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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임용비리와 우리 사회의 연줄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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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05-13 17:02 조회 15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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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임용비리와 우리 사회의 연줄문화

 

최근 언론에 보도된 일부 국립대학들의 교수임용 비리 사건은 우리나라 지식인 사회의 위선적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그것은 아무리 시대가 바뀌었어도 정실과 ‘연줄(학연‧혈연‧지연)’에 의한 패거리 문화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 사회의 한계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대학교수 시장처럼 좁고 경직된 경우도 드물다. 너나없이 힘써 인재들을 배출하긴 하나 그들이 교수로서 설 자리는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현직교수들에게도 대학 이동의 기회는 거의 닫혀 있다. 혹 무슨 문제로 한 대학에서 밀려나면 그것으로 그의 학문인생은 끝장이다. 교수들에게 엄정한 평가의 잣대를 들이밀기 어려운 것은 그 때문이다. 대학 바깥의 사람들이 교수들을 ‘철밥통’으로 비아냥거리는 것도 피해가기 어려운 우리 사회의 온정주의와 무관하지 않다.


신임교수를 채용할 경우 지원자의 객관적 조건과 함께 연줄을 무시할 수 없는 것 또한 간접적으로는 이런 현실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그런 온정주의나 연줄 문화에 갇혀 있는 한 우리 사회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제 살을 도려내는’ 결단이 지식인 사회에 요구되는 시점이다.


요즈음 들어 엄정하고 객관적인 평가 기준의 마련과 예외 없는 적용을 모든 대학들은 표방하고 있다. 학문적 수월성(秀越性)만이 우리의 대학을 세계적인 경쟁의 무대에 올릴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이론적으로나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눈을 안으로 돌리면 그런 잣대만으로 새 사람을 뽑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당장 내 제자, 내 후배, 내 자식이 코를 빼고 있는 마당에 무작정 객관적인 잣대를 들이밀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지원자와 가까운 관계에 있는 인사를 심사위원으로 위촉한다거나 심사위원 자신들의 출신대학 후배에게만 최고 점수를 주는 등 몰상식한 일들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특정 대학(들)의 교수시장 독점욕이나 후배에 대한 맹목적 밀어주기 등 밝혀진 일부 원인들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간 공고하게 구축되어온 교수 시장의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것이 그런 대학들의 행태다. 그런 대열에 끼지 못한 대학들 또한 그나마 자기 대학에 확보된 자리나마 뺏기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그래서 뜻 있는 이들은 심사위원으로 들어간 교수들보다는 그들의 뒤에 도사리고 있는 그들의 출신대학이나 학과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것이다. 보다 훌륭한 사람을 뽑아야 한다는 인재 등용의 참뜻은 실종되고, ‘자기 사람을 심어야 한다’는 이기적 논리에 의해 대학들 간의 경쟁만 치열해진 셈이다. 


꽤 오래전부터 대학사회는 개혁의 명분 아래 스스로의 체질 개선을 표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학들의 상황은 갈수록 나빠져 왔고, 심지어 미궁에 빠져드는 느낌이다. ‘나귀를 타고 나귀를 찾듯’ 개혁의 주문을 외면서도 개혁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 빠진 것이다. 실종된 개혁의 시대에 허둥대는 일부 대학이나 교수들이야말로 코드화된 패거리 의식을 개혁의 이념으로 착각하는 집권세력과 다를 바 없다. 오늘날처럼 대학이 어려워진 것은 오도된 신자유주의의 열풍이나 학생 자원의 고갈 등 외적인 요인들 때문이기도 하겠으나, 문제의 본질은 오히려 시대의 변화를 자각하지 못하는 대학들 내부에 있다.


학생을 가르치고, 이를 행정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대학 기능의 핵심이다. 그 가운데 교육이야말로 대학 존립 이유의 핵심이며, 그 가운데 중심은 교수다. 대학 개혁 자체가 교수 개혁이라고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말만 무성하게 오고가는 지식인 사회의 담론이 실천되어야 할 최전선이 바로 교수 임용의 현장임을 웅변으로 보여주는 요즈음이다.


 <2003. 7. 23.>                                          조규익(숭실대 교수/국문학)


2003-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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