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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미년을 마무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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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05-13 17:08 조회 19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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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추한 백규서옥을 수시로 찾아 주시고 관심을 보여주신 네티즌 여러분!


백규서옥의 주인으로서 한 해 동안 베풀어 주신 여러분의 사랑을 잊을 수 없습니다.
이제 계미년을 마무리해야 할 시점이 되었습니다.
백규서옥 만이라도 현실정치로부터 오염되지 않은 채 깨끗이 지켜내고 싶습니다만, 어디 우리네 삶이 언제 한 순간이라도 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던가요?
한 해를 마무리하며 정치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이해하여 주셨으면 합니다.


사실, 계미년의 출발은 희망과 기대 그 자체였습니다. 노무현 정권의 출범은 우리나라 정치사에서 보기 드문 ‘사건’이었습니다. 연초부터 비주류와 주류의 교체를 바탕으로 새로운 정치의 패러다임이 수립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우리 모두 가졌던 것이 사실입니다.


저 역시 출신이나 성장 배경, 학벌 등 모든 면에서 대통령과 이른바 ‘코드’를 같이 하는 사람입니다. 그동안 이 사회의 노른자위를 독식해온 엘리트 계급이나 기득권 세력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되어 왔다는 점에서 노무현의 출현은 저 같은 마이너리티에겐 ‘복음’ 그 자체였습니다. 새로운 역사를 수립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런데 시간이 흘러갈수록 그런 기대는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실망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은 어쩌면 기대가 지나치게 컸기 때문이었다고나 할까요? 물론 기대와 실망 사이의 발생 시차가 너무 짧다는 점은 우리의 ‘못 말릴’ 성급함 때문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열매 될 꽃은 첫 삼월부터 안다’는 속담은 명민한 우리네 조상들이 누천년 삶의 경험에서 얻은 교훈이기도 하지요.


‘말들의 성찬’으로 정권의 첫 삽을 뜨기 시작한 노 정권은 말 그대로 ‘속 빈 강정’의 행보를 내딛기 시작했지요. 언론과의 마찰, 사회계층이나 신구 세력간의 갈등, 우방국들과의 외교적 마찰 등등 빚어서 득 될 일 없는 악수(惡手)들을 밥 먹듯 둠으로써 ‘축복 받아야 할’ 취임 초기의 신혼시절을 다 날려 버린 것입니다.


대내적으로는 계층간, 세대간 갈등의 봉합을 통해 사회적 통합을 이루어야 하고, 대외적으로는 능숙한 외교를 통해 국익을 극대화 시키는 것이 제대로 된 대통령의 임무이겠지요. 그러나 하는 일마다 그 기본으로부터 반대 방향으로만 질주하는 대통령의 행태. 국민들은 이래저래 불안과 초조 속에 대한민국호의 앞날을 걱정하게 된 겁니다. ‘대통령 못해먹겠다’는 질 낮은 푸념이 계속되던 와중에 ‘재신임 투표’라는 기상천외의 돌파구를 생각해낸 것 역시 그 연장선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일이지요. 코너에 몰린 대통령으로서는 대선자금 문제야말로 상황을 일거에 반전시킬 수 있는 카드로 보았겠습니다만. 자신과 측근들의 비리가 들추어짐에 따라 도리어 자신들을 해치는 ‘칼날’로 반전되고 말았습니다. 자신을 제외한 개혁이나 반성, 참회가 얼마나 무모하며 부도덕한 일인가에 대한 교훈을 역으로 우리 모두에게 보여주었으니, 그나마 전혀 무익했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어쨌든 지금 대통령은 기호지세(騎虎之勢)의 난국에 처한 것만은 분명합니다. 애당초 ‘자신은 깨끗하다’는 믿음으로 대선자금이라는 범의 등에 올라탔으니, 자신들의 구린 구석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하여 ‘달리는 범의 등’에서 내릴 수는 없는 일이지요. 범의 등에서 내리면 곧바로 범에게 잡혀 먹힐 테고, 그렇다고 마냥 달리다가는 미구에 닥칠 ‘낭떠러지’에서 범과 함께 떨어져 버릴 것이니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막다른 골목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혹시 제가 궁지에 몰린 대통령을 보며 고소해한다고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와 본질적인 의미에서의 ‘코드’가 맞아 떨어지는 대통령. 그의 출현을 매우 반긴 사람으로서 너무나도 어이없는 그의 추락이 안타까워 내뱉는 탄식일 뿐이지요.


