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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한인들에겐 문학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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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05-13 16:43 조회 13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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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한인들에겐 문학도 있다!


미국으로의 이민이 시작된지 100주년을 맞았다. 이민과 관련 누구나 한 마디씩 하지만 유독 이민들의 문학에 관해서만은 잠잠하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문학이 현실을 반영한다” 했고, 테리 이글턴은 자신을 관련시키는 글의 어떤 방식이 문학”이라 했다. 재미 한인들의 문학이야말로 이런 명제들에 정확히 부합한다. 그들의 삶을 설명하는 수백쪽의 책이나 보고서보다 한 편의 소설이 더 진솔한 상황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두 가지 예만 들자. 이민 초기 험난했던 삶의 역정을 그린 게리 박Gary Pak의 <종이비행기A Ricepaper Airplane>. 이 작품은 낭만적 혁명아인 주인공(김성화)의 개인사가 아니라, 이민들이 공통으로 당한 역사의 아이러니를 그려낸 서사물이다. 식민치하 조국의 비극적 상황, 초기 노동이민들의 참상, 일제에 대한 저항과 사상적 방황, 조국에 대한 그리움과 집착 등을 단 한 편의 소설에 압축한 100년의 이민사 그 자체다. 김난영Ron-young Kim의 <토담Clay Walls>. 고국에 귀환하고자 무진 애쓰는 타율적 이민자 주인공(혜수)이 미국에서 당하는 시련과 좌절을 기록했으나 이 또한 주인공의 개인사가 아니라 한인 이민 전체의 문제를 보여주는 서사적 기록이다. 이처럼 이민사회의 괴로움이나 타율적 이민의 실상을 문학보다 더 생생하게 보여주는 기록이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삶, 그 자체가 소설

미국으로의 이민사 1세기는 의미심장한 세월이다. ‘조부모-부모-나’로 이어지는 3대가 뿌리내린 시간일 뿐 아니라 그 마무리 세대인 ‘나’로부터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그간 이민이 갖는 정치, 사회, 경제, 외교적 측면의 의미는 대체로 밝혀졌으나, 정신‧문화적 측면 특히 문학분야는 아직도 무관심의 저 편에 내던져져 있다. 세계화의 출발은 외부세계를 향한 진출이고 그 적극적인 발로가 이민이며, 구세계와 신세계의 접경에 놓인 이민들의 갈등이나 방황은 바로 우리 민족의 세계화를 위한 시련을 상징한다. ‘한국계 미국인Korean-American’으로 불리는, 미국적의 한인들. 국적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고 바꿀 수 있으나 종족은 그럴 수 없다. 한인 이민들이 작품을 영문으로 쓰든 일문으로 쓰든 내면의 불변적 정서는 종족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다. 초창기부터 유일한‧강용흘‧김은국 등을 거쳐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이창래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민작가들의 작품에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identity을 찾으려는 시도는 뚜렷한 맥으로 연결된다. 형편이 좋아지면 조국으로 귀환하고자 했던 식민치하의 이민 1세대와 달리 2세대나 3세대는 주류사회에 적응, 편입되고자 했다. 결국 조국에의 귀환이나 주류사회에의 편입 모두 여의치 못해 ‘경계인marginal man’이라는 집단적 자아인식을 공유하는 데 그쳤지만, 이 점이 한인문학에 구현된 주제의식의 큰 흐름임을 부인할 수 없다.

2-3세대 "나는 주변인"

샌타모니카의 스타벅스에서 만난 30 초반의 아릿따운 아가씨 스테파니 한Stephnie Han. 현재 시인 겸 배우이자 학자 지망생인 그녀는 한국정부의 지원을 받아 조모의 고국에서 단 1년이라도 머물 수 있길 소원한다. 그 기간 동안 하와이로 이민 온 할머니로부터 어머니를 거쳐 자신에게로 내려온 3대의 이야기를 소설로 완성하는 것이 그녀의 당면한 꿈이다. 뉴욕의 정신과 전문의 헨리 김Henry Kim. 그도 틈나는 대로 한인 문인들을 찾아다니며 대화를 나누고 이민사회를 문학적으로 그려내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그들의 목표는 단 하나, 스스로의 문학을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는 이들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미국에서 유학하는 영문학도들은 이들의 존재를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국문학도들은 영어로 쓰여진 문학이니 당연히 영미문학자들의 몫으로 밀어버린다. 정부에서는 해마다 많은 예산을 들여 고령의 독립운동가 후손들만 불러 들인다. 미국 뿐 아니다. 전 세계에 600만 이상의 한인들이 뿌리를 내린 채 살아가고 있다. 대학에 이민문학 강좌를 개설하고, 국문학이든 외국문학이든 학계가 공동으로 나서서 기초조사만이라도 우선 착수해야 한다. 아무리 앞 뒤 못 가리는 정부라 해도 이런 일에만은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하고, 모르면 이 방면의 뜻 있는 인사들에게 자문해야 한다. 이민문학은 세계 문학시장 한 켠에서 자라고 있는 우리의 문학이다.

자기정체성 확인 계기

 한인들의 이민문학을 도외시한 채 ‘한국문학과 세계문학’을 운위하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그런 보물을 아무도 보지 않는 미국문단의 한 쪽 구석에 마냥 쳐박아 둘 수야 없지 않겠는가.
조규익(숭실대 교수/국문학)

 *이 글은 조선일보 2002년 1월 30일(수)자에
"美國 이민 100주년 移民文學 정립해야"라는 제목으로
 실린 글입니다.


2002-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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