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처구니 없는 이야기(1) > 에세이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에세이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1)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05-13 16:31 조회 141회 댓글 0건

본문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1)


나는 사범대학 4년간 교양 교직 전공을 합쳐 170학점을 이수했고, 석달 가까운 교생실습을 거쳐 중등학교 2급 정교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러나 일선학교에 부임하여 교실에 섰을 때,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젊음과 패기 하나만 믿고, 대학 4년간 나름대로 열심히 해온 공부만 믿고 교단에 섰으나, 첫 날 첫 시간부터 내 전공과목을 가르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실감하게 되었다. 내가 막연히 알고 있던 지식들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거의 쓸모가 없었다. 그동안 내가 쌓아둔 국어국문학 관련 지식들은 허름한 창고에 대충 쌓아둔 1차재료들에 불과했다.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제공하기 위해서는, 재료들을 다시 끄집어내어 세밀하게 가공해야 했다. 수요자인 학생들은 늘 면도날처럼, 송곳 끝처럼 정확한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적어도 내가 이 분야에서 국어 전공교사로서의 정체성과 자존심을 세우려면, 아니 그것보다도 우선 '먹고 살기 위한' 호구지책으로서의 이 업(業)을 유지하려면 쓰라린 노력을 부단히 경주(傾注)해야 했다. 그런 쓰디쓴 노력을 통해서라도 그럭저럭 교사직을 수행할 있었던 것은 알량하긴 하나 그 동안 쌓아둔 1차재료들 덕분이었다. 4년간 강의실에서 귀동냥으로나마 들어둔 교수님들의 강의, 전공서적들, 각종 과제물, 시험 등을 통하여 거칠게나마 그런 1차재료들은 얼마간 비축해 둘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강의에 자신없기는 시간이 흘러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준비를 많이 해도 강의가 끝나고 나서 상쾌한 적은 별로 없었다. 단 1년간의 고등학교 교사생활이었으나 전공과목을 가르치는 일의 어려움을 처음으로 실감한 기간이었다.

그 후 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사관학교와 두 곳의 대학을 거치면서 계속하고 있는 교수생활 역시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는 마찬가지다. 고등학교에서처럼 가장 어려운 일은 내 전공과목을 강의하는 일이다. 벌써 교수경력 20년이 되어가지만, 강의에는 그리 자신이 없다. 항상 나를 괴롭히는 것은 '무엇을', '어떻게'의 두 가지 문제다. 사실 대학시절 교생실습 기간 중에 지도교사의 시범강의를 참관하면서, 학부와 대학원의 강의를 들으면서 학습자인 나 스스로가 만족했던 경우는 거의 없다. 가르치는 사람이 아는 것은 너무 많은데 '어떻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여 지루하기 짝이 없는 강의를 질질 끌어가는 경우도 있었고, 아는 것도 없고 공부도 전혀 하지 않은 듯한데 엔터테인먼트 하나로 그럭저럭 강의를 이끌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무엇을'이나 '어떻게' 둘다 젬병인 경우는 그야말로 구제불능인 상태이겠지만, 적어도 내가 만난 선생님들 가운데 그런 분은 없었다.

