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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05-13 16:33 조회 13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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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내가 어릴 적엔 책이 없었다. 교과서가 전부였고, 그나마 교과서 값을 내지 못한 몇몇 아이들은 학교에 빈 책보를 들고오기 일쑤였다. 나는 어릴 적 정말로 책을 읽고 싶었고, 지금도 그 갈증이 마음에 상흔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좋다싶은 책이 보이면 값은 고하간에 사고야 만다. 현찰이 없으면 외상으로라도 사고야 만다. 책 때문에 내 호주머니엔 돈이 남아날 날이 없다. 공부하는 동안에는 전공분야의 신간만을 훑기에도 힘이 벅찼다. 그런데 얼마전부터 고서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러니 더욱더 호주머니 사정은 빠듯해지고 말았다. 그 고서의 값이 만만치 않다. 부르는 게 값이다. 교활한 책 장사라도 만나는 날이면, 바가지를 쓰는 경우가 허다하다. 좋은 친구들이자 고서 취미의 대선배들인 이현조박사, 곽재구시인, 정일선 선생 등은 그게 다 수업료라고 위로하지만, 막상 수업료를 비싸게 지불한 입장에서는 가슴이 쓰리기 마련이다. 그래도 난 이분들 덕분에 거의 수업료를 지불하지 않은 셈이다.
큰 도시이든 작은 도시이든 유명한 고서방 한 둘 쯤은 있다. 그리고, 그런 고서방에 책들을 공급하는 중간상도 꽤 많다. 대부분의 고서가 '원 주인→중간수집상→고서점'의 공급체계를 거쳐 내게로 오는 만큼 그 가격은 만만치 않다. 더구나 이젠 그런 물건조차 귀해졌다. 지방 소도시의 고서방을 찾아가면 정말로 물건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TV의 진품명품 프로그램 탓에 이젠 아무도 책을 내놓으려 하지 않는단다. 전엔 1, 2만원이면 살 수 있던 물건도 이젠 2, 30만원까지 불러댄다는 것이다. '진품명품'이 우리같은 고서의 실 수요자들에게는 치명적인 프로인 셈이다. 그러니 웬만한 고서들은 부르는 게 값이다. 아직도 나는 정말로 좋은 책을 발견했을 때 현찰이든 외상이든 기십, 기백만원을 선뜻 쓸 수 있는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그저 '신 포도의 교훈'만을 되씹고 아쉬운 눈길을 돌릴 뿐이다. 이현조박사는 고서를 매개로 만나 지금은 수십년 지기처럼 허물없는 사이가 되었다. 그런데 그는 정말로 좋은 책을 만났을 때 기백만원을 선뜻 쓸 줄 안다. 나중에 어떤 어려움을 겪을지라도 그 책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전세금으로 받은 돈을 책 구입에 투입할 정도라면, 그의 책사랑을 알아볼 만하지 않은가? 웬만한 고서상보다도 양적으로 질적으로 우수한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는 그가 나는 누구보다도 부럽다. 그야말로 그는 이 시대의 진짜 부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어느 곳을 가도 좋은 책의 냄새를 누구보다도 빨리 맡는다. 그러니 좋은 책이라면 그의 촉수를 벗어날 재간이 없다. 대인기피증이라고 할만한 나의 닫힌 마음 때문일까, 나는 지금까지 누구를 진심으로 좋아해본 경우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고서를 찾아 다니는 과정에서 만나게 된 이들에게는 마음을 열지 않을 수 없다. 책이란 정직한 것이고, 책을 통해 좋은 사람들과 무제한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주위에는 책이 넘쳐난다. 우린 지금 책이 많은 시절에 살고 있다. 요즘 아이들은 책이 많아서 행복할까? 내겐 요즘 아이들이 결코 행복해보이지 않는다. 책을 한 권 읽어도 늘 '목적'을 가지고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TV에서 어린이들을 모아놓고 독서교육이랍시고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선생이 무언가를 칠판에 적어놓으면 아이들은 책을 읽고 그것을 해결해야 하는 모양이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게 이른바 '논술교육'이란다. 선생이 제시해준 방향으로만 책을 읽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독서는 '헛된 일'이라는 것이 요즘 부모나 선생들이 갖고 있는 보편적인 생각인 듯 하다. 그러니 요즘 아이들이 책 읽는 일은 학습이나 수험의 중요한 방편이고 의무일 뿐이다. 의무로 하는 학습활동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이 시대 대한민국에 아이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제약없는 독서에 빠져드는 일을 방관하는 부모는 아무도 없다. 논술에 관계되지 않는 독서가 있을까만,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들의 즐거운 독서가 언젠가 논술이라는 열매로 맺힐거라는 믿음을 가질만큼 느긋하지 못하다. 당장 글 한 꼭지를 읽고나면 주제, 소재, 논지를 분석해야하고 그로부터 써내려가야 할 생각의 갈래를 잡아야 한다는 이 가증스런 굴레를 이 땅의 아이들은 참으로 잘도 견뎌낸다. 그리고, 참으로 착하기들도 하지. 나같으면 한 번쯤 반항의 야료라도 부려보았을 것이다. 도대체 제대로 책 한 권 읽어보지 않았을 성 싶은 이 땅의 논술 기술자들이 뿌려대는 소피스트적 억설(?)에 천부인권으로 누려야 할 독서의 즐거움을 뺏기다니, 죽을 맛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아이들은 체념을 하고 만다. 그래서 되도록 책을 멀리하려고만 한다. 책은 논술 과외시간이나 그 과외선생이 내준 과제물을 해결하는 시간에만 잠시 만나면 그 뿐이다. 나머지는 인터넷에 펼쳐진 가상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이다. 논술을 입학시험의 일부로 부과하고 있는 이 땅의 일부 대학들은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씻을 수 없는 죄악을 저지르고 있다는 생각을 꿈에라도 해보았을까? 그들의 단세포적 두뇌로는 논술의 해악이 이미 우리 사회를 크게 멍들였다는 사실을 결코 깨달을 수 없을 테지만 말이다.

