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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기 [29] 독일 제3신(3):베토벤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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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12-24 14:05 조회 1,133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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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제3신(3)-베토벤과의 만남



쾰른 대성당의 감동을 품에 안은 우리는 9월 20일 오전 10시 30분 본Bonn을 향해 돔블릭 호텔을 나섰다. 들어올 때처럼 쾰른 젠트룸을 빠져 나가는 일 역시 만만치 않았다. 라인강변의 큰 도시 쾰른. 다리를 건너긴 했는데, 도무지 이정표에는 본Bonn이란 글자들이 나타나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횡단보도 앞에 정차한 옆 차의 독일청년에게 물으니, 자기를 따라오란다. 20분이 넘어 걸린 그 청년의 헌신적인 인도로 무사히 본 행 565번 도로를 타게 되었다. 벌써 몇 번째 우리는 고마운 현지인들을 만나 그들의 결정적인 도움을 받았는지 모른다.

 그런데 왜 우리는 본을 가고 싶어 했을까. 본이 한 때 서독의 수도였다는 사실 같은 것은 우리에게 큰 의미가 없었다. 우리는 베토벤과, 바로크 양식의 궁전을 교사로 사용하고 있는 명문 본 대학을 만나고 싶었던 것이다. 본에 도착했으나, 마찬가지로 젠트룸은 혼잡했다. 가까스로 인포메이션 센터에 들러 방 정보를 물으니 지금 본 시내의 호텔엔 빈 방이 없단다. 고압적인 아주머니 상담원의 불친절에 혀를 내두르며 본에서의 일정을 단축하기로 마음먹었다. 

 무엇보다 먼저 베토벤 광장엘 들렀다. 독일에 오면 들르고 싶은 곳이 많았지만, 그 중  베토벤 생가, 아헨 대성당, 쾰른 대성당, 하이델베르그 대학, 흑림지대와 로만틱 가도 등은 반드시 거쳐 가기라도 하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음악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그의 불우함과 예술적 성취라는 역설적 결합이 어려서부터 내게 큰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다. 태어나고 입신한 그의 집에 들어가서 그 분위기를 느끼고 싶었다. 본 중심가가 복잡하면 그냥 다른 곳으로 떠날 수도 있었으련만, 기어코 이곳까지 온 이유이기도 하다.

 베토벤 하우스는 중앙광장에서 걸어서 5분이 채 안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두 채의 독립된 건물들로 이루어졌는데, 베토벤은 뒤채에서 태어났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작은 정원에 베토벤의 흉상이 어두운 모습으로 서 있었다. 조용히 악상을 떠올리고 있는데, 웬 불청객들이 이리도 많이 찾아와 방해하느냐는 불만스런 표정이 역력하다.

 1호실에는 베토벤의 출신, 생활환경, 그의 현실적 삶과 작곡 활동 연보 등이 설명되어 있었고, 2-5호실에는 그가 본에서 활동하던 시절이 설명되어 있었다. 6호실에는 오스트리아 빈 시절 그의 스승이었던 하이든, 알브레히츠 베르거, 살리에리 등의 동판 초상화가 걸려 있으며, 특별 전시실인 7호실에는 필사본·서한·초상화 등을 통해 베토벤 작품 활동의 새로운 면모가 밝혀져 있다. 8호실에는 베토벤의 빈 시절 자료 및 사건들이 ‘우정/사랑/귀 먹음’의 세 주제로 분류·전시되어 있다. 9호실에는 스위스의 의사인 한스 콘라드 보트머가 1956년 베토벤 하우스 협회에 기증한 수집품들 가운데 상당수가 선정·전시되어 있다. 10호실에는 베토벤의 마지막 거처 슈바르쯔슈파이너 하우스 내부 사진이 전시되어 있고, 11호실에는 베토벤이 태어난 방으로 그의 라이프 마스크와 데드 마스크가 있고, 설교단 위에는 레미기우스 교회의 세례 장부를 초록한 기록이 전시되어 있다. 마지막 방은 그가 태어난 방이다. 

 방들을 걸을 때마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마룻바닥은 심하게 삐걱거렸다. 이곳에서 독한 아버지의 감시 아래 숨을 죽이며 애태워 했을 어린 베토벤. 그의 마음이 그 소음과 함께 내게 전해져 왔다. 그의 고독과 좌절이 세상의 풍파를 헤쳐 나갈 수 있도록 하는 돛대는 결코 되지 못했음을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 한 영혼이 불행해야 한다면, 나는 과연 그런 삶을 감수할 수 있을까. 베토벤처럼 그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베토벤 하우스 옆의 한국음식점(‘맛있는 청혼’)에서 시장기를 달랜 우리는 농산물과 음식물 번개시장이 열린 광장을 건너 본 대학을 찾았다. 1705년에 건축된 바로크 양식의 화려한 건물로서 쾰른의 선제후가 살았던 궁전이라 한다. 교사(校舍)가 무척 길었고, 중간에는 2차선의 차로가 통과하는 아치형의 문이 있었다. 교사 뒤편의 공간은 주택가와 상가, 광장으로서 소음이 들렸으나, 앞쪽은 드넓은 잔디밭 호프가르텐이 펼쳐져 있었다. 마침 방학 때라서 몇 안 되는 학생들은 그 풀밭에 누워 잠을 자거나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화려하긴 하나 길게 뻗은 3층의 단순 구조. 그 캠퍼스로부터 자부심 넘치는 본 대학의 분위기는 느낀 우리는 길을 서둘렀다.<계속>


 **사진 위는 본 시내 베토벤 생가 건너편 건물 벽에 걸린 베토벤의 초상, 아래는 바로크 양식의 아름다운 본대학 건물


2005-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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