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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대학들의 '글로벌' 지향 의도를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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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05-13 17:09 조회 238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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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숭실대학신문' 868호(2004. 3. 8.) 사설로 실렸습니다.


얼마 전 국내 k대학의 총장은 ‘글로벌global’ 시대의 개막을 선언했다. 그동안 자기 대학의 이름 앞에 거의 독점적으로 사용해오던 ‘민족’이란 말 대신 앞으로 ‘글로벌’을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세계화의 시대에 진입했다고 착각하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 때문에 그 선언이 그다지 충격적이었다고 볼 수는 없다. 사실 그 대학이 국내에서 라이벌로 생각하고 있는 몇몇 대학들과의 경쟁에서 도저히 이길 수 없는 현실을 호도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글로벌’을 도입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지만, 곰곰 생각하면 이 선언이 지닌 문제는 대단히 심각하다. 그런 입장을 공개적으로 천명한 그 대학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대한민국의 대학들이 내심으로는 그 길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를 선도한다고 자부하는 지성인들이 ‘민족’과 ‘세계화’의 개념이 상충된다고 보는 현실은 분명 이 나라의 불행이다. 세계사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볼 때, 정체성을 상실한 민족이 세계화를 성취한 경우는 찾아볼 수 없다.

세계화란 무엇인가? 자민족 중심의 강고한 울타리를 벗어나 타 민족, 타 국가들과의 선린 관계를 바탕으로 공존하는 생활 방식이 그것이다. 이 경우 민족의 정체성 확립은 개방과 공존의 대전제다. 따라서 나찌즘 류의 폭력적인 자민족 우월주의와는 분명 다른 것이 민족적 정체성의 확립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와 대학들은 과연 민족적 정체성 확립의 단계를 거쳤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지배 권력의 교체에 따라 갈팡질팡해온 우리의 대학사야말로 역사의 파행과 모습을 같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세계사의 진운(進運)으로부터 많이 비껴나 있는 우리의 모습을 오늘날의 대학에서 확인하게 되는 것은 비극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들이 너나없이 ‘글로벌’을 지향한다면, 대개의 경우 구두선(口頭禪)이거나 자신들의 초라한 모습을 개칠하기 위한 위장술일 뿐이다. 그렇다고 ‘글로벌화’를 거부하거나 더 나아가 그것을 죄악시하는 수구적 입장에 서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글로벌화’란 자신의 것을 버린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세계화란 철저한 자기 정체성의 확립을 바탕으로 가능하다는 사실을 대학인들은 잊지 말아야 한다.
                                                조규익(국문과 교수)


2004-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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