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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기 [26] 독일 제2신:아헨, 정돈과 절제 그리고 풍요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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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12-24 14:02 조회 1,10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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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제2신-아헨Aachen, 정돈과 절제 그리고 풍요의 공간



 9월 17일 토요일, 쾌청. 약간 쌀랑한 바람이 낙엽을 굴리는 아인트호벤을 뒤로 했다. 아인트호벤 링에서 E25로 빠져나와 A2를 탔다. 한동안 달리다가 다시 A76으로 갈아타고 오후 2시 19분 독일 국경을 넘었다. ‘Bundes Republik des Deutchland’라는 작은 입간판 하나, 그리고 그간 고속도로 휴게소를 들어갈 때마다 보던 ‘Ouit’가 ‘Ausfahrt’로 바뀐 것이 국경을 넘었다는 사실을 명시적으로 보여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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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의 첫 인상은 정돈과 질서였다. 그러나 구시가지인 시내 중심부Zentrum에 진입하면서 이곳 역시 예의 유럽 도시들과 다름없이 복잡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초행인 나로서는 대형 주차장을 찾을 수 없었고, 길거리 주차를 하려니 공간이 없었다. 눈총을 받으며 비상등을 켠 채 길 한 쪽에 멈춰 서 있는 동안, 아내가 인포메이션 센터에 다녀왔다. 우리의 불안이 적중한 것일까. 시내에는 방이 없었다. 두어 군데 있을 만한 곳을 지도에 표시해 왔으나 찾기 어려운 외곽이었다. 물어물어 두 군데를 갔으나 모두 방이 없거나 조건이 맞지 않았다. 근교의 숙소를 찾기로 했다. 뷔어셀렌Wurselen이란 곳이 도심과 비교적 가까웠다. 비교적 넓으면서도 조용한 지역이었다. 해질 무렵 가까스로 B&B 호텔에 들 수 있었다. 깨끗하고 조용하여 마음에 들었다. 주차장도 넓고 마켓 또한 가까웠다. 주인에게 영어가 통한다는 점도 장점들 가운데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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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날 버스로 시내에 나갔다. 숙소 근처에서 아헨 젠트룸으로 나가는 버스 노선은 세 개나 되었다. 쾌적했다. 승객을 배려하는 운전사의 태도, 편리한 시설.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다. 버스를 타보고 나서야 선진국의 사회복지 실태를 절감했다. 젠트룸까지 20분 남짓. 모처럼 주차의 부담에서 해방된 홀가분함이 즐거웠다. 가벼운 마음으로 아헨의 정신적 심장부를 더듬었다. 젠트룸의 인포메이션 센터가 서 있는 곳이 바로 프리드리히 빌헬름 광장이었다. 인포메이션 센터 옆의 그리스 신전 풍 건물의 벽에서는 온천이 분출되고 있었다. 함께 서 있던 아헨 시민 한 사람은 하루 한 번씩 이곳에 와서 온천수를 받아 마신다고 했다. 시내에 온천욕을 할 수 있는 곳이 몇 군데 있으니 한 번 가보라고 권장까지 했다. 그가 하는 대로 받아 마셔보니 유황냄새가 역하게 코를 찔렀다. 이 도시가 시작된 건 기원전 3세기 로마인들에 의해서란다. 그들은 온천을 보고 이곳에 정착했다하니 이 도시와 온천은 역사를 공유하는 셈이다. 이전엔 우리나라와 일본사람들만 온천을 좋아하는 줄 알았으니 내 무지도 대단하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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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포메이션 건물 앞 보도에는 낮고 굵은 분수가 여러 개 늘어서서 솟구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엘리자 파운틴Elisa Fountain이며, 뒤쪽의 온천공과 함께 조화되어 이색적인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었다.

