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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처구니 없는 이야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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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05-13 16:32 조회 150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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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처구니 없는 이야기(2)


소름끼치도록 따가운 햇살이 날뛰는 어느 여름날, 미국을 여행하던 도중이었다. 라스베이거스 근처의 한 소도시 휴게소에 시장끼를 때우려 들르게 되었다. 그곳에서 캘리포니아주 오린지 카운티에 산다는 재미교포 사업가 한 사람을 만났다. "한국이 망하지 않으려면 당장 10만명을 죽여야 한다!" 갈 길은 바쁜데 좀처럼 놓아주려 하지 않던 그가 우리에게 내뱉은 일성(一聲)이었다. 그런 생각을 갖게된 사정을 들을 시간도 듣고 싶은 마음도 없었지만, 나는 큰 충격을 받고 말았다. 총총히 떠나려는 내 등뒤에 대고 못을 박듯 말하기를 "기득권 세력 10만명이 대물림해가며 한국을 말아먹고 있다!"는 거였다. 70년대에 박해를 받다가 조국을 등졌고 이제 미국에서 웬만큼 성공했다는 그였다. 비수처럼 날아와 내 가슴에 박히는 그의 말들 속에서 자기를 버린 조국에 대한 사무친 원한을 읽을 수 있었다. 대개 성공한 사람들은 비참했던 과거마저 아름다운 추억으로 반추하기 마련이라는데, 그는 그렇지 않았다. 얼마나 혹독하게 당했으면 그랬을까 하고 한 순간 연민의 정이 일기도 했다. 그 후 한동안 그의 말은 내 가슴에서 떠나지 않았다. 누가 이 나라를 말아먹는 계층이며, 누가 죽어야 될 사람인가에 대하여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가 말한 '기득권 세력'이란 우리 사회에서 구체적으로 누구일까? '기득권 세력'이란 용어에 대해서는 사회학자들의 분분한 학설들이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전에는 "정당한 절차를 밟아 권리를 획득하고 향유하는 특정 개인이나 세력"으로 설명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일반적으로 '기득권 세력 운운' 할 경우는 이와 정반대의 부정적인 의미를 암시하기 마련이다. 다시 말하면 "정당하지 못한 수단과 방법으로 권리를 쟁취하고 향유하며 대물림하려는 특정 개인이나 세력"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기득권 세력의 외연(外延)은 '정당성'에 근거를 두고 있으나 우리 사회에 통용되는 내포(內包)는 '부당성'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 원인은 굴곡 투성이의 우리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는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이원적 사회구조 아래 '착취-피착취'의 행태를 반복해 오면서도 고비마다 그런 모순의 고리를 한번도 바로잡아보지 못한, 부끄러운 역사를 갖고 있다. 왕조 체제를 청산 못한 상태에서 식민상황을 맞게 되었고, 식민상황을 청산하지 못한 상황에서 분단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시민혁명을 통하여 전제군주체제를 청산하고 지배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온 것이 보편적인 세계사의 과정인데,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 그럴 수 있는 기회가 몇 번 있었으나 지배계층의 반민족적이고 몰역사적인 사악성 때문에 그러한 시도들은 번번이 찻잔 속의 폭풍으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외세를 끌어들이는 것쯤이야 이들에게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이 날 이 때까지 거리낌 없이 이 땅의 모든 것을 주무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출발부터 도덕적 정당성을 갖추지 못한 지배계층의 카멜리온적 속성 덕분이었다.
