共存 파괴하는 언어폭력 > 에세이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에세이

共存 파괴하는 언어폭력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05-13 16:40 조회 162회 댓글 0건

본문

■ 조선일보 특별기획 <위기의 지식인 사회 Ⅱ>


共存 파괴하는 언어폭력


요즈음 벌어지고 있는 지식인들의 논쟁은 지극히 저급하다. 언제나 상대방의 항복만을 강요하고 단발성 독설들만 날린다. 심지어 생각과 입장이 다른 동업자들에게 ‘수구반동’ 정도를 넘어 ‘개’나 ‘창녀’ 같은 원색적인 욕설을 퍼부어대는 칼럼들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끓어오르는 감정을 주체 못하는 지식인들이 이런 곳에서 너절한 배설의 쾌감을 맛보고자 하는 듯한 현실이 놀랍다.


글 전체를 ‘匕首’로


그 뿐인가. 단어나 문장 차원에 그치지 않고 글 전체를 비수로 만들어 상대방의 혈을 찍으려 든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지적 천박성이나 지식인에 대한 불신 또한 그런 저급성에서 연유됨은 물론이다.

삶의 새로운 공간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이웃을 향해 마음을 열라’는 주문이 시대정신으로 정착되었다. 바야흐로 ‘울타리 없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 시대에 또 다른 차원의 책무가 지식인에게 요구되었다. 상대방이 나와 다를 수 있음을 기꺼이 받아들일 줄 아는 ‘톨레랑스(tol rance)’의 미덕이 바로 그것이다. 공존은 관용과 열린 가슴을 전제로 하는 삶의 방식이다. 그럼에도 이 시대의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말에 좀더 험한 날을 세우기에 바쁘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항복’을 받아내려는 일이야말로 공존을 거부하는, 시대 역행적이며 반지성적인 폭력일 뿐인데도 말이다.

불행히 이 땅의 지식인들은 준비도 못한 채 새로운 시대를 맞았다. 어느 편에 서 있었든 그들은 흑백논리가 판을 치던 지난 시대의 그늘에서 한동안 속 편히 지낼 수 있었다. 그러니 지금 새로운 시대의 조타수가 되어야 함에도 변변하게 ‘준비해 놓은’ 그 무엇이 있을 리 없다. 그래서 마음에 자물쇠를 채우거나 겹겹이 울타리를 두른 채 상대방의 생각을 용납하려 하지 않는다. 결국 ‘준비 안된’ 자들의 자신 없음만 만천하에 드러낼 뿐이다.


칼럼에서도 毒舌…욕설…
상대방의 항복만 강요
‘大衆주의’ 함정 벗어나야


관용과 공존은 자신감을 기반으로 하는 삶의 원리다. 그런 점에서 견해가 다른 상대방을 극도로 존중하며 장장 8년간 사단칠정(四端七情) 논변을 나눈 조선시대 이황(李滉)과 기대승(奇大升)의 지식인적 면모는 세계에 자랑할만하다. 두 사람의 논변을 통해 간파해야 하는 것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하는 인내와 관용의 덕목이다. 몇 년간 지속되어도 변함없이 상대방을 존중하면서 자기 생각을 다듬어나가는 것은 끊임없는 인격의 연마와 공부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진실을 그들은 보여준다.

허물이나 꼬집어내고 그것으로 상대방을 ‘저열한’ 범주에 애써 묶어두려는 것 자체가 언어 폭력이고, 그런 폭력은 의식없는 지식인들의 편리한 도피처이기도 하다. 올바른 의식을 갖추지 못한 지식인에게 새로운 지식의 생산을 기대할 수는 없다.


‘관용의 정신’ 회복부터


지속적이고 건전한 논쟁을 통해 바람직한 지식의 확대 재생산을 시도할만한 바탕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경우 사용하고픈 유혹을 느끼는 수단. 그것이 바로 언어의 폭력이다. 무엇보다도 폭력적인 언어는 지식인의 생명인 논리를 추방한다. 그러한 언어 아닌 언어야말로 관용과 공존 및 개방의 시대정신을 몰각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나와 견해가 다른 상대에게 상처를 주거나 흠집을 냄으로써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보는 생각이 착각임은 선동정치가 만연하는 정치권의 폐해를 통해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미래를 내다보는 지식인이라면 자칫 교묘한 마키아벨리즘으로 연결될 수도 있는 대중주의의 함정에서 벗어나야 한다. 개방성과 균형감을 갖춘 지식인의 본모습을 되찾기 위해서라도 관용의 정신을 회복하는 일이 시급하다.


- 조선일보 2001년 7월 19일 목요일 41판 제25055호 3


2002-09-09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개인정보처리방침 서비스이용약관

:::白圭書屋:::
대표자 : 조규익 | Tel : 010-4320-8442
주소 : 충청남도 공주시 | E-mail : kicho@ssu.ac.kr

Copyright ©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