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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기 [35] 독일 제6신 : 독일의 저력-뵐클링겐의 고철덩어리가 세계문화유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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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12-24 14:13 조회 1,20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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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제6신 : 독일의 저력-뵐클링겐의 고철덩어리가 세계문화유산으로



 9월 26일 아침 9시 40분쯤 약간 흐린 날씨. 룩셈부르크 떠남. 아쉬움 그리고 설렘. 룩셈부르크로부터 20분 걸려 독일 국경 재 진입. 620/E29 아우토반을 타고 독일의 자르브뤼켄으로 향하던 중 자르브뤼켄의 표지가 사라짐. 자르부르크를 자르브뤼켄으로 잘못 알고 들어갔다가 다시 돌아 나옴. 아주 작은 시골마을 자르부르크. 아름다운 평원, 눈을 감고 되새김질에 열중하는 하얀 소들. 쉼 없이 돌아가는 풍력 발전기의 바람개비들. 아름다운 집들, 울창한 나무들...


             ***


자르브뤼켄 12km 전방에서 우린 소도시 뵐클링겐을 만났다. 독특한 세계문화유산이 있다는 곳. 그래서 아우토반을 빠져나왔다. 열기가 식어버린 제철회사의 녹슨 굴뚝이 우뚝한 곳, 그래서 우리의 호기심이 발동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을 27개나 지닌 나라 독일. 지금도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 숨 쉬는 고성(古城)이나 대성당, 옛 시가지 등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뵐클링겐의 세계문화유산은 이미 숨이 끊어진 고철덩어리였다. 그로테스크의 미학이랄까. 불만 지피면 지금이라도 용광로는 펄펄 끓는 쇳물을 쏟아낼 것만 같은 이 거대한 고철의 침묵. 숨이 멎을 듯한 충격이었다. 세상에, 문 닫은 제철소를 곱게 모셔 두었다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극시키다니! 죽어버린 고철 덩어리에 ‘문화’를 수혈하자 다시 살아난 뵐클링겐 제철소Volklinger Hutte.    

 1881년에 건립 이후 한 세기 동안 세계의 산업에 크게 기여한 뵐클링겐 제철소. 건립 후 20세기 중반에는 17000명 이상을 고용할 정도로 번창했다. 불어 닥친 철강위기로 1986년 폐쇄. 1992년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숨이 멎었다가 새로 살아난 60만 평방미터의 고철 덩어리는 이곳 사람들의 자랑거리였다. 

 주차장에 차를 세운 우리는 제철소를 눈앞에 보면서도 그곳 사람들에게 ‘세계문화유산Weltkulturerbe’ 가는 길을 물었다. ‘설마 저게 세계문화유산이랴?’ 우리의 무지에서 나온 의혹 어린 자문이었다. 처음엔 ‘폐광촌’ 혹은 ‘지금은 몰락한 옛 산업도시’의 흉물스런 흔적쯤으로 생각한 우리. 그것이 설마 세계문화유산일 줄은 전혀 몰랐다. 우리의 물음에 그들은 입에 침을 튀기며 가는 길을 설명해 주었다. 우리 같으면 말도 필요 없이 턱만 살짝 들어 ‘쩌어기~’하고 말 것을, 그들은 우리의 손을 잡고 손가락으로 그어가며 뻔한 길을 설명한다. 자부심으로부터 나온 친절이었으리라.


             ***


 쉽게 찾아갔으나 참으로 낯선 풍경이었다. 한 때는 매 24시간마다 6천 톤 이상의 용액 원철(原鐵)이 생산되던 곳. 1300도의 뜨거운 용광로 아궁이, 굴뚝으로 배출되는 1200도의 뜨거운 공기. 냉각을 위한 3백만 톤의 물, 고로의 불을 피우기 위한 62000 입방미터의 공기, 12000톤의 원광이 항상 필요했던 곳. 그런데 지금 그곳은 썰렁한 쇳덩이로 남아 있었다. ‘세계문화유산’이란 팻말만 없었어도, 그냥 ‘흉물’에 불과했을 것 아닌가. 


             ***


 마침 그곳 한 구석에서는 ‘천일야화’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비록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곤 하나 ‘죽어버린’ 제철소를 그냥 방치하지 않으려는 그들의 노력이 돋보였다. 터키를 비롯한 아랍세계의 보물들이 ‘Treasures from 1001 Nights’라는 제목 아래 이곳에 전시되고 있었다.

