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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에 테러당한 지식인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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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05-13 16:42 조회 178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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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에 테러당한 지식인 사회


국내 유명대학들의 세 교수가 공동으로 제출한 논문이 표절로 판정되어 해당 국제학회로부터 항의를 받는 망신을 당했다. 대학인의 일원으로 낯 부끄러워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다. 갈 데까지 간 우리나라 지식인들의 지적 천박성을 만천하에 드러낸 이 사건은 오늘도 미련하게(?) 연구실을 지키며 고뇌하는 대부분의 학자들을 절망시켰다는 점에서, 학계를 향한 ‘더러운’ 테러이기도 하다.

이 논문이 그 가운데 한 사람의 박사논문을 발췌한 것이라는 사실은 더더욱 한심하다. 해당 학자들만의 문제가 아닌 이 사건은 우리나라 학자들의 도덕적 해이와 나태가 위험수위에 이르렀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지도교수와 제3자가 공동필자로 제자의 박사논문을 학회지에 투고한 행위를 평범한 상식으로 이해할 수도 없거니와, 더욱 해괴한 것은 그 논문이 만들어진 과정이다. 학교와 분야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박사논문의 경우 주제의 선정으로부터 심사를 통과하기까지 대체로 4~5단계의 검증을 거친다. 더구나 마지막 단계에는 그 분야의 권위있는 교수들 5인이 3~5회의 정밀한 심사까지 실시한다.

이와 같이 제도적으로 여러 겹의 ‘거름장치들’을 두고 있음에도 표절논문이 ‘무사히’ 통과된 데에는 두 가지 가능성이 거론될 수 있다. 반드시 거치게 되어있는 각종 공개발표와 심사가 대충 이루어졌거나 생략되었으리라는 가능성과 심사위원들이 무능하고 무책임했었으리라는 또 하나의 가능성이다. 외국 저명학자의 글을 표절한 논문이 그대로 통과되었다면, 공개 세미나에 참여한 다른 연구자들이나 심사위원들은 모두 허수아비들이었단 말인가?

이 땅에 대학이 팽창하던 시절 어느 원로학자 한 분은 늘 학계에 횡행하는 표절의 심각성을 개탄스러워 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나는 동안 더욱더 지능적이면서도 과감하게 자행되는 표절의 현장을 필자는 수없이 목격할 수 있었다. 수퍼마켓에서 생활용품을 훔치는 좀도둑은 즉시 신고되어 처벌을 받는 반면, 영혼을 불태우는 정신적 고뇌의 산물을 약탈하는 표절은 범죄행위인지조차 깨닫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표절에 대하여 대범하다못해 무감각하기까지 한 것은 우리 모두 표절이 일상화된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는 본의 아니게 표절행위의 방조자들인 셈이다.

대학사회에서 표절이 표면화된 것은 결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원로급 교수들이 관련된 표절 시비가 아직도 ‘미제(未濟)’로 남아 있으며 그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만 우습게 되어버리는 이 땅의 상황은 지식인 사회에 만연된 도덕적 불감증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학부 신입생들을 위한 강의 중 다른 사람의 문장 하나를 출처없이 인용했다가 지적을 받고 사임한 보스턴대학의 존 슐츠교수. 그와 같이 서슬퍼런 자기관리의 사례를 우리나라 학계에서는 발견할 수 없다.

남의 글을 베껴 내거나 인터넷 사이트에서 따온 도막글들을 ‘짜깁기’하는 게 리포트라고 생각하는 대학생들이 수두룩하고, 외국의 가요․만화․드라마․음악․방송프로그램․영화․문학작품 등을 베껴 한 탕 해보려는 대중문화 담당자들이 주변에 널려 있는 우리의 현실은 참담하다.

박사논문 한 편을, 저서 한 권을 표절하고서도 늠름하게 활보하는 교수들이 대학의 중심에 있는 한 우리 학계의 도덕성 회복은 불가능하다. 이들의 그늘에서 표절을 ‘있을 수 있는 문화행태의 하나’로 인식하는 대학생들이 자란다. 이런 대학생들이 나중에 학자가 되고 문화인이 된다. 따라서 이들이 만들어낸 문화에 열광하는 우리 모두는 양심의 질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 땅에 만연된 학문적 천박성이나 문화적 경박성은 표절에 대한 우리 사회의 너그러움과 무관하지 않다. 다량의 학술적 저작만을 요구하는 대학당국들에게도 그 책임은 있을 것이고, 늘 새로운 것만 강요하는 방송매체들에게도 그 책임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저변에는 뜸들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는 우리 모두의 조급함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니 누가 그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가?

 * 이 글은 2001년 11월 21일자 조선일보의 時論으로 실렸음


2002-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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