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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05-13 16:38 조회 14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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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의 미래


얼마 전의 일이다. 사관학교에 근무하는 친구 최중령이 자못 들뜬 어조로 전화를 걸어왔다. 그곳 교수로서 입학관리의 일을 보직으로 맡고 있는 그는 홍보차 전국의 고등학교를 돌고 있는 중이었다. 공주에서 많은 학생들과 교사들을 만나고 나서 그는 깜짝 놀랐다고 했다. "지금 세상에 이렇게도 예의바르고 참한 학생들이 있을 수 있으며, 품위있는 교사들이 있을 수 있는가?" 그의 목소리로부터 얼마간 흥분의 기운이 배어 나왔다. 내가 공주에서 대학을 다녔고, 지금도 공주에서 대학 다닌 사실을 늘 자랑처럼 달고 다니기 때문에 그는 나를 공주 출신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아마도 그 놀라운 경험을 내게 알려야 할 의무감을 느꼈던 듯 하다. 나 역시 빙그레 웃으며 "그랬었어요? 그보다 더 놀라운 장점들이 아마 수두룩할 꺼요. 두고두고 그곳에 들러 느껴보도록 하시오." 라고 나는 넌지시 한 자락 깔아두었다.

지금 이 나라엔 전통을 깨부수는 소음으로 가득차 있다. 하나를 부순다면 적어도 그에 대응하여 새로운 무언가가 만들어져야 옳건만, 자꾸 부수기만 하고 만들어내는 것은 하나도 없다. 파괴는 건설의 어머니라고도 하고, 혹은 동전의 양면이라고도 한다. 그 경우 파괴의 대상은 비생산적인 인습이 되어야 하고, 건설해야 할 것은 미래 지향적 삶의 원리가 되어야 한다. 무엇이든 때려 부수기는 쉬우나 건설하기는 어렵다. 건설을 생각지 않는 때려부숨은 무책임한 폭력일 뿐이다. 새로운 것을 건설할 의지도 능력도 없으면서 기존의 건조물들을 무조건 때려 부수고 있는 것이 지금 이 나라의 형국이다. 집을 새로 지을 의지도 능력도 없는 형편이라면, 이미 있는 집을 때려부수기보다는 잘 손질하여 사용하는 것이 옳다. 요즈음 건축업계에 리모델링이 성황이다. 집을 송두리째 부수지 않고 새롭게 고쳐 쓰는 방식이다. 새 시대의 사조에 맞게 불편한 점은 약간씩 고쳐가면서 사용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멀쩡한 집들을 허문 위에 세워가고 있는 흉물스런 시멘트 산들은 우리 스스로의 천박성을 입증하는 기념비들일 뿐이다. 새로운 건물을 세울 의지도 능력도 없는 처지에 옛날의 건물을 깨부수기만 한다면 어떻게 될까? 차근차근 설계하여 단단한 기초 위에 새로운 건물을 세우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대책 없이 부숴버렸을 경우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부랴부랴 그 빈 곳을 채우기 위해 말도 안되는 것들을 끌어다 놓는 수밖에 없다. 우리가 지금 그 꼴이다. 우리의 전통적 질서관념은 존현경장(尊賢敬長)을 기본으로 한다. 어진 이를 높이고 어른을 공경하는 것은 결코 케케묵은 인습의 찌꺼기가 아니다. 어진 이는 이 사회를 이끌고 가는 창조적 소수를 말하며, 덕망을 갖춘 어른은 이 사회의 무게중심이다. 공동체의 진정한 발전을 바란다면, 이들을 존경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이들을 깎아내리고 헐뜯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다. 덕망과 지혜가 송두리째 뽑혀져 나간 자리에 남아 있는 것은 불신과 반목의 쓰레기들 뿐이다. 전통적 의미의 선비를 자처하던 사람들마저 이제 패거리를 만들어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기에 여념이 없다. 40여만원 남짓의 최저생계비로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에 아등바등하는, 이 땅의 가난한 아버지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지를 힘조차 없다. 그러나 1∼2억의 연봉으로도, 아니 최소한 수억을 넘는 수입으로도 자신들의 욕망을 다 채우지 못하는 모모 직종의 종사자들은 그들만의 패거리를 만들어 많은 서민들을 볼모로 잡은 채 이 나라를 뒤흔든다. 권력을 쥔 자는 그들대로, 부를 성취한 자는 또 그들대로 사회와 국가에 대하여 수행해야할 의무를 회피하려 애들을 쓰고 있다. 쥐꼬리만한 세금을 포탈하려 애쓰고, 자식들에게 병역의 의무를 면피(免避)시키려 애쓰고 있다. 인권이나 평등에 대하여 그렇게도 서슬퍼런 서양의 서민들이 그들의 왕족이나 귀족들을 끔찍하게 여기는 까닭이 무언지 이 나라의 졸부들이나 권력자들은 알 턱이 없다. 이 땅의 졸부들이나 권력자들 가운데 노블리스 오블리지(noblesse oblige:높은 신분에 따르는 도의상의 의무)의 의미를 아는 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이 땅의 지배층은 스스로 희생의 미덕을 발휘하지 않고도, 솔선수범하지 않고도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 그러니, 이 사회는 약삭빠른 자만이 배불리 살아갈 수 있게 되어 있다. 법을 지키고, 의무를 다하며, 성실하게 노력하는 자들은 언제나 처지게 되어있는 것이다. 이런 판국에 공동체의 질서가 제대로 잡히겠는가?

그런데, 사관학교의 최중령은 공주의 학생들과 교사들에게서 무언가를 발견했다고 한다. 바로 질서의식이었다. 법규로 통제되는 질서가 아니라, 예의와 염치로 자율되는 질서의식이었다. 이미 이 나라의 중등학교 교육은 송두리째 붕괴되었고, 자연스레 대학 또한 붕괴되었다. 붕괴된 다음 새로운 건설의 망치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그 공동체는 이미 끝났다고 보아야 한다. 파괴된 우리의 삶터에서는 아직 그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그런데, 새로운 건설의 굉음이 공주로부터 들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그곳의 학교들은 처음부터 붕괴되지 않았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 공주의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남들처럼 검은 연기 내 뿜는 공장이 없다고 실망스러워할 필요가 없다. 하늘을 찌르는 빌딩이 없다고 한심해할 필요도 없다. 깨끗한 자연 속에서 맑은 영혼들이 옹기종기 모여 새 시대의 이상을 키워나가는 일, 이미 그것만으로도 공주는 벅차다. 그래서 공주의 미래는 밝다. 우리들의 어리석음으로 그런 미래를 망치지는 말자.


2002-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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