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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가진 자들에게 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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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05-13 16:49 조회 13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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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가진 자들에게 고함
-참회의 마음으로 국민 앞에 석고대죄를-


‘오십보 백보’의 고사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싸움터에서 오십보 달아난 군사가 백보 달아난 군사를 더 비겁하다고 꾸짖을 수 있겠느냐는 맹자의 물음에 양나라 혜왕이 둘다 마찬가지라고 대답한 데서 나온 고사다.

지금의 정국이 재미있게 돌아가고 있다. 여러 가지 일로 궁지에 몰려있는 대통령이 회심의 역작으로 생각한 개각에서 재상으로 내세운 인사로부터 국가관을 의심할만한 일이 불거져 나와 목하 성토의 열기가 뜨겁다. 야당의 대통령 후보 또한 이와 비슷한 전력이 있어 겉으론 상대방을 세차게 몰아세우면서도 내심 전전긍긍하고 있다. 물고 물리는 싸움의 상대방들이야 오죽할까만 바라보는 국민들 또한 곤혹스럽긴 마찬가지다.

어찌 보면 상류계층의 누구를 털어도 그 정도의 흠집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사정이라면 좀 지나친 단정일지 모른다. 사실 근대 이후 이 땅에서 이른바 사회의 지도층이라고 불리는 집단이 ‘노블레스 오블리쥬’의 미덕을 실천한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나라가 위태로울 때 일선에서 총대 잡고 싸우다 죽어간 것은 학벌 없고 돈 없고 배경 없는 민초들이었다.

그런 점에서 또 다시 이와 같이 형편 없는 국가관을 가진 인사들에게 새로운 시대나 정부를 맡겨야 한다는 것은 ‘분통 터지는 일’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좀더 여유를 가지고 우리 자신을 관조할 필요가 있다. 그들의 말도 안 되는 행태에 대하여 자못 분개하는 내게 그들이 쥐고 있던 권력과 돈의 극히 일부분만이라도 주어진다면 과연 나라고 그들이 빠져든 그 유혹으로부터 초탈할 수 있을까?

말하자면 근래 밝혀지고 있는 지도층의 몰역사적 행태는 지지리도 가난하던 시절, 우리가 선진국을 선망하기에 여념이 없었던 우리 근현대사의 어두운 일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큰 열등감과 역사적 피해의식을 지니고 있었기에 제 아이에게 남의 나라 국적을 안겨 주었겠으며, 제 나라 놔두고 엉뚱한 나라에 달려가 몸을 풀었겠는가 말이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그들도 불쌍한 존재들일 수밖에 없다. 그런 조건들을 걸어 이 사람 저 사람 다 떨구고 나면 우리의 억장은 좀 풀리겠지만, 그래도 이 나라를 누군가는 경영해야 하는 것 아닌가? 누구를 벗겨도 그만한 흠집을 발견할 개연성이 있는 게 현실이라면, 우리는 좀더 다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이젠 우리도 어느 정도 클만큼 컸다. 그러니, 가당챦은 열등감에 휩싸여 구차하게 2세들에게 엉뚱한 나라의 국적을 안겨주는 어리석음만큼은 앞으로 절대 범해서는 안된다는 공감대를 확고히 해야 한다. 새 출발은 그런 바탕 위에서만 가능하다. 총리로 임명되었든 대통령 후보로 추대되었든 무언가 남다른 장점이 있기 때문일 것인데, 새 출발을 위해서라도 양쪽 모두 함께 손을 잡고 국민 앞에 엎드려 ‘석고대죄’의 통과의례 만큼은 반드시 거쳐야 한다. 궁색한 둔사는 자꾸만 자신들을 궁지로 몰 뿐이다.

자식에게 선진국의 국적을 안겨주려 한 것은 이 땅의 민초들이 겪어왔고 앞으로도 겪을 것이 분명한 고통의 굴레에서 자유롭게 해주고픈 본능적인 부모 마음에서였음을 고백하고, 그 짐을 벗어야 한다. 공연히 객적은 논리로 자신들의 부끄러움을 가리려 하지 말아야 한다. ‘붉은 악마들’이 환호한 광화문 네거리에 큰 무대라도 꾸미고, 그 위에 올라가 고두백배하며 다시는 이런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겠노라고 국민에게 서약할만한 정도의 용기는 보여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정파간에 일고 있는 ‘다람쥐 쳇바퀴 도는’ 식의 말싸움을 잠재울 수 있다. 지금 국방, 경제, 사회 등 국내외적으로 많은 문제들이 꼬여 있다. 그 뿐 아니라, 월드컵의 열기가 식기 전에 도약의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역사적 책무까지 짊어지고 있는 입장이다. 무엇 하나 시원하게 풀리는 게 없는 현실에서 우리는 언제까지 비생산적인 멱살잡이나 계속할 것인가? 지금 우리의 형편은 그렇게 한가하지 못하다. 이 순간 이 땅에서 진정한 대동을 이끌어낼 어른은 없는지 답답할 뿐이다.


2002-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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