매우 부끄럽게도 우리 민족은 대사(代謝) 과정이 생략된 역사를 갖고 있다. 적어도 한 시대가 끝나면 그 시대에 대한 대차대조표는 작성되어야 한다. 칼 맞고 죽을 놈은 죽어야 하고, 억울한 사람들은 설분되어야 한다. 감정적 판단이나 그에 따른 보복을 선동하자는 것이 아니다. 신이 아닌 이상 인간이란 언제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그렇다고 잘못을 저지른 인간을 그냥 묻어둘 수는 없다. 과거를 그냥 묻어두는 일은 단순한 직무유기나 잘못(실수)이 아니라 엄청난 죄악이다. 죄를 지은 인간에 대한 용서는 인간의 일이 아니다. 그것은 신과 역사의 권능일 뿐이다. 다만 인간은 이성(理性)의 힘을 빌어 자신들이 저지른 행동의 잘잘못을 따질 수 있을 뿐이다. 공자의 '춘추필법(春秋筆法)'은 과거사에 대한 대차대조표의 명쾌한 표본이다. 우리의 과거를 두리뭉실 하나의 그릇에 뒤섞어 넣어두는 것은 역사와 정신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우리의 나태함 때문이거나 나태함을 가장하여 무언가 이득을 보려는 집단의 엄청난 음모일 수 있다. 소중한 것들은 보석상자에, 재활용할만한 것은 재활용통에, 폐기물들은 폐기물통에 각각 나누어 담는 지혜가 절실했음에도 우리는 그것을 해오지 못했다. 오늘날 우리가 겪는 현실이 그야말로 개똥같다면, 그 원인은 역사의 대사과정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우리의 조상들과 우리에게 그 큰 책임이 있다. 누구를 탓하랴? 그 옛날 따뜻한 태양을 찾아 이곳 대륙의 끝에 정착한 우리 조상들, 척박한 풍토에서 삶을 이어오며 위대한 문화를 형성해온 우리 조상들, 우수한 두뇌.... 벌써 세계사의 중심에 섰어야 할 우리가 아직도 요모양 요꼴인 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우리가 수백년간 역사의 대사작용을 제대로 못해서일 뿐이다.
오늘도 매스컴의 주된 내용은 이른바 지도층의 부패와 무능, 부도덕, 무사안일에 대한 이야기들 뿐이다. 이 땅의 정치인들이 구제불능의 모리배로 낙인찍힌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구린 이야기만 나오면 반드시 그 끈은 정치인들에게 연결되어 있다. 우리나라처럼 대통령이 앞장서서 돈을 뜯고 사욕을 채워온 나라가 아프리카의 몇몇 부족국가나 동남아의 일부 국가를 빼고 어디에 또 있으리? 위 아래 할 것 없이 눈꼽만한 권력이라도 쥐고 있는 공직자들 치고 부정과 비리에 연루되지 않은 사람 없는 곳이 바로 이 나라다. 얼마전에 우리나라의 부패지수가 세계 상위권에 랭크되어 있음을 어떤 국제기구에서 발표한 바 있다. 몇 년전부터 거론되고 있는 '부패라운드'의 핵심 지목대상이 바로 우리나라가 아닐까 걱정스러운 현실이다. 이 경우 부패의 주범은 공직세계와 기업계라고 강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공직자들과 기업가들이 외계인들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종교인들이라고 나은가? 재산싸움에 각목들고 백주대로에 머리 터지도록 싸우는 교단도 있는가 하면, 교회를 치부의 수단으로 삼아 호화생활을 즐기고 대물림까지 하는 교단도 있다. '빈자일등(貧者一燈)'이니 '부자가 천당에 가기란 낙타가 바늘구멍 지나기보다 더 어렵다'는 성서의 가르침이 이 땅의 성직자들에게 잊혀진지는 이미 오래다. 이 땅의 상당수 성직자들이란 신도들의 머릿수를 계산하고 헌금을 불려 착복하는 모리배들의 또 다른 버전들일 뿐이다. 필자를 포함한 이 땅의 이른바 학자들은 또 어떨까? '곡학아세(曲學阿世)/패거리 형성'. 이 이상 이들의 적나라한 모습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이 또 있을까? 진리의 추구 학문적 양심이란 용어가 적어도 이 시대 학자들의 사전에는 없다. 물질적 풍요를 추구하거나 허무한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기 위해 자신의 학문적 소신도 적당히 굽혀가며 둘러댈 수 있는 교활함. 자기 동네의 자기보다 못한 후배들을 끌어들여 죽을 때까지 속편하게나 지내보자는 패거리의식. 자라나는 새싹들을 자신들의 올가미에 끌어들여 공범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저 희대의 사기꾼들.... 오늘도 이 땅에서 어렵게 삶을 이어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내뱉는 아우성이다.

그러니 이 땅의 장삼이사들이 기댈 곳은 어디란 말인가? 누가 이 땅의 지도자이고 지도층이란 말인가? 그 과격한 재미교포가 내뱉은 10만명 속에 이 땅의 누구인들 빠질 수 있다고 보는가? 두렵고 두려운 일이다. 내 한 몸의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이 땅과 수많은 생령들의 멸망이 두려운 것이다. 나도 너도 모두들 정신 차려야 산다.


2009-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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