 인포메이션 센터 뒤쪽에 작은 연못과 분수대가 있고, 그 뒤에 대성당이 있다. 카를 대제가 로마시대의 온천 욕장이었던 이 장소에 성당을 건축한 것이 9세기의 일이니 벌써 1200여년의 세월이 흐르지 않았는가. 메츠Otto von Mets가 설계하고 짓긴 했으나 모두 카를대제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이라니 놀랄 수밖에. 그 후 증·개축이 여러 번 이루어져 현재의 다양한 양식을 보여주긴 하지만, 저렇게 끄떡없으니 앞으로도 몇 천 년이나 더 버틸 것인가. 

 독일의 유서 깊은 도시들 가운데 아헨을 선택한 것은 대성당 때문이었다. 아헨의 대성당을 보는 것이 유럽 여행의 포인트들 가운데 하나였던 것이다. 숭실대의 교무처장을 맡고 있는 이정진 교수는 말해 주었다. 아헨 대성당의 성모와 예수는 흡사 관음보살과 같은 표정을 하고 있다고. 과연 그럴까.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성당에 가서 확인하고 싶었다. 

 아헨 대성당은 과연 웅장하면서도 어떤 비밀을 간직한 듯 했다. 각각 다른 양식을 보여주는 세 건물들 가운데 핵심은 중앙의 돔이다. 이 건물은 카를 대제의 궁정 예배당으로서 바로크식의 여덟 개 이파리 부분으로 둘러싸여 있다. 805년에 완성되어 성모에게 봉헌된 이 예배당 건물(옥타곤)은 래비나의 성 비탈리San Vitale, 비잔티움의 써지오Sergios와 바코스Bacchos 등 각지에 건축된 기존의 교회 양식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원과 사각형의 중간에 해당하는 팔각형의 건축물은 예로부터 완전함의 상징이었다. 시작과 끝이 없는 원은 하늘의 영원성을, 네 모퉁이를 가진 사각형은 지구를 각각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열린 마음으로 기독교 정신을 수용한 카를 대제. 이처럼 장대한 신의 저택(즉 대성당)을 지었고 금과 은으로 장식했으며 많은 샹들리에와 청동의 문과 장식들로 내부를 꾸민 그의 뜻은 과연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중앙 예배당 왼쪽의 고딕 건축물은 카를 대제 서거 600주기인 1414년 1월 28일 시작된 이후 60여년에 걸쳐 완성되었으니, 옥타곤과의 시차는 6세기가 넘는다. 오른쪽 건물은 신 고딕 양식으로서 대성당의 첫 부분을 구성하는 궁정 예배당의 서쪽 날개로 건축된 것이다.

