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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기 [32]에피소드 3:부르헤에서 겪은 이산(離散)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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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12-24 14:09 조회 1,138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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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3. 부르헤에서 겪은 이산(離散)의 위기




벨기에의 브루헤가 ‘이쁘고’ 자그마한 도시라는, 사람들의 말을 믿은 것이 화근이었다. 프랑스의 광활한 대지를 누비고 다닌지라(?) 우리는 좀 얕보는 듯한 마음으로 브루헤에 들어섰다. 그러나 사람들의 말처럼 손바닥만한 도시는 아니었다. 더구나 온 세상 사람들이 다 모인 듯 시가지는 관광객으로 북적였다. 우리의 1차 목표인 인포메이션센터 쪽으로 진입하는 데만도 도시 순환도로 즉 링ring을 세 바퀴쯤이나 돌아야 했다. 그만큼 복잡했다. 진입하고 나서도 목표지점에 도달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차선도 없는 옛날 그대로의 도로에 형형색색 그득한 사람들이 이리저리 밀려다니기 때문이었다. 미로가 따로 없었다. 지금까지 돌아본 프랑스의 도시들이 대개 그러했듯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성당을 중심으로 주택가와 상가들이 늘어서 있고, 그 지점으로부터 방사선의 형태로 도로가 나 있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브루헤는 좀 달랐다. 중심 되는 성혈성당Basiliek Heiling Bloed 뿐 아니라 성모성당, 구세주대성당, 성 안나 성당, 성 발뷔르기 성당, 성 야콥스 성당, 베긴회 수도원 등등 눈에 보이는 여러 개의 성당이나 수도원들이 도시의 요소마다 버티고 서 있었다. 그러니 그 성당들을 중심으로 부도심들이 형성된 것은 당연한 일. 그 때문에 우리처럼 처음 오는 사람들이 당황하게 되는 듯 했다. 


             ***


차를 타고 인포메이션 센터를 찾았으나 어리석은 일임을 깨달았다. 복잡한 도로구조, 밀리는 인파, 빈 틈 없는 주차 공간 등이 우리를 몹시도 괴롭혔다. 한동안 이리저리 돌다가 한 구석에서 길가 주차의 빈 공간을 발견했다. 그곳에 차를 ‘모셔두고’ 걸어서 인포메이션 센터를 방문하기로 했다. 늦기 전에 인포메이션 센터를 가야 숙소 정보며 관광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충 추산해본 결과 센터와는 정반대의 방향이었다. 

처음부터 주차시간을 넉넉히 해두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아마도 동전 몇 푼 아끼려는 마음이 있었는지 그 때까지도 브루헤를 얕보는 마음이 있었는지 알 수 없다. 채 1시간도 안 되는 주차 가능 시간을 확보한 채 우리는 도심을 가로질러 발에서 땀이 나도록 걸었다. 주변에는 기념비적인 건축물들과 고풍스런 시가지의 풍광들이 그득하건만, 이미 숙소문제로 ‘뜨거운’ 맛을 본지라 그런 것에 눈길을 돌릴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인포메이션 센터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그들은 상담원들을 붙들고 별 시시콜콜한 걸 다 물어보았다. 그래서 차례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짜식들, 빨리빨리 숙소 물어보고 자료나 받고 끝낼 일이지 무슨 말들이 그리도 많나?’ 욕설이 목구멍 밖으로 나오려 했다. 한 참 만에야 차례가 되어 몇 마디 정보를 받고 나니 남은 주차시간이 10여분에 불과했다. 우리는 네 굽을 놓다시피 잰 걸음으로 차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인색하기 짝이 없는 프랑스 녀석들에게 두 번씩이나 당하고 난 터라,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더구나 시가지가 이토록 복잡할 때야 단속의 손길은 오죽 맵겠는가? 벨기에 사람들은 영어 잘 하고 인상 좋고 친절도 하더라만, 원래 웃으며 뺨치는 게 이쪽 동네 친구들의 특기 아닌가! 만약 4, 50유로의 벌금이나 때려보라. 하루 숙박비가 날아가는 것은 고사하고 그 뭣 같은 기분으로 어떻게 관광이며 문화답사의 고상한 대업(大業)을 수행할 수 있으리오? 기분이 좋아도 하루 종일 다니다 보면 다리가 끊어질 듯 아픈 게 상례이거늘, 난생 처음 온 곳에서 벌금이나 떼인대서야 무슨 흥으로 관광이든 문화답사이든 할 수 있겠는가?


