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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부동의 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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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05-13 16:02 조회 121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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和而不同의 큰 길

 

언젠가 조선시대의 정치가이자 시인이었던 한 인물의 생애와 문학을 조명하는 학술대회가 열린 적이 있다. 필자도 발표자의 한 사람으로 초대되어 그 자리에 참석하였다. 그 지방관서의 주관으로 마련된 모임이라서 그랬는지 모르겠으나 많은 청중들이 모여들었고, 그들은 학술대회가 끝날 때까지 하나같이 진지한 모습으로 자리를 지켰다. 그런데 토론시간 말미쯤에 사건은 터지고 말았다. 발표자 가운데 한 사람이 그 인물에 대한 당대의 평가를 가감없이 인용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두 편으로 갈라진 청중들의 난투극을 촉발시킨 도화선이 될 줄이야! 청중들 가운데 그 인물이 속해 있던 가문과 대립, 불화의 관계에 있던 문중의 인사들이 섞여 있었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상대편 문중의 한 인사는 그 인물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부각시키려는 의도를 보였고, 이로 인하여 자신들의 선조와 문중의 명예가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한 후손들이 맞붙어 치고받는 불상사를 빚고 말았던 것이다. 정작 그 분은 하늘에서 이 얼빠진 후예들의 작태를 내려다보시면서 혀를 차고 계셨겠지만, 필자는 어쨌든 그 때에 맹목적인 조상 섬김이 극치에 이른 현장을 분명히 목격하였다.

인간은 본래 완전치 못한 존재일 뿐 아니라 대상을 보는 개개인의 눈 또한 공정치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 모든 인간의 행위 자체에는 원천적으로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포함되어 있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모든 인간의 됨됨이나 행위에 관한 世評에도 好惡의 양 측면이 공존하는 법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선조에 대하여 세상사람들이 무어라고 평했건 후손들의 입장에서는 으레껏 그럴 수도 있으려니 하고 대범하게 넘겨버릴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대부분의 후손들은 자신들의 선조가 일점의 흠도 없는 완벽한 존재여야 한다는 가상한 믿음들을 갖고 있다. 흡사 그런 선조들의 흠 없음이 후손인 자신들의 흠 없음을 담보해주는 절대적 조건이라도 된다는 듯이 말이다.

그날 발표장에 모인, 그 인물의 후손들은 발표자들이나 토론자들이 만에 하나 자신의 선조에게 불리한 사실을 유포하거나 비방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던 듯 하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의 선조가 가지고 있던 완벽성을 다시금 확인하며 자신들의 혈통이 우수함을 재확인하려는 기대와 욕구에 차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선조의 단점이 지적되자, 자신들의 기대와 욕구가 무너지는 데서 오는 허탈감과 실망감이 그러한 폭력사태까지 유발시키게 된 듯도 하다. 어쨌든 이와 같이 선조가 지닌 양면성은 후손들에게 대부분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인류역사를 살펴보면 씨족으로부터 부족이 형성되었고, 그 부족들은 하나의 민족단위를 형성해왔다. 현대에도 국가의 하부를 구성하는, 가장 끈끈하면서도 중요한 요소는 이러한 씨족들이다. 그러한 점은 대인관계 등 인간의 사회생활에서 가장 큰 지렛대가 혈연관계임을 보아도 알 수 있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출세의 조건으로 꼽히는 세 가지는 學緣, 地緣과 함께 血緣이다. 경쟁자에 비해 다소간 갖춘 것이 뒤지더라도 힘 있는 자와 학연, 지연, 혈연 중 한 가지 만으로라도 맺어져 있는 경우 얼마든지 상황은 뒤집어질 수 있다. 그 가운데서도 대부분 가장 확실한 조건은 혈연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사회는 아직 씨족사회나 부족사회적인 유습이 판을 치는 시간대에 머물러 있다고 할 수 있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지방의원 등 정치인들을 뽑는 선거판을 보라. 자신들의 경륜과 신념, 노선을 내세우기 전에 반드시 출신지역민들의 단합을 역설한다. 지역 발전을 공약하고, 지체된 자기 지역의 발전을 한풀이의 빌미로 삼아 표를 구걸한다. 그러다 보니 대통령 후보는 으레껏 영남권, 호남권, 충청권 등으로 三分되기 마련이다. 영호남에서는 누가누가 나오는데 우리 충청권이라고 언제까지 들러리만 설 것이냐는 등 지역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 그간의 상투적인 수법이었다. 이런 점은 국회의원도 지방의원도, 하다못해 각 대학의 학생회장이나 동창회장 친목회장 등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지역감정과 함께 물밑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 혈연이다. 물론 능력도 있고, 같은 씨족이라면 당연히 그를 밀어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형편없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같은 씨족이라는 이유로 중책을 맡도록 한다면, 이것은 나라나 민족 더 나아가 자신의 씨족에게도 비극적인 일일 수밖에 없다. 이런 일은 婚事와 같은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똑 같이 일어난다. 혼담이 오고가면 우선 상대방의 가문을 따진다. 상대 가문의 좋은 면을 취하는 경우도 있긴 하나 대부분은 상대 가문에 대한 자신들의 우월감을 은연중 내세우기 마련이다. 남의 가문에서 새로운 식구를 데려온다거나, 내 자식을 남의 가문에 보낼 생각이라면 가문 간에 서로 존중해주는 기풍이 있어야 할텐데 마음 밑바닥에는 상대 가문에 대한 '내려다 보기'의 심리가 깔려 있는 것이 좀더 보편적이라고 한다면 과언일까. 적어도 현재 우리가 세계화를 지향하는 민족국가의 일원이라는 점을 깨닫는다면 그런 것들은 있을 수 없는 일들이다. 그런데 갈수록 씨족이나 家門 利己主義가 점점 팽배해지고 있다는 점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여러 지역으로 갈라진 이 민족이 다시 시대를 역행하여 다양한 씨족으로 갈갈이 나뉜다면 어떻게 21세기의 격랑을 헤쳐나갈 수 있을지 암담할 뿐이다.