사실, 노 정권 탄생에 일등공신이라 할 수 있는 ‘젊은 세대들’에게도 문제가 많다고 봅니다. 어떤 정치학자는 지나치게 강한 그들의 이념적 성향을 노 정권의 문제로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집권세력의 강한 이념적 성향이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제대로 된 이념을 갖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봅니다.


한 시대를 바꾼 집권세력이라면, 특히 권력을 잡은 비주류라면 당연히 이념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경우의 이념이란 시대를 선도할 수 있어야 하고, 국리민복에 기여할 수 있는 ‘생산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냉전시대에 상대편을 무너뜨리기 위해 고안된 ‘공격 무기’가 이념일 수는 없습니다. 앞 시대에 상대편이 그들의 이념으로 우리를 핍박했으니 이제 우리가 그들을 핍박할 차례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이념이 될 수 없습니다. 새 시대 이념의 대전제는 상생과 공존공영의 원칙이어야 합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구정물 통에 들어가 있는 주제에 입으로는 청렴과 정도를 외치는 행태를 시대착오적 이념에 갇혀 있는 집권세력으로부터 발견하게 됩니다.  

 

그럼, 새해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년 총선에서 의석수 늘리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집권세력으로서야 ‘필생즉사 필사즉생(必生卽死 必死卽生)’이라는 경구가 눈에 들어올 리도 없겠습니다만. 대통령을 포함한 그들이 새로 태어나지 않고는 난국을 탈출할 수 없습니다.


대통령은 외부의 적을 타도하기 전에 자신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적들’을 쓸어내야 합니다. 남에 대한 미움의 싹을 도려내야 합니다. 화합을 통해 울려나오는 즐거운 노랫소리가 세상에 가득 찰 때 비로소 대통령은 ‘어른’이 될 수 있습니다. 진정한 대통령이 되기 위한 입사의례나 상생의 굿판을 벌여야 할 때입니다. 통절한 자기반성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육두문자나 거침없이 뱉어내는 것’을 격식 파괴나 권위 파괴의 증거로 내세우는 것은 참으로 유치합니다. 그것을 새 시대 새 대통령의 징표로 여기는 것은 더더욱 말이 안 됩니다. 대통령은 언행에서 ‘어른’이 되어야 하고, 책임 있는 가장이어야 합니다. 구성원들 모두가 울어도 결코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됩니다. 화장실에 들어가 몰래 눈물을 흘리거나 외로움을 달래면서도 가족들 앞에서는 자애로운 웃음을 보이는 것. 이것은 결코 가식이나 위선이 아닙니다. ‘코드’라는 해괴한 이름의 패거리 문화를 청산하고, 모두를 보듬어 안는 인간적인 폭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학교에 몸을 담고 있는 저로서는 또 한 가지 바람이 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세칭 일류대학들의 횡포가 사라졌으면 하는 겁니다. 제가 노대통령에게 가장 크게 기대했던 것들 중의 하나가 바로 학력 콤플렉스의 해소입니다. 사실 우리 사회가 10년 가까이 1만 불 수준을 탈피하지 못하는 이유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학력차별에 있다고 봅니다. 학력이 실력을 보장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습니다. 우리나라처럼 문제투성이의 교육제도 하에서 결코 학력은 실력을 담보할 수 없습니다.

