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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기 [28]독일 제3신(2)-아, 쾰른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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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12-24 14:04 조회 1,03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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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제3신(2)-아, 쾰른 대성당



우리는 석양 무렵 대성당을 찾았다. 대단한 위용. 왜 여기에 산이 솟아 있단 말인가. 나는 그 위엄에 압도되어 할 말을 잊고 말았다. 저것이 인간의 작품이란 말인가. 하늘 높이 솟아오른 두 개의 첨탑, 높이 157m. 성당 앞 광장엔 실물대의 첨탑 끝 부분을 모형으로 만들어 설치해 놓았다. 사람들에게 이 성당의 크기를 상상해보란 의도일 것이다. 그것만 해도 높이 9.5m, 폭 4.6m이니 성당 전체의 크기가 얼마나 될지는 상상해 보시라. 칸트는 거대한 산 앞에서 인간이 갖게 되는 미감을 숭고라고 했다. 거대한 산 앞에 선 듯한 느낌이었다. 세상을 덮어 누르는 듯한 난폭함이 아니라, 세상을 덮는 사랑과 권능의 미학적 결정체였다. 비장을 동반하지 않는 숭고는 없다고 미학자들은 말하지만, 난 쾰른의 대성당에서 엄청난 크기의 무게로 내 영혼을 고양시키는 숭고의 미적 본질을 발견했다.

 그렇다면 1248년에 이 성당을 착공한 사람들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빠리의 노뜨르담 사원을 필두로 여러 곳에서 역사적으로 이름 난 성당들을 거치면서 규모나 정교함의 극치를 목격해왔다. 그러나 우리가 본 어느 것도 인간이 만든 것이라고 할만한 게 없었다. 신 자신 혹은 신의 부름을 받고 신의 권능을 부여받은 명장(名匠)들이 아니라면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기념물들이었다. 세상을 뒤덮을만한 신의 사랑과 권능을 그렇게 표현하려 했을까. 그렇다면 그 의도는 일단 성공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증오, 갈등, 투쟁의 소용돌이에서 한 번도 벗어나 본 적이 없지 않은가. 축조가 시작된 직후부터 300 여 년 간 건축이 중단되었고, 갖은 우여곡절 끝에 1880년에 완공이 되었으니 사실상 이 성당의 완공에는 시작으로부터 600년이 넘는 세월이 걸린 셈이다. 잦은 전쟁과 기근이 바로 그 이유였을 것이다. 완공까지 200년이 소요된 빠리의 노뜨르담보다 세 배가 넘는 시간이 소요된 것이다. 지금까지 보아온 성당들 대부분 수백 년의 기간을 소비했는데, 이 경우 시간의 길이는 인간의 정신적 깊이와 비례한다고 보면 정확할까.

 그 단단한 돌들을 모두 어디서 가져왔으며, 이처럼 떡 주무르듯 할 수 있었단 말인가. 지상 157m라면 지금 건물로 50층이 넘는 높이다. 크레인 등 온갖 현대식 장비들을 동원해서 짓는다 해도 저렇게 높게 지을 수 있으며, 이처럼 오래도록 견딜 수 있는 건물을 지을 수 있단 말인가. 그 정교한 돌조각들은 과연 어떻게 붙여나갈 수 있었을까. 의문은 꼬리를 물고 종당엔 대답이 필요 없는 숭고의 경지로 이어질 것이다.

 성당에 들어서자마자 성 바오로와 베드로의 조각상이 우리를 압도한다. 성당 내부 왼쪽의 클라라의 제단에는 예수님의 생애가 그려져 있으며, 3면의 창들에는 갖가지 그림들을 형상한 스테인드글라스가 화려하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시신을 안고 있는 막달라 마리아 등 지인들의 슬픈 표정을 그린 성화 앞에는 수백 년 전의 육필 사경(寫經) 원고가 보는 이들의 마음에 큰 감동을 주기도 한다. 

 우리는 대성당을 느끼기 위해 쾰른에 들렀다. 대성당으로부터 삶의 의미에 대한 깨우침을 받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다. 물론 규모만의 성당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돌 한 덩어리, 기둥 한 줄기가 ‘물질’의 차원에서만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없는 현장을 쾰른의 대성당에서 확인했다. 그것만으로도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는 충분하다.

  <계속>


사진은 밤에 본 쾰른 대성당


2005-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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