자타가 공인하는 학계 대가(大家)들의 강의도 그리 변변치 못하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 나는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바닥에서 철이 들면서 그 분들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이해하게는 되었지만, 그런 사실들을 지금도 '자신의 전공과목을 가르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뒷받침해주는 실례로 마음 깊이 간직해두고 있다. 대학들의 형편이 나아지면서 교수들의 책임시수가 줄어들고는 있지만, 사실 교수들의 입장에서는 지금도 가능하면 책임강의시간이 더 줄었으면 하는 바램들을 갖고 있다. 표면적인 이유야 연구시간의 확보에 있지만, '전공과목의 강의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 그 내면적인 이유가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이처럼 비록 오랜 세월 공부해온 전공일지라도 학생들에게 강의한다는 것은 그처럼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며칠전 나는 TV 뉴스시간에 경악할만한 보도를 접했다. 참으로 나의 눈과 귀를 의심할만한 내용이었다. 사실로 말하자면 포복절도할 코메디라고나 할까? 디지털 시대에 테헤란로 한 복판을 큼지막한 호랑이 한 마리가 점령하고 드러누워 장죽을 물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지금 시대가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데, 교육부 관료들의 시대착오적인 발상은 그야말로 이 나라를 비참하게 만들고 있었다. 7차 교육과정 개편이라든가, 과목이 통폐합되면서 꽤 많은 교사들이 남아돌게 되었다고 한다. 교육과정 개편으로 남게 된 교사들을 3주 정도의 교육을 통하여 다른 과목의 교사로 발령을 내준다는 소식이었다. 예컨대 교련교사를 국어교사로, 가정교사를 수학교사로 전환시킨다는 등의 기막힌 발상과 그것의 폭력적(?) 현실화였다. 그 보도를 접하는 순간, 나는 고등학교에서의 병아리교사 시절과 지금의 내 교단생활이 파노라마처럼 회상되는 것이었다. 대학 대학원 시절 내 나름대로는 열심히 공부하고 배워왔건만, 막상 교단에 서게 되었을 때는 막막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지금까지 그런 느낌에는 전혀 변함이 없다. 그런데, 3, 40대에서 50대에 걸친 연배의 선생님들을 단 3주간의 교육을 통해 전혀 다른 과목의 선생님으로 변신시키겠다는 것은 도대체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발상이란 말인가? 어쩌면 지금도 전공과목의 강의에 자신이 없는 내 자신이 비정상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나, 해도 너무한 것 아닌가? 아무리 밀어부치면 된다지만, 밀어부칠 일이 따로 있지. '가르치는 일'을 그렇게도 우습게 본단 말인가?

교사들이 겪어야 할 마음고생은 차치하고라도, 그런 교육을 받게 될 학생들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이놈의 나라 교육은 교육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 국민 대다수의 공분(公憤)일진대, 교육부 관료들은 대체 어느 외계에서 날아온 이티들이란 말인가? 교사들이 남아 돈다면, 다른 방법으로 조치를 취해주어야 옳지, 어이하여 엉뚱한 과목의 교사로 자리바꿈 시킨단 말인가? "중고등학생들은 학원에서 모든 과목 공부를 하고 오는 입장이니 교사야 누구를 쓰던 무슨 큰 문제이랴?"는 발상이었다면, 이미 이 나라는 공교육을 포기한 셈이다. 학생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약간만 대답이 시원치 않거나 실수를 해도 마음의 상처를 받는, 마음 여린 존재들이 교사들이다. 자신의 본래 전공과 전혀 다른 과목을 강의하는 교사들이 이미 인터넷의 바다를 헤엄치며 교사들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은 이 시대의 학생들을 어떻게 이끌어 나갈 수 있단 말인가? 어떤 귀신같은 교수들이 있어 3주만에 그들을 다른 과목담당의 교사로 말끔하게 변신시킨다는 말인지 참으로 한심하고 답답할 뿐이다.

이번 사태는 교육부 관료들조차 교육의 전문성을 우습게 보고 있다는 점을 만천하에 공개한 꼴이 되고 말았다. 7차 교육과정 개편이 불가피한 것이라면, 형식과 내용 면의 준비 또한 그에 걸맞아야 한다. 미처 준비가 안되었다면, 몇 년이 걸리든 준비될 때까지 미루는 것이 순리다.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남아도는 교사의 문제도 해결해나갔어야 한다. 일단 해보고 터지는 부분이 있으면 땜질이나 하겠다는 발상 때문에 이 나라의 교육은 갈수록 누더기가 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일개 필부로서 비전도 철학도 애국심도 그야말로 아무것도 지니지 못한 이 나라의 관료들이 교육마저 망치고 있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워 한 마디 푸념을 늘어놓아 보았다.


2002-09-09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개인정보처리방침 서비스이용약관

:::白圭書屋:::
대표자 : 조규익 | Tel : 010-4320-8442
주소 : 충청남도 공주시 | E-mail : kicho@ssu.ac.kr

Copyright ©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