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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교거부' 사태를 보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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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05-13 17:03 조회 155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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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교거부’ 사태를 보는 눈


 각종 폐기물 소각장, 장례식장 등 이른바 혐오시설이나 장애인 시설을 둘러싸고 해당 기관과 주민들의 갈등이 심해지고 있다. 환경오염이나 부동산 가격 하락 등 야기되는 문제들이  삶의 질 하락에 직결된다고 보는 것이 지역주민들의 입장이고, 현실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어딘가에는 이 시설들을 세워야 한다고 보는 것은 해당 기관의 입장이다. 이처럼 양측의 이해관계나 견해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만큼 서로 간에 오가는 의사표현 역시 분명 도에 넘친모습들을 보이게 되어 있다.


그 가운데, 자녀들의 ‘등교거부’ 운동 만큼은 주민들의 적극적인 의사표시 수단들 가운데 하나임을 인정하면서도 결과나 명분의 측면에서 결코 찬동할 수 없다. ‘등교거부’의 주체는 학생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 운동의 주체는 보이지 않고, 학부모나 사회집단의 주장만 크게 부각될 뿐이다.


등교거부의 대열에 중등학교도 포함되어 있지만, 초등학교들도 상당수 들어있다. 초등학교 학생들이 첨예한 지역사회의 문제에 항의하는 뜻으로 ‘자진해서’ 등교 거부를 벌이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말하자면 어른들의 의사표현을 위해 어린 자녀들을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이 생각 속에는 아이들을 학부모나 어른들의 ‘소유물’ 쯤으로 여기고 있는 우리 사회의 낙후된 의식이 자리잡고 있다.


학생의 부모라 할지라도 학교에 가지 않으려는 아이들을 설득하여 등교시킬 의무는 갖고 있지만, 그들에게 등교 거부를 강요할 권리는 갖고 있지 않다. 설사 학교 자체에 문제가 있다해도 정상적인 학교 행정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온당하다. 학교 외의 일 때문에 자녀들의 등교를 막겠다는 발상은 전혀 설득력을 가질 수 없다.


학교 교육을 제 때 받지 못함으로써 생기는 자녀들의 손해는 누구로부터 보상받을 것인가. 대학가의 등록금 투쟁이나 각종 학내 사태 등으로 선호되던 ‘수업 거부’나 ‘동맹 휴업’ 등이 많은 구성원들의 호응을 받을 수 없었던 것도 그런 결과가 행위 주체의 손해만 초래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만큼 뜨거운 교육열을 가진 나라도 없다. 다른 모든 분야에 직•간접적으로 연결될 만큼 우리나라의 경우 교육은 국가적인 중대사다. 그럼에도 사회적인 문제가 생길 때마다 우리는 별 고민없이 등교거부를 수단으로 선택하는 모순적 행태를 보여준다. 안타까운 일은 교육에 대한 ‘중시와 경시’라는 두 가지의 상반된 견해가 이런 행태에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교육처럼 중대한 문제를 포기하면서까지 반대하는데 강행할 것이냐?’는 의사표현이겠지만, 사실 학교나 학교 교육은 지역사회만 함께 할 뿐, 불거진 문제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따라서 등교거부란 어른들이 아이들을 볼모로 벌이는 ‘자해 행위’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표면적으로 보면 교육을 아주 중시하는 듯 하지만, 사실은 교육을 철저히 경시하고 무시하는 행위다. 제도교육 혹은 공교육이 불신을 받는 요즈음이지만, 현재로서는 다른 대안이 없는 것 또한 제도권 내의 공교육이다.


‘6•25와 같은 전시상황에서도 학교교육은 실시했다’는 말은 공교육이야말로 한 시도 그만 둘 수 없음을 뜻한다. 어린 시절 학령기에 이루어지는 제도권 교육은 ‘시의성’이 생명이다. 최근 평생교육의 이념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긴 하나, 제 때 교육을 받지 못함으로써 생기는 교육의 결손을 메우기란 쉽지 않다. 자기 자식들이 등교하지 못할 때에도 다른 지역의 아이들이나 세계의 아이들은 한 시도 단절없이 교육을 받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학교 이외의 문제로 학교교육을 볼모 삼는 일이야말로 나라와 자식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어른들로서 할 일은 결코 아니다.

                                            조규익(숭실대 국문과 교수)


2003-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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