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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기 [34] 독일 제5신(2) : 로마와 게르만의 만남, 그 환상의 조화 - 트리어Trier의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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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12-24 14:12 조회 1,16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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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제5신(2) :  로마와 게르만의 만남, 그 환상의 조화 - 트리어Trier의 감동



 

 팔라스트 정원을 지나면 만나게 되는 카이저 목욕장. 그 규모나 제도야말로 우리의 상상을 불허할 정도다. 지금도 정교하고 단단한 모습으로 남아있는 지하와 지상의 유적들. 250m*145m에 달하는 방대한 규모의 욕장을 통해 우리는 콘스탄틴Konstantin 대제의 꿈과 현실을 읽을 수 있었다. 4세기 후반이면 지금부터 1700년 전의 일이다. 정작 욕장을 건설하도록 한 대제 자신은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보다 훨씬 전부터 도시의 상·하수도나 도로 등을 합리적으로 설계·시공해온 로마인들의 지혜와 능력은 이미 역사적으로 입증된 일이다. 그런 기술과 능력으로 이곳 트리어에 그렇게 큰 욕장을 건설했다. 황제 자신만 쓰려고 그것을 만들지는 않았다고 한다면, 지나친 억측인가.


             ***

 

 목욕장으로부터 헤르메스가Hermes St.를 따라 20분 이상 걸어가면 원형경기장이 나온다. 서기 100년경에 세워져 당시 2만 여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니, 대단한 일이다. 서기 100년이라면 지금부터 1900년 전의 일. 경기장을 지탱하고 있는 암석이나 벽돌은 아직도 단단하게 굳어 있고, 흙으로 덮인 스탠드에서는 환호성이 들리는 듯 내 가슴도 덩달아 뛴다. 황제인 양 큰 문으로 들어갔으나 사방을 둘러보아도 내가 앉을 자리는 없었다. 그들이 시간의 힘에 밀려 이처럼 단단한 자취만을 남기고 갔듯이 나 또한 그럴 것이니 자리는 탐해서 무엇 하랴. 1900년 전 이곳 사람들의 애환은 이 원형경기장에서 대부분 해소되었을 게 아닌가. 놀랍도다, 로마인들의 지혜와 힘이여.


             ***


 대성당Dom을 찾았다. 엄청난 규모와 화려함. 그 앞에서 나는 몸을 가누기 어려웠다. 예수님의 열두 사도들 가운데 으뜸인 베드로the Apostle Peter가 보낸 성직자에 의해 기초가 마련된 것이 이 성당이다. 실제 건축은 콘스탄틴 대제 치세(306-337)기간 쯤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그 후 상당한 시간에 걸쳐 이 건물들이 지어짐으로써 현재와 같은 다양한 양식과 모습의 성전 구조를 보여주게 된 것이다. 11세기 이후의 로마네스크 양식을 주로 하여 1716년에 렐릭 채플이 이루어짐으로써 대성당은 완성을 보았다. 따라서 대성당의 부분적 건축 시기는 4세기, 11세기, 12세기, 13세기, 18세기 등으로 나뉜다. 이에 비해 성모성당Liebfrauen은 13세기 중·후반에 건축되었으며, 독일 최초의 고딕양식으로 인정받고 있다.

 대성당의 본당에 들어가니 문으로부터 제대(祭臺)까지 멀고도 웅장했다. 좌우 양쪽에는 화려한 조형물들이 빈 틈 없이 배치되어있고, 제대가 있는 부분의 천정도 화려한 조형물로 장식되어 있었다. 말하자면 대성당의 존재로 우리는 4세기인 로마시대부터 이미 이곳에 교회가 있었음을 알 수 있게 되었으니, 대단한 일이다. 


             ***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로마인들의 유적이 바로 포르타 니그라Porta Nigra다. 둘레가 6.4km나 되던 로마 시대 시가지 벽의 북쪽 문으로 2세기 후반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포르타 니그라’를 번역하면 ‘검은 문’이 된다. 과연 그곳에 검은 돌의 어마어마한 구조물이 우뚝 솟아 있었다. 트리어에 들어와 사람들에게 길을 물으면 그들은 으레 ‘빅스톤big stone’을 기준으로 삼곤 했다. 그것이 바로 포르타 니그라임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2세기라면 지금으로부터 1800년 전인데, 저 돌들은 그 시기의 일을 그대로 담고 있으니 놀랄만한 일이다. 더구나 이 돌들은 모두 사암sand stone이고, 돌들을 고정시킨 것은 쇠 꺽쇠iron clamp 뿐이었다니, 그들의 뛰어난 토목기술은 여기서도 입증되는 셈이다. 이대로 보존하면 앞으로도 누천년 지속될 것이고, 사람들은 찾아와 로마인들의 힘과 기술을 찬양할 것이다. 그것을 보존하는 독일 사람들의 넓은 가슴과 지혜 또한 오래 기억될 것이다.


             ***


 놓칠 뻔 하다가 운 좋게 건진 트리어. 트리어에 남아있는 옛 사람들의 발자취는 문명의 교류와 역사의 힘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엄청난 대성당을 보면서 정치와 결합된 종교의 힘을 깨달았고, 포르트 니그라를 보면서 문명의 내일을 예감하게 되었다. 남의 장점을 부단히 흡수하여 내 것으로 만들고, 내 단점을 고쳐나가는 작업은 우리가 살아있는 한 지속해야 할 성업(聖業)임을 새삼 느낀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은 넓은 가슴과 관용, 그리고 역사에 대한 겸허함이다. 룩셈부르크로 넘어가는 오늘, 독일의 트리어에서 우리는 대어를 낚았다.

<계속>     


**사진 위는 서기 2세기 후반경 로마인들이 세운 트리어 성의 북문, 아래는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만들게 했으면서도 정작 그는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는, 엄청난 규모의 목욕장


2005-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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