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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장애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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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05-13 16:04 조회 11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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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서유견문(4)-

 

한국의 장애인들

 

미국에 있는 동안, 간혹 시내버스를 이용할 기회가 있었다. 시내버스를 타고 학교에 나가다가 목격한 일이다. 그 시내버스의 운전사는 우락부락하게 생긴 흑인여성이었다. 거구에, 목소리 또한 웬만한 남성들도 무서워 도망칠만한 정도였다. 창문과 평행선으로 놓인 앞 쪽의 좌석에는 미국인들이 여러 명 앉아 있었다. 정류장에 차를 세우더니 그 운전사는 거구를 덜렁대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다짜고짜 앞 좌석의 사람들 앞으로 가서 떡 버티고 서며 "Stand up, go to the back seat!" 하는 게 아닌가. 그야말로 '손님(고객)이 王인 나라' 미국에서 내 눈과 귀를 의심하게 하는 사건이었다. 손님들을 '개떡'으로 만들어버리는 수준의 험악한(?) 말투,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데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런 말대접을 받은 미국인들이 슬금슬금 뒷 자리로 피해가는 것이었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긴장했다. 왜 저럴까? 그러나 잠시 후 그 의문은 풀렸다. 운전사는 그 좌석을 잡아 올리더니 버스의 창 아래 벽으로 붙이고 나서 출입문을 활짝 열어제치고 보조발판을 내리는 것이었다. 아! 정류장 푯말 앞에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운전사는 그 큰 몸집을 흔들대며 내려가서 그 장애인의 휠체어를 보조발판 위로 밀어 올려주고, 아까 비워둔 넓은 공간으로 안전하게 안내하고 휠체어를 고정시켜주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그 순간에 나는 왜 버스의 앞 좌석을 그렇게 넓게 비워 두었으며, 좌석 또한 뎅그마니 하나만 만들어 두었는지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바로 장애인을 위한 공간이었던 것이다. 장애인이 승차하지 않을 때는 일반인들도 앉을 수는 있으나, 일단 장애인이 버스에 오르면 무조건 그 공간을 비워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깨닫게 된 것이다. 원칙에 도도하고 매사 따지기 좋아하는 미국인들이 여자 운전사의 명령에 고분고분 뒷자리로 피해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런데도 더욱더 신기한 것은 그렇게 큰 대접(?)을 받은 그 장애인은 미국인들이 밥먹듯 내뱉는 "Thank you!" 소리 한 마디 하지 않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운전사도 '내가 너에게 이토록 큰 은혜를 베풀었는데 어찌 고맙다는 말 한 마디 하지 않는가?'라는 식의 서운함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운전사도 장애인도 또 그 장면을 바라보는 미국인들도 심상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그 차 속에서 놀라움과 경탄의 반응을 보인 것은 나 뿐이었다. 생각해보라. 복잡한 버스, 한 사람이라도 더 태워야 수입이 오를 텐데 그 넓은 공간을 장애인 한 사람을 위해서 마련한다는 것이 한국인인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 후 나는 미국내의 어떤 건물이든 장애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배려되었다는 점과 사회적으로 표나지 않게 장애인들이 배려되고 있는 점을 나는 도처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 장애인을 위해 모든 편의시설과 법규를 거의 완벽하게 만들어 놓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시행하면서도 장애인을 '특별한 사람들'로 보지 않는 미국인들의 합리성과 평상심을 나는 존경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에 온지 꽤 오랜 어느 한국인으로부터 이민 초기의 쓰디쓴 경험담을 들은 적이 있다. 급한 김에 주차선 안의 장애인 표지를 미처 보지 못하고 주차를 했던 그는 용무를 마친 뒤 돌아왔을 때 차 유리에 붙여져 있는 300달러의 벌금 고지서를 발견하곤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장애인의 권익을 침해하는 일에는 가차없는 불이익이 가해지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었다.


한국에도 장애인을 위한 법률이 제정되어 있긴 하다. 그러나 그 법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정부마저 그 법을 지키지 않는 나라가 이곳이다. 장애인에 대하여 우리가 갖고 있는 악습을 나는 어릴 때부터 보며 자랐다. 그리고, 그 일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살던 마을에는 동일이라는 이름의, 다리를 크게 저는 총각 하나가 살고 있었다. 그는 늘 동네사람들의 놀림감이었다. 코흘리개 아이부터 머리 허연 늙은이까지 그 총각을 업신여기고 놀리기 일쑤였다. 하도 놀림을 당하다 보니 학교에도 갈 수 없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가 다리를 전다는 것 외에 모든 면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못한 게 없었다. 더구나 그는 마음씨마저 좋았다. 사람들은 그를 놀림감으로 삼는 데 만족하지 않고 이용해먹기까지 하였다. 그는 이용 당하면서도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았다. 툭하면 쥐어박고 재수없다고 욕설들을 해대곤 하는 데도 말이다. 사실, 그 때부터 내 어린 마음에는 나를 포함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마음이 참으로 고약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내가 나이를 먹어 고향을 떠나온 이후 그 총각의 소식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넓은 세상에 나와 살면서 나는 수많은 '동일이들'이 도처에서 고통받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목발 짚은 사람 앞에는 차를 세워주지 않는 택시운전사. 빨리빨리 차에 오르지 못한다고 욕설을 해대는 버스 운전사. 아침 일찍 장애인이 물건 사고 나간 뒤에 재수 없다며 침을 퉤 뱉으며 문을 쳐닫아버리는 수퍼마앛 안주인. 장애인이 '종교재단의 학교이니 받아주겠지'라는 기대감으로 문을 두드렸으나 차갑게 거절하는 학교들. 벌금을 무는 일이 있어도 장애인 의무고용 비율을 지키지 않으려는 기업과 정부 기관들. 장애인이 태어나면 슬그머니 사회복지 시설 문 앞에 버리거나, 남의 집 문간에 버리고 가는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들. 장애인용이랍시고 만든 시설들이 불편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거나 아예 사용할 수조차 없는 것들 투성이인 철도역, 지하철역. 장애인들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몇몇 거짓 사회복지재단들이나 사회사업가들, 그리고 깡패들. ….

한국은 장애인들의 지옥이다. 장애인들을 위한다고 하지만 떠들썩한 구호들일 뿐, 말짱 거짓말들이다. 모든 면에서 한국이 제스츄어 뿐인 나라라는 점을 우리 모두 어제 오늘 안 것은 아니지만, 그런 성향은 갈수록 더 짙어진다. 선진 복지국가의 국민들에 비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두 정신적인 장애인들인 셈이다. 모두 중증 장애인들이면서 경미한 장애인들을 비웃고 있다. 지금 고통스러운 장애인들의 모습이 거울에 비친 자신들의 모습임을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다.


2002-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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