             ***


걸음 빠른 내가 우선 가서 차를 구해내기로 아내와 암묵적인 합의를 보았다. 뒤쳐진 아내는 좀 늦더라도 어차피 그곳으로 올 수 있을 것이니. 이 나이 먹도록 늘어난 건 눈치뿐인가. 아까 온 대로 돌고 돌아 차 있는 데까지 가려면 아무래도 많은 시간이 초과될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서 있는 곳과 주차한 곳을 직선으로 쭉 그어보았다. 그 선을 따라 걸으면 대충 남은 시간 5분 안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옛날 집들이 가득 들어찬 주택가, 사람들의 그림자도 거의 보이지 않는 그 지역을 종단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일단 들어서니 생각과 달랐다. 간단치 않은 미로였다. 이 골목이 저 골목 같고 저 골목이 이 골목 같았다. 아무리 애를 써도 애당초 그어놓은 직선을 유지할 수 없었다. 가도 가도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그 옛날 제갈량의 ‘팔진도’가 그랬다던가. 잘못하여 적군이 한 번 들어가기만 하면 뱅뱅 돌다가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오게 되므로, 그만 탈진하여 잡히고 만다는 그 미로였다. 

처음의 자리로 돌아오려 했으나 그도 여의치 않았다. 바야흐로 해는 져서 어둑어둑해지니 이젠 차보다 아내가 걱정이었다. 이미 주차 허용시간을 훨씬 넘겨버린 지금 벌금 수십 유로 아니 수백 유로가 부과된다한들 그건 문제도 아니었다. 어젯밤 간신히 차숙을 면한 우리가 오늘은 어쩌면 이산가족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간 오순도순 잘 살아오던 우리가 남북 이산가족도 아닌 브루헤의 이산가족이 되다니, 생각할수록 억울했다. 그녀도 아마 나를 걱정하고 있을 것이었다. 아름다운 도시 브루헤에 와서 자만과 어리석음으로 이산가족이 된다면, 참으로 조상님들께도 면목 없는 일일 것이다. 

이곳 사람들도 프랑스 사람들처럼 오후 너 댓 시면 모두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콕 박혀버린다. 그러니 사람을 잃어버린들 어느 누구에게 찾아가 하소연을 한단 말인가. 동네 유원지라면 안내방송이라도 하겠지만, 국제도시에 와서 방송국을 찾아갈 수도 없고 경찰서에 미아(迷兒) 아닌 ‘미성인(迷成人) 신고’를 할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없었다. 날이 어두워질수록 불안감은 더 커지고, 불안감이 커질수록 당황함은 더해지는 것이었다. 

평소부터 길눈 밝은 나는 아니지만, 브루헤가 이토록 복잡하고 험한 곳(?)일 줄이야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그러다가 최후로 한 방법을 생각해냈다. 인포메이션 센터를 가면서 광장을 가로지를 때 자전거 대여점을 본 듯한 기억이 떠올랐다. 자전거를 빌려 타고 골목골목 다니며 아내를 찾으리라 마음먹었다. 그런데 이 수준으로 그 자전거 대여점은 과연 쉽게 찾을 수 있겠는가? 더욱 암담해졌다.


             ***

 

한 시간 가까이 헤매다가 암담한 마음으로 터덜터덜 걸어 나오는데 언뜻 저 앞쪽에 많이 본 듯한 동양인 아줌마가 서 있었다. ‘어쩌면, 저 아줌마도 관광차 이곳에 왔나보다.’ 생각하면서 좀더 다가가니 낯익은 빨간색 푸조 차 한 대가 그녀의 앞 쪽에 주차되어 있는 게 아닌가? 다시 그 아줌마의 얼굴을 보았다. 아뿔싸, 그녀는 바로 내 마누라였다! 내가 헤매고 있는 사이에 그녀는 벌써 그곳에 당도하여 ‘차를 구해놓고’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를 보자 그녀는 성호를 그었다. 

이번 여행길에 내비게이터 역할을 맡겼더니 그녀는 유럽의 도시구조를 벌써 익혔단 말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계면쩍기 짝이 없었다. 차를 떠나기 전 지형지물을 익혀 두었다는 그녀의 말을 듣고 한동안 대책 없이 서두른 내가 한 없이 부끄러웠다. 이렇게 우리는 간신히 이산의 비극을 면할 수 있었고, 또 한 번 찾아온 차숙의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아내는 그것이 ‘주님의 은혜’라고 말하면서 또 한 번 성호를 그었다. 

이 사건으로 얻은 교훈 세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아무리 작고 한산한 곳일지라도 방심은 금물

둘째, 새로운 도시에서 주차를 할 경우엔 주변의 지형지물을 기억해둘 것. 

셋째, 기억에 자신이 없다면 갖고 다니는 디지털 카메라로 주변을 찍어둘 것. 

넷째, 도시의 골목길은 복잡하니 절대 거리를 일직선으로 추산하지 말 것.  

<계속>


**사진 위는 브루헤 중앙광장의 모습, 아래는 브루헤의 운하를 투어하면서 주변의 경치를 찍은 것입니다.


2005-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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