각 가문이나 씨족은 그 나름의 正體性을 확립해야하며, 그것을 기반으로 할 때 비로소 우리 민족의 정체성 또한 확립될 수 있다. 그러나 현재는 올바른 의미에서의 독자성이나 자존심보다는 다른 가문들에 대한 우월감에 기반을 둔 가문 이기주의만이 판을 치고 있다. 이것이 현재 이 나라의 발전을 가로막는 저해요인 중의 하나임을 우리 모두는 깨달아야 할 것이다.

몇해만 지나면 21세기를 맞이한다. 이 시점에 우리는 씨족과 가문의 의미, 씨족들 상호관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추어야 하리라 본다. 우리는 그러한 대원칙을 {論語}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論語}에 "子曰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子路篇]>라는 공자의 말씀이 나온다. 군자는 남과 화목하게 지내기는 하지만 義를 굽혀서 좇지는 아니하며, 이와 달리 소인은 이익을 좇아 合同하긴 하나 서로 화목하지 아니한다는 뜻이다. 씨족들이 모여 부족을 이루었고 부족이 통합되어 국가를 이룬 만큼, 현대 국가라 하여도 자체내에 많은 씨족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성씨가 다르다고 씨족들 간에 불화한다거나 義를 지향하지 않아도 같은 성씨이기 때문에 편들어 주어야 한다면 그것은 소인배의 처사일 뿐 세계화를 지향하는 민족국가의 일원으로서 취할 태도가 아니다.

우선 같은 성씨들이 단합해야 한다. 그 경우의 단합은 이기주의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라 義를 지향하는 大道에 동참하기 위한 그것이다. 그런 다음 모든 가문들은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 잘못된 일이 생길 경우 是是非非를 가리는 범위는 그 일만으로 국한해야 하고, 그것 또한 이성과 논리로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잘하는 일이 있으면 다른 가문이라 할지라도 적극 추장해야 한다. 그런 과정에서 국가 및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가져야 할 공동의 목표와 그에 따른 행동지침은 분명히 드러나게 될 것이다.

씨족은 우리사회를 형성하는 중심단위 중의 하나다. 세계의 발전된 나라들 가운데 우리 만큼 씨족의 의미가 큰 경우는 별로 없다. 그런데 올바른 방향으로 씨족 정신이 발양되는 경우 나라의 발전을 기할 수 있으나 그렇지 못할 경우 구제할 수 없는 퇴보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어 있다. 우리의 미래가 전자가 될 것이냐 후자가 될 것이냐는 건전한 씨족 정신을 구현하느냐 씨족 이기주의에 매몰되느냐에 달린 문제다.

이와 같이 한국의 모든 씨족들이 和而不同의 大道를 걸어야 한다는 점은 시대적 요청이자 우리 모두가 해결해야 할 당면한 과제이다.


2002-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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