 이처럼 각각 다른 세 양식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모습을 보여주는 아헨 대성당. 1978년 유네스코로부터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받았다는 표석이 성당의 벽면에 붙어 있지만, 어찌 그것만으로 이 성당이 갖고 있는 특징을 전부 드러냈다고 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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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성당 내부에서 특이한 점을 느낄 수 있었다. 부처나 불교수행자들과 흡사한 모습을 하고 있는 예수님의 두 손이나 손가락, 두 손을 위로 치켜 든 예수고상, 성모자상의 얼굴 형태, 성당 입구에 전시된 연꽃 모양의 보물 등등. 다른 성당들에서 볼 수 없는 모양과 분위기를 이 성당은 전체적으로 풍기고 있었다. 예수나 성모 등의 형상에서 동양적인 면모를 찾아볼 수 있었다면 우리의 잘못된 관찰이었을까. 어쨌든 다른 성당과는 구별되는 분위기를 아헨의 대성당에서 느낄 수 있었고, 그것을 동·서의 교류의 한 단서로 수용할 수는 없을까 하는 것이 아마츄어 관광객의 짧은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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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성당의 뒤쪽에 시청사와 중앙광장이 있으며, 대성당과 붙어있다고 할 만큼 가까이에 쿠벤 박물관Couven Museum은 위치해 있었다. 안드레아 몬하임Andrea Monheim을 위해 아헨의 건축가 야콥 쿠벤Jakob Couven이 지은 것이 바로 이 집이다. 이곳 출신 쿠벤 형제가 수집한 각종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는 이 박물관은 이방인에게도 아련한 향수를 불러 일으켰다. 18세기에서 20세기 초 이 지역 부호들의 생활 모습이라지만, 화려함 속에 감추어진 전통성이야말로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같은 구조를 공유하는 게 아닌가. 특히 고풍스런 찬장, 그릇, 불을 지필 때 사용하는 풍구, 램프 등은 얼마 전까지 우리도 늘 보아오던 것들이 아닌가. 이 밖에도 이곳에는 각종 다양한 그림들, 로코코풍의 가구들, 그림 타일과 벽장식 등 많은 것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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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당 서북쪽에 위치한 아헨 공과대학RWTH(Rhineland Westphalia Technical Hochschule). 젠트룸의 버스 종점에서 쿠르하우스 거리Kurhausstr.와 세일그라벤Seilgrabenstr.거리를 왼쪽으로 돌아가면 템플러그라벤Templergraben 거리에서 이 대학을 만날 수 있다. 25만에 달하는 아헨의 인구 중 45,000이 이 대학 학생이라면 이 대학의 위상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아헨은 대성당과 아헨공대 덕에 그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릴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 대학의 캠퍼스는 생각보다 소박했으나 외관보다는 실질을 중시하는 이들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다. 방학 중이라서 학생이나 교수는 만날 수 없었다. 그러나 대학 주변의 까페에는 학생들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가득 들어차 열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예외 없이 이곳에서도 스포츠 까페가 인기 만점인 듯 했다. 스포츠 까페에서 축구 응원전을 벌이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모습을 발견하고 말았다. 우리에게도 한 때 이런 모습이 있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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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헨 공대로부터 내려오는 길에 또 하나의 성당 파르 교회Pfarr Kirche를 만났다. 규모나 위치의 면에서는 대성당과 비교할 수 없었으나, 분위기는 그에 못지않았다. 우리는 한 동안 아름다운 성당 안에 앉아서 아헨 시민들의 삶과 꿈을 생각해 보았다. 이들이 지향하는 바는 무엇이며 우리와 그들 사이의 같고 다른 점은 무엇인가. 이들의 정돈된 삶과 우리의 열정적인 삶 사이의 같고 다른 점은 무엇인가. 

 그날 저녁 6시가 되자 시청 문이 활짝 열렸다. 광장에 있던 우리 역시 뛰어 들어갔다. 혹시 이곳에 전시되어 있다는 카를 대제의 초상화를 볼 수 없을까 해서였다. 그러나 초상화는 보이지 않고 정치에 관심이 큰 아헨 시민들만 많이 만날 수 있었다. 그 날이 마침 선거 날이었고, 바로 그 시각에 선거 결과가 발표되었다. 그 안에는 많은 시민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아, 절제된 듯한 이곳 사람들도 이렇게 큰 정치적 관심들을 갖고 있었구나! 일종의 경이로운 반가움이었다. 남의 나라 선거 결과에 큰 흥미는 없었다. 한 대학생은 내게 이기고 진편이 없다는 말로 이번 선거에 대한 실망감을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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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렴풋하나마 우리는 아헨에서 독일의 미래를 보았다. 우리가 본 미래상이 독일의 다른 도시들을 전전하면서 어떻게 변해갈지 모르지만, 모든 것을 좋게 보기로 했다. 긍정적인 면이면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고, 부정적인 면이면 우리의 현실을 수정하기 위한 반면교사로 삼을 것이다. 그래서 여행길은 행복을 찾아가는 노정일 수 있는 것이다. <계속> 


**사진 위는 아헨 대성당의 아름다운 모습, 아래는 아헨 대성당 앞에서 마주친 거리의 악사들입니다.


2005-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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