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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과 정치인들은 역사로부터 배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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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05-13 17:07 조회 18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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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과 정치인들은 역사로부터 배우라


 바야흐로 해체의 국면에 접어든 우리 사회. 그 해체를 가속화시키는 주된 요인은 바로 우리의 내부에 있다. 그럼에도 그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이른바 지도층의 무지와 무감각은 우리 모두에게 ‘재앙’이다.

공동체의 해체를 가속화시키는 내부적 요인들 가운데 최근의 두 사건만 꼽아보자. 하나는 불법 대선자금 모집, 다른 하나는 공직사회의 부조리를 압축적으로 보여준 울산시 공무원 뇌물 사건이다. 대기업이 정치집단에 정치자금의 명목으로 돈을 바친 사건이 전자이고, 중소업자들이 하급공무원에게 돈을 바친 사건이 후자다. 양자를 싸잡아 말하면 국가의 생산 그룹과 정치•행정 등 관리 그룹 사이의 돈거래다.

그런데, 후자는 전자에 비해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 전자가 아무리 경천동지의 능력과 기술을 갖고 있어도 후자가 써주지 않으면 소용 없다. 전자가 아무리 잘 해보려 해도 후자가 펜대 한 번만 삐딱하게 놀리면 끝장이다. 그러니 그 돈거래란 일방적인 ‘상납’일 수밖에 없다. 흔히 양자간의 돈거래에 ‘대가성이 있네 없네’로 왈가왈부하지만, 그런 논란이야말로 ‘소가 웃다가 코뚜레가 부러질만한’ 코메디일 뿐이다.

밝혀진 대로, 으름짱을 놓거나 대가를 약속하거나 편의를 보아주는 등의 수법으로 돈을 ‘갈취’한 것이 두 사건의 공통점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우리나라는 대통령부터 말단 공무원에 이르기까지 ‘돈거래’나 ‘저질적인 착취’의 행태를 존립기반으로 하고 있는 셈이다.

재투자되어야 할 기업 활동의 이윤을 상납 받아온 정치권의 관행이나 뇌물의 액수에 따라 관급공사의 업체를 선정한 하급 공무원의 행태 모두 ‘민생 수탈’의 저열한 사례들이다. 그런데, 더욱 비극적인 것은 이것이 하루 이틀 사이에 이루어진 폐습이 아니라는 점이다.

조선왕조를 해체시킨 결정적인 사건들 가운데 임술민란과 동학농민전쟁이 있다. 탐관오리에 대한 징치, 불량한 유림과 양반무리에 대한 징벌, 무명의 잡세 폐지 등은 동학군이 내건 ‘폐정개혁 12조’의 중요 내용이며 그보다 30여년이나 앞서 전국적으로 번진 임술민란의 핵심적 문제이기도 했다. 특히 수령이나 아전배들이 유일한 생산계층 농민들을 착취하던 관행은 왕조의 해체를 결정적으로 가속화시켰다. ‘위로부터 아래에 이르기까지 생산계층을 수탈하는 체제’라는 점에서 조선조와 지금 우리 사회의 차이는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수탈의 논리에 안주하고 있는 지금의 정치집단은 국민들에게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아집과 소리(小利) 때문이다.

국가라는 큰 배의 나침반이 이념이나 철학인데, 지금의 정치집단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다. 얼마 전 나라의 안위가 달린 파병의 당위성을 파악하기 위해 다녀온 시찰 결과를 보고한 적이 있었다. 임진왜란 직전 일본을 정탐하고 돌아온  두 인물이 당파의 이익 때문에 상반된 보고를 올려 나라를 그르친 것처럼, ‘코드’에 따라 대외정세 또한 달리 파악한 것은 아닌가하여 뜻있는 인사들이 크게 걱정한 바 있다. 자신들의 작은 이익만 확보하면 권력이 영속되리라는 착각 속에 매몰된 그들의 귀에 나라가 거덜 나는 소리는 들리지도 않는다.

사실 생산자 그룹이나 관리그룹은 상호 보험 관계의 양자다. 생산자 그룹이 경쟁력을 바탕으로 잘해 주어야 정치집단의 존립 근거도 탄탄해지고, 생산자 그룹이 잘 되기 위해서는 관리 그룹의 지극한 보호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생산자 그룹으로부터 돈을 긁어내는 재미에 나라를 거덜낸 것은 우리 과거 역사의 치욕적인 부분이다.

솔선수범해야할 정치집단의 고식적인 자기방어 논리를 바탕으로 민심의 이반이 가속화 되는 지금의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구한말의 민족적 치욕과 비극을 다시 경험할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가 겸허한 마음으로 역사책을 들춰 보아야 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조규익(숭실대 국문과 교수


2003-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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