책을 유행에 따라 쉽게 만들다보니 그 생명성 역시 보잘 것 없다. 이것저것 짜깁기하여 만들어내는 책들도 많고, 그 짜깁기마저도 귀찮아 남의 것을 송두리째 베껴내는 것들 또한 많다. 안 걸리면 좋고, 걸려도 '배째라' 식으로 나가보겠다는 심뽀들이다. 치고 빠지기 혹은 한탕주의의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대학이나 어엿한 연구기관에 몸 담고 있는 일부 인사들도 그러한데, 하물며 다른 사람들이야 오죽하랴! 책을 만들어도 안 팔리고, 팔려도 오랜 세월 서가에 애장될 만한 책이 없으니 비극이다. 아이들도 책을 외면하고, 어른들은 더더욱 책과 거리가 멀다. 가끔 인터넷 경매 사이트나 중고 매매 사이트에 들어가 책 코너를 들르곤 한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언젠가 저자 사인본이라는 설명을 달고 나온 책들이 동시에 수십권이나 출품된 적이 있었다. 사진을 자세히 보니 '장○○'이라는 평론가에게 시인, 소설가들이 자신의 이름을 곱게 적어 기증한 책들이었다. 그런데 그 평론가는 얼마전 대학을 정년퇴임했으며, 아직은 살 날이 창창한 인물이다. 시인이나 소설가들이 심혈을 기울여 써낸 작품들을 그가 혹시 한 줄이라도 소개해줄까 기대하며 달필의 헌사와 함께 그에게들 바쳤을 것이다. 소개는 고사하고 '저자 사인본'이라는 달콤한 유혹의 문구를 달아 경매 사이트에 올려 놓았으니... 내가 그 작가들 가운데 하나였다면 아마 전화를 걸어 그에게 대판 욕이라도 퍼부어 주었을 것이다. 문학을 업으로 한다는 자의 소행이 이럴진대 아파트 쓰레기장에 수북수북 쌓이는 책들을 보며 누구를 욕하고 누구를 원망하랴?

세상은 이렇게 책과 멀어지고 있으니, 그나마 나마저 그 책들을 건사하지 않으면 누가 있어 바야흐로 사라져가는 책들의 모습을 후손들에게 전해줄 수 있으리? 그래서 나는 오늘도 눈에 불을 켜고 아파트 쓰레기 분리장을 훑고, 인터넷 경매사이트를 누비고 있는 것이다. 한 권의 책이라도 더 구해내려고.
<2002. 10. 20.>


2002-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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