 지금껏 접하지 못했던 아랍세계의 보물들이었다. 고철 덩어리와 황금으로 치장된 아랍세계의 보물들. 묘한 대비(對比)였다. 반달 모양으로 휘어진 아랍의 칼이나 살벌한 창도 모두 철로 만들어진 것들이고 보면, 양자의 대비를 부조화로만 말할 수는 없으리라. 우리의 주안점은 제철소 관람에 있었다. 그러나 가보고 나서야 아랍의 보물전이 그곳에서 열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아랍 보물전의 입장권을 팔고는 그 입장권으로 제철소까지 보도록 했다. 국내외 관광객들 뿐 아니라 학생들도 단체로 와 있었다. 어린 학생들이야 누가 벌겋게 녹슨 그곳을 제 발로 찾아오겠는가. 아마도 아랍 보물 전을 미끼로(?) 학생들에게 제철소를 보여주어 그들의 전통적인 ‘철강 마인드’를 되살려 보려는 의도가 있었으리라. 

 예로부터 철강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했다. 1, 2차 세계대전의 주역들 모두 철강산업의 선두주자들이었다. 역사의 발전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물질은 철이었다. 철기시대가 열리면서 인류의 삶이 획기적으로 발전하지 않았는가. 어쩌면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꾼 IT 혁명, 그 핵심에 반도체가 있듯, 과거에는 그 핵심에 철이 있었으리라. 말할 필요 없이 독일은 철강산업의 선두주자였고, 지금도 그렇다. 미국·일본·유럽의 강국들이 지금까지 철강산업을 두고 자존심 다툼을 벌이고 있는 것을 보라. 철강산업은 그들의 식민지 개척사와 함수관계를 갖는다. 우리도 이미 철강산업의 경쟁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철에 대한 철학’은 불모지에 가깝다. 철에 대한 철학의 바탕이 있어야 반도체도 제대로 꽃 필 수 있는 게 아닐까.

             ***


 아랍 보물전을 관람하고 본격적인 제철 플랜트의 투어에 나선 우리. 외면적으로는 고철 덩어리였으나, 안으로 들어가니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영상으로 소리로 실물로. 당시의 모습을 찍은 것인 듯, 그 영상은 실감나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흐르던 쇳물이 형틀의 구멍을 통해 사출되면서 성형된 쇠줄들을 한 줄기씩 잽싸게 찍어 옮기는 노동자들의 동작. 아슬아슬하면서도 리드미컬한 그들의 몸짓이 내게 전율로 전달되었다. 영상을 본 뒤 방문한 작업장. 흐릿한 조명으로 어둑한 그곳에는 콘베이어벨트, 각종 철광석, 기계, 전시실 등이 그득 들어차 있었고, 작업의 소음도 재생되고 있었다. 그들이 입던 작업복과 헬멧도 걸려 있었다. 아마도 그 옷들에는 땀이 배어 있을 것이다. 금방이라도 작업반장 스미스가 헬멧을 벗고 땀을 훔치며 소리를 지를 것만 같은 긴장에 온몸이 조여든다. 갑자기 콘베이어벨트가 중간에 끊어져 수십 톤의 쇳물이 쏟아질 것만 같은 불안감, 1300도로 부글부글 끓는 용광로의 쇳물이 냇물처럼 흘러와 감쌀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우리는 서둘러 밖으로 나와 제철소의 죽어있는 모습을 확인하곤 안심했다. 


             ***


 옛날의 시가지나 고성들, 대성당들만을 보아오던 우리에게 뵐클링겐의 제철소는 색다른 감동으로 다가왔다. 이미 죽은 몸이나 문화의 수혈을 받아 다시 태어난 제철소. 그것은 이전에 보았던 대성당들과 달리 정신과 물질이 골고루 섞여 승화된 제3의 존재였다. 정신이나 물질 일변도로 인간의 삶을 꾸려나갈 수는 없다는 것. 그것을 ‘죽어서 다시 태어난’ 뵐클링겐의 제철소는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무거우면서도 가벼운 마음으로    다음 행선지 자르브뤼켄을 향할 수 있었다.<계속> 


**사진 위는 뵐클링겐의 세계문화유산 자르제철소, 아래는 자르제철소에서 열리고 있는 '천일야화' 보물전

  

   

2005-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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