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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선비의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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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05-13 16:40 조회 171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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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선비의 사회


90년대 이후 고도 정보화사회로 진입한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최대의 난제는 가치관의 혼란이다. 인터넷이 새로운 삶의 공간으로 도입되면서 전통을 유지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었다. 아울러 인종과 지역, 언어와 문화 등의 차이 때문에 생겨난 울타리들도 이젠 의미가 없어졌다. 지금까지 고수해오던 이념이나 울타리를 헐어버리고 모두가 공존할 수 있는 삶의 원리를 찾아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선비를 거론하는 것이 가당한 일일까? 혹 시대착오적이라는 눈흘김을 받지나 않을까? 혼돈의 시대에 전통을 논하는 사람들이 가질 만한 걱정이다. 그러나 세계가 동일한 삶의 터전으로 바뀌는 '천지개벽'이 일어난다해도 가치있는 전통이라면 지켜야 한다. 세계가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고, 개인은 파편화 되어 공동체의 윤리 자체가 실종된 요즈음이지만, 그래도 선비와 선비정신은 부활되어야 한다. 이 민족이 멸망하지 않고 나름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시대정신에 맞는 선비상은 되살려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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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란 무엇인가. 전통시대의 문헌들에 나오는 사(士)와 유(儒)는 모두 '선비'로 번역되는 한자어들이다. 전자가 학문을 통하여 벼슬에 나아가는 선비를 뜻한다면, 후자는 유도(儒道)를 지키고 학문을 전공하는 선비를 뜻한다는 점에서 다르다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벼슬에 나아가든 산림에 숨어 학문을 연마하든 인간이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 충군보국(忠君輔國)하는 방책을 찾아내어 실천하는 인간상이라는 점에서는 양자가 다를 바 없다. 국가의 이익보다는 개인의 이익과 행복을 우선시 하는 것이 현대사회의 특징이라 해도, 그런 개인들을 결집시켜 공동체의 에너지를 증폭시킬 수 있는 지도적 인격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시대가 변하고 산천이 바뀌어도 늘 변함없이 옳은 길, 즉 상도(常道)는 있는 법이다. 그걸 지키려면 개인의 욕망을 억제해야 한다. 개인의 욕망을 자제하는 일이야말로 희생정신이 있어야 가능하다. 천하에 떳떳한 길을 가는 것은 나를 버리고 공동체를 위하는 일이다. 그러기에 그런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선비는 창조적 소수일 수밖에 없다. 그런 선비들이 많으면 좋겠지만, 우리가 바라는 대로 선비는 많을 수 없다. 선비의 길이 워낙 험하기 때문에 인간이라면 본능적으로 그런 길을 피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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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에 선비가 많을 수는 없겠지만, 그러나 최소한 몇명은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나마 나라가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정치가 혼란스럽고 백성들이 항심(恒心)을 가질 수 없는 것은 국가의 핵심에서 멸사봉공할 선비가 없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면 나라가 망하게 되어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전통시대에 선비들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를 지금은 상당수의 도적들이 차고 앉아 있는 형국이다. 사리(私利)를 추구하는 데에도 법도는 있는 법이다. 입으로는 백성들을 편안케 하겠노라 호언하면서 실제로는 나라의 재물과 국민의 혼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무리들이 판을 치고 있다. 그런데도 누구하나 나서서 바른 말을 할 줄 모른다. 선비가 죽어버린 나라, 가짜 선비들이 판치는 나라, 도적들이 선비로 위장하기 쉬운 나라... 서글픈 현실이다.
 "선비란 하늘이 내린 지위이므로, 천자(天子)라 할지라도 그의 몸은 죽일 수 있지만 그의 뜻만은 빼앗을 수 없다." 한말의 꼿꼿했던 선비 유중교(柳重敎)의 말이다. 선비정신이 방부제 역할을 해준 덕분에 조선왕조는 그럭저럭 500여년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학문과 인격을 함께 갖춘, 창조적 소수들이 바로 진정한 선비들이다. 임금이 어리석음과 탐욕의 길로 들어설 때 목숨을 걸고 충간하던 그들. 임금 주변에 몇 사람의 선비는 늘 있어 어려워지는 사직을 지탱해나갈 수 있었다. 그래서 선비에겐 언제나 명예와 죽음이 함께 붙어다녔다. 선비를 나라의 원기(元氣)라 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 나라의 만년대계 백성들의 행복한 삶은 선비들이 지켜야 할 큰 의리이자 추구해야할 이상이었다. 그들은 기회가 주어질 경우 세상에 도움될만한 일을 행하고 물러나서는 후세에 모범될만한 말이나 행동을 남기는 것을 자신들의 임무로 알았다. 예나 지금이나 가짜 선비들은 모래알처럼 많고, 실제로 그들이 나라의 모든 일들을 좌우한다. 알량한 몇 낱의 지식과 위장된 충성심으로 권력자에 기생하여 사리사욕을 채우는 자들. 그들은 어리석은 군주의 눈과 귀를 막고 국정을 제멋대로 휘저으면서도 그럴 듯한 명분으로 위장하는 데 능숙하다. 반성할 줄 아는 것이 선비의 도리요, 사회의 계층들을 조화시키는 것이 선비의 임무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것을 모른다.
불행하게도 지금은 이념이나 대의를 버리고 모두들 제 잇속 챙기기에 혈안이 되어있는 시대다. 세상이 잘못 돌아가도 한 마디 충언을 고하는 선비들이 없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을 하는 선비의 모습은 역사책에서나 찾을 수 있을 뿐이다. 가뭄 속에서, 폭우 속에서 하릴없이 하늘만 쳐다보듯 '죽은 선비의 사회'에 사는 민초들은 속수무책으로 이 시대의 진정한 선비들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비극이 아닐 수 없다.


2009-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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