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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 기피 현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안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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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05-13 16:44 조회 140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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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 기피 현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안목


곡식의 싹이 자라지 않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어떤 송나라 사람이 그 싹들을 뽑아 올려 놓고는 “싹이 자라도록 도와 주었다”고 자랑했다. 그러나 그의 아들이 밭에 나가보니 싹들은 모두 말라 죽어 있었다. ꡔ맹자ꡕ 「공손추 상」에 나오는 ‘알묘조장(揠苗助長)’의 고사다. 도와서 자라게 한 일이 사실은 망쳐버린 결과를 낳게 되었다는 뜻이다. 2002학년도 신입생 선발이 마무리 되어가는 요즈음, 상당수의 서울대 이공계 합격생들이 등록하지 않은 일을 두고 나라 전체가 떠들썩하다. 이 일을 그들의 표현대로 ‘이공학 기피현상’으로 해석해야 할지 단언할 수 없으며, 이 일이 과연 그렇게도 ‘놀라운 사태’인지 속단할 수는 없으나, 그 분야의 인사들에게는 일단 충격으로 받아들여진 듯 하다. 이공학 분야의 우수한 합격생들 상당수가 그보다 낮은 대학의 의학계열 등 취업에 유리한 분야로 옮겨간 이번의 사태가 이공학으로서는 일대 위기이기 때문에 병역특례의 확대 등 유인책을 내어서라도 그들을 이공학 분야로 묶어 놓아야 한다는 것이 해당 분야 인사들의 주장이다. 듣기에 따라서는 그럴 듯한 분석과 주장이지만, 사실 이 주장에 문제점이 없지 않다. 설사 학문 외적 인센티브를 제공하여 우수한 인재들을 유치한다해도 그것만 보고 몰려드는 사람들에게 그 인센티브의 의미가 퇴색한 이후 또 다시 어떠한 인센티브를 제공할 것인지 궁금하다. 과연 병역특례의 확대나 이공학 전공자들에 대한 급여의 확대가 근본적인 대책인가, 아니면 그 분야의 학자들이 보다 깊은 연구를 통하여 많은 성과를 올리거나 교육과정 전반의 수술을 통하여 청소년들로 하여금 공학이나 과학에의 꿈을 갖게 하는 것이 근본적인 대책인가. 비단 이공학 분야만이 아니고 우리는 모든 일에 있어서 너무나 피상적이고 근시안적인 처방에만 매달려 그때그때 땜질식으로 모든 일을 해결하려고 하는 조급증에 걸려 있다. 설사 그런 방법으로 이공학계의 문제를 임시 해소한다 해도 다른 분야들이 느끼게 될 상대적 박탈감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예컨대 인문학 분야같은 경우는 이미 고사되어 이런 불평을 제기할 힘조차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물론 공학이나 과학이 국가의 발전에 가장 직접적인 분야라는 점은 인정을 한다. 그렇다 해도 지금 당장 강의실이나 연구실, 실험실이 비게 되지 않는 한 근본적인 대책부터 세워야지 임시 방편적인 방법으로 인재들을 유인하려는 발상은 매우 근시안적이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이공대학의 연구실과 실험실에 밤 늦도록 불이 환하게 켜져 있는 것을 보면, 아직도 그 분야의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인력들이 고갈되지는 않은 듯 하다. 따지고 보면 어떤 분야이든 선두그룹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다. 물론 많은 수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이 소수 가운데 두드러지는 것보다는 낫지만, 그래도 아직 다른 분야들에 비해 이공학분야가 절망적인 것은 아니라고 본다. 학생들이 초중등 과정부터 이공 계통의 과목에 흥미를 갖지 못하는 것은 교육의 방법과 내용 때문이고,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실험실습을 병행할 수 없도록 하는 입시제도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청소년들이 과학자나 공학자로서의 꿈을 갖기가 어려운 건 당연하다. 정책 담당자들나 해당 분야 인사들이 좀더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여 그 분야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 다시 말하면 해당 분야 인사들의 노력과 함께 국가가 정책적으로 이들 분야를 뒷받침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수한 학생들이 공학이나 과학을 외면한다면, 교육과정이나 우리나라 해당 분야의 학문적 수준 자체에서 먼저 문제를 찾아야지 유인책의 모색만을 우선시해서는 안된다. 유인책이란 자신들이 최선의 노력을 경주한 이후에나 생각해볼 수 있는 편법일 뿐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유인책 자체는 어리석은 송나라 사람이 썼던 ‘알묘조장’에 지나지 않는 하지하책(下之下策)일 것이기 때문이다.


2002-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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