판의 바람을 맞으며 하룻밤을 새워야 할 판이었다. 세상에! 갇힐 데가 없어 주차장에 갇히다니, 이런 비극이 도대체 어데 있단 말인가. 문화의 나라 프랑스에 왔다가 주차장에 갇혀버리다니 그야말로 자손만대의 치욕이 아닐 수 없었다. 왔다 갔다 하며 아무리 머리를 짜내 보아도 묘안은 없었다. 이제 진짜로 차숙을 하는 도리밖엔 없다고 체념하려 했으나, 이미 낸 숙박비가 너무 아깝고 샤워실의 뜨거운 물과 포근한 침대시트가 너무 그리워지는 것이었다. 안되겠다 싶어 철망에 바짝 얼굴을 대고 바깥쪽의 길을 주시하고 있노라니 ‘시큐리티Security’ 차 한 대가 순찰을 돌기 위해 오는 게 아닌가. 있는 힘을 다해 ‘헬프미help me'를 외치니, 그 때서야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던지 그 친구가 이 쪽을 유심히 바라보는 것이었다. 내 사정을 얘기하자 잠시 기다리라고 하면서 훌쩍 가버렸다.


             ***


한참만에야 프랑스 청년 하나가 휘파람을 불면서 나왔다. 순진하게 생긴 녀석이었다. 아마도 누가 주차장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그 시큐리티 요원이 알려주었던 모양이다. 우리는 젖먹이 아이가 엄마 본 듯 매우 반가운 마음에 어서 오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는 약간 켕기는 듯 떨떠름해 하면서도 버튼을 눌러 문을 따 주었다. 

그러나 자동차가 문제였다. 우리는 우리의 사정을 그에게 열심히 이해시키려 애썼다. ‘우리는 우리의 차를 호텔 앞에 주차시키려다 이 모양 이 꼴이 되었소. 그러니 우리에게 그 방법을 알려 주든지 아니면 이 차를 직접 운전하여 그곳에 주차하여 주시오.’라고. 그러나 불행히도 그는 영어를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했다. 

안 되겠다싶어 그에게 내 열쇠를 주면서 내 차를 운전하라고 요구했다. 그걸 그는 어떻게 해석했는지 모르지만, 갑자기 우리더러 운전하여 뒤를 따라오라는 시늉을 하고는 자기 차의 문을 여는 것이었다. ‘얼씨구, 이제야 이 녀석이 우리의 본심을 깨달았구나!’ 쾌재를 불렀다. 그가 출구 쪽 문을 열었고, 우리 또한 열린 문을 통해 무사히 차를 몰고 밖으로 나왔다. 이제 호텔 앞까지 그 녀석의 차만 쫓아가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자기 차를 따라오라고 했으면 좀 천천히 가면서 우리를 유도해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리가 갇혔던 주차장을 빠져나온 것을 확인한 그 녀석. 갑자기 가속을 하더니 쏜살같이 내빼는 것이었다. 우리도 그 녀석을 놓칠세라 속력을 높이기 시작했다. 예전부터 나도 운전이라면 한 속력 해온 터라 아무리 프랑스의 젊은 녀석이라 한들 나보다 크게 나을 순 없으리라는 믿음으로 가속 페달을 열심히 밟아댔다. 속도계의 바늘은 130, 150을 오르내렸다. 길옆에는 50rappel(시속 50km 이상을 달리면 경찰이 출동한다는 뜻)이 선명했지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호텔 앞 주차장을 못 찾아서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그 뿐인가. 낮에 새로 넣은 기름 두어 금이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그런 나로서는 저 녀석의 차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일념뿐이었다. 한밤중 프랑스의 한적한 전원에서는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해석한 대로 자기를 따라오라고 한 것이 그 녀석의 본의였다면 적당히 속력을 조절하면서 앞서 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전속력으로 달려가는 그 녀석의 본심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나 역시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음에도 그 녀석 차의 가물가물하는 미등만 먼발치에서 볼 수 있을 뿐이었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우리 호텔과는 아주 엉뚱한 방향으로 차는 달리고 있다는 점, 그리고 주변에는 산과 들판, 그리고 불 꺼진 주택가만 가끔씩 나온다는 사실이었다. 

우리는 결국 그 녀석을 놓치고 말았다. 아무래도 이상하다 싶어 차를 세우고 잠시 내비게이터와 작전회의를 가졌다. 상황에 대한 해석의 문제였다. 그 회의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결론을 얻었다. 이 녀석이 우리의 본심을 크게 오해한 것으로 판단을 내린 것이다. 즉 ‘한밤중에 정체 모를 동양인 남녀 2인조 강도가 자신을 그들의 차로 납치하려고 1차 시도를 하다가 여의치 않자 자신의 차를 추격해오고 있으니 나는 내 차를 타고 꽁지가 빠져라 내뺄 수밖에 없다’는 요지의 상황판단을 그가 내린 게 틀림없었다. 

아하, 그랬었구나. 동방예의지국 백성인 우리 부부는 한밤중 낯선 나라 프랑스의 한적한 시골마을 주차장에서 그만 순진한 프랑스 청년에게 부부 납치범으로 오해를 받았던 것이다. 오호 통재라! 일순 당황되면서도 어찌나 우습든지 우리들은 자면서도 낄낄대고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속력을 높여 내빼도 뒤쫓아 오는 우리를 보면서 그가 얼마나 황당하고 무서웠을까 생각하니, 그 순진한 프랑스 청년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그도 지금쯤 우리의 진심을 깨달았을까.


             ***


차숙을 해야 할 위기에서 가까스로 숙소를 잡은 일, 숙소 문제가 해결되자 주차장에 갇힌 일, 그 문제가 해결되자 프랑스 청년과 한 바탕 추격전을 벌인 일 등은 우리가 조금만 신경 썼더라면 피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일찍 이동하여 제 시각에 숙소를 잡기만 했어도 결코 일어날 수 없는 해프닝들이었다. 그러나 이런 해프닝들이 아주 무익한 건 아니리라. 어쩌면  앞으로의 멋진 여행을 위한 값싼 수업료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 사건을 그렇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계속>


**사진 위는 하룻밤 가까스로 유숙한 뻬론의 호텔 포뮬러원, 아래는 뻬론에서 가까운 아세빌러의 성당


2005-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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