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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의 계획을 세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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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05-13 16:18 조회 123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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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의 계획을 세우며



"섣달 그믐날 개밥 퍼 주듯 한다"/"섣달 그믐날 시루 얻으러 다닌다"는 속담들이 있다. 시집도 못 가고 한 해를 또 넘기는 노처녀가 홧김에 개밥을 푹푹 퍼 준다는 데서 나온 말이 전자요, 어느 집이나 다 시루를 쓰는 섣달 그믐날에 남의 집에 시루를 얻으러 다닌다는 데서 나온 말이 후자이다. 대중없이 인심 쓰는 경우를 빗대는 말이 전자요, 되지도 않을 일을 공연히 벌여 놓는 것을 빗대어 놀리는 말이 후자다. 양자 모두 비정상적인 마음 상태나 행동을 나타내는 절묘한 표현들이다. 그 비정상적인 상태는 허둥대는 모양을 말하며 그 시간대로 '섣달 그믐날'을 지정하고 있는 것이 재미 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사람들은 으례 초조한 마음으로 허둥대기 마련인가. 섣달 그믐이 되어서야 비로소 시간의 소중함을 알아차리는 인간의 晩覺이야말로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가 보다.

내가 존경하는 은사 園丁선생은 늘 시간의 짧음을 한탄하시며 빈둥거리던 우리의 젊음을 꾸짖곤 하셨다. 예나 지금이나 젊은이들은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 실감하지 못한다. 당연히 그 때의 우리도 그런 말씀을, 대책 없이 늙어버린 훈장의 잔소리 쯤으로 흘려듣곤 하였다. 당신께서는 제자들에게 언제나 인생의 길이를 계산해 보이셨다. 여기서 인생의 길이란 생물학적 수명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동물과 구별되는 정신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가치를 창조하고, 비록 하잘 것 없다 해도 나름대로의 기념비를 세우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의 길이를 뜻한다. 물론 억지를 쓰자면 자식들을 남기는 것도 하나의 훌륭한 기념비가 아니냐고 강변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중요하긴 하지만 생물학적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 또한 부인할 수 없다.

한 인간의 수명을 어림잡아 70이라 하자. 20까지는 아직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채 부모에게 의지해 살아가는 기간이고, 60에서 70까지의 10년 역시 삶의 현장으로부터 은퇴하여 죽음을 준비하는 기간이니 70의 수명에서 30을 빼버리면 40년 정도가 독립적인 자기의식을 기반으로 가치 창조를 향해 뛸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러나 이 가운데서 잠 자는 시간을 빼면 20년이 남는다. 그것 뿐이랴. 밥 먹는 시간, 변소에 가는 시간, 남을 물고 헐뜯기나 하며 쓸 데 없이 낭비하는 시간 등이 줄 잡아도 하루의 삼분지 일은 될 것이니 이것을 빼면 결국 13년 정도만 남게 된다. 다시 말하여 우리가 가치 창조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 우리의 삶에서 精彩있는 시간이 우리의 일생 중 10년 남짓밖에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살고 있는 매 순간이 너무도 소중하지 않은가. 벽시계의 초침은 종착역을 향해 숨막히게 째깍거리는데 아직도 눈앞의 캔버스에는 밑그림조차 그리지 못하고 있다. 무슨 기념비를 세울 것인가에 대하여 생각도 못해 본 채 끝내버리는 것이 우리 張三李四들의 삶이라고 체념해야 할 것인지.

열두해 만에 찾아 온 원숭이가 기엄기엄 고개마루를 넘으려 한다. 지난 섣달 그믐날에 밤을 밝히며 긁적거려 두었던 새해의 계획표가 뽀얀 먼지만 뒤집어 쓴 채 널부러져 있는 것은 올해라고 다를 리 없다. 기어코 고놈의 기념비라는 것을 윤곽 만이라도 잡아 볼 게라고 설치던 정초의 오연한 패기는 칠팔월 땡볕에 엿가락 늘어지듯 우습게 되어 버리고 아득한 피로만이 백중사리 밀물마냥 밀려든다. 괜히 마음으로만 바쁠 뿐 무엇 하나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옛 어른들도 이 때쯤에는 큰 욕심 부리지 않고 화롯불 옆에서 책을 읽거나 歲寒圖를 치면서 마음들을 가다듬은 게 아니었을까? 아니면 그렇게 책을 읽거나 화폭을 어루만지며 지난 해를 돌이켜 보고 새해로 넘어가기 위한 원기를 모은 것은 아니었을까? 섣달 그믐날, 한 해의 계획을 점검하며 흡족해 하는 이가 그 얼마일 것인가. 아마 대개는 이것들을 다음해로 넘겨야 하는 마음 무거움을 경험하는 경우가 태반이 넘을 것이다. 조율만 계속하다가 제대로 된 연주 한 번 해보지 못하고 마는 이야기 속의 주인공처럼, 나 역시 계획과 다짐은 수 없이 하면서 정작 실행은 못하고 말지도 모른다. 10년 남짓 허여된 가치 창조의 시간대를 헛되이 까먹으면서도 결국 그 기념비의 내용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고 말지도 모른다. 그러니 계획을 세운다는 일이 무의미하거나 허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될 것이 뻔하다 해도 내가 살아 있는 한 어찌 계획 없이 새해를 맞을 수 있으랴! 도로 굴러 내려 올 줄을 알면서도 산꼭대기로 돌을 굴려 올리는 일을 계속할 수밖에 없던, 신화 속의 시지포스처럼 나 역시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내가 분명 살아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세밑의 피곤한 몸을 추스르며 다시 먼지나 뽀얗게 뒤집어 쓸 것이 뻔한 새해 계획표를 끄적거리는 중이다.


2002-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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