 

얼마전 기업들이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우리나라의 대학들을 어떻게 차별하고 있는지를 뚜렷하게 보여주는 문건 하나가 언론에 공개되었지요. 출신 대학에 따라 점수가 차등화된 그 문서를 보면서 저는 며칠 동안 밥맛을 되찾을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실력을 쌓아도 출신대학 때문에 서류전형의 단계를 통과할 수 없다면, 세칭 일류대학 출신 몇 명 빼고 대한민국의 모든 젊은이들은 아니 대한민국의 평균 국민들은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사람은 수시로 존재가치의 확인을 통해 생활에 대한 자신감과 비전을 갖게 됩니다. 스스로 세상에 존재할 가치가 없다고 느낀다면, 죽을 수밖에 더 있겠습니까? 그런 점에서 학력에 대한 이 나라 기득권 세력의 편견이야말로 이 나라를 ‘사막’으로 만드는 주범입니다. 그로부터 모든 사회악이 불거져 나오는 현실을 외면할 수 있겠는지요? 학력의 편견에 사로잡혀 국가의 장래를 그르치는 자들의 죄악을 무슨 수로 씻을 수 있을까요?

 

지방대학을 나온 저는 한국사회의 대표적인 소외계층에 속한 존재입니다. 수적으로는 다수계층에 속합니다만, 영향력의 면에서 마이너리티에 속하는 제 입장은 현실 생활에서 참으로 미묘해질 때가 적지 않습니다. 일과 사회에 대하여 저 스스로 자신감을 갖고 있는 것과 별도로 사회가 제게 보여주는 편견 때문에 당황하는 경우가 많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비극적인 것은 노 대통령이 등장한 이후 이런 병리현상이 더욱 심해졌다는 사실입니다. 그 전에는 수도권의 대학교수사회에도 쌀밥 속의 뉘처럼 간혹 지방대학 출신들이 들어 있었지요. 그런데, 요즈음은 지방대학에서 공부했다는 흔적만 보여도 교수로 대학에 입성하는 것은 아예 꿈조차 꾸지 못하는 형편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현상이 현실로 고착된 것도 사실은 그리 오래지 않지요.

 

근래 국민들이 대통령을 바라보며 ‘대학에 가지 않아도 열심히 노력만 하면 대통령도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법도 한데, 현실이 그 반대인 것은 왜일까요? 그 원인이나 책임을 대통령 1인에게 떠안기는 것은 좀 가혹할지 모르겠습니다만, 대통령으로서도 그에 대하여 한 번쯤 책임을 느낄 필요는 있지 않을까요? 대통령의 말대로 링컨을 존경하고 한국 사회의 병리현상을 뒤집어 놓을 꿈을 가지고 있다면, 우선적으로 기득권 세력의 못된 편견이나 관행을 바꾸어 놓으려는 노력이 따라야 하는 것 아닌지요?

 

그러기 위해서라도 ‘좋은 대학은 나오지 못했지만’ 당신들 못지않게 능숙하다는 점을 보여 주었어야 하는 것 아닌지요? ‘개구리 튀듯’ 종잡을 수 없는 행태를 보여주는 것이 ‘못 배운 사람들’임을 보여주려는 심산이 아니라면, 어떻게 해서 1년도 안되는 사이 국민들의 학력 콤플렉스만 심화시켜놓고 말았는지 땅을 치고 싶은 심정입니다. 쓸 데 없는 말장난으로, 그야말로 득 없는 싸움으로 날밤을 지새우지 말고 차라리 기업의 CEO들이라도 청와대에 초청하여 그들이 지니고 있는 학력에 대한 편견이나 깨부수려고 노력했더라면 이 나라에 오늘날과 같은 암운이 덮이게 되었겠어요?

 

지난 1년을 생각하면 ‘짧은 인생에서 참으로 귀한 시간을 허비했구나’라는 회한이 앞섭니다. 이 모두를 대통령 1인만의 책임으로 돌리려는 것은 아닙니다. 어쩌다 보니 화풀이의 대상으로 대통령이 떠올랐을 뿐이지요. 모두 ‘저 못난 탓’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슬픔과 기쁨, 어리석음과 지혜로움, 어둠과 밝음이 서로 얽혀 이루어지는 게 인생이 아닌지요? 지난해의 부정적인 기억들을 지워 버리기 위해서라도 새해에는 좀더 정력적으로 뛰어 봅시다.

 

백규서옥 손님 여러분!
새해에는 소망들을 모두 이루시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건강’하소서!!!

 

계미년 세모에


 백규  절하고 올림


2004-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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