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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아무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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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05-13 16:56 조회 136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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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아무나 하나

 어느 지역에서는 초등학교 교사의 부족으로 내년 신규 임용자들 가운데 55세의 초임교사가 나올 수 있게 되었으며, 심지어 100점 만점에 40점짜리도 임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기가 막히는 일이다.

그 뿐인가. 교육과정의 개편으로 남게 된 교사들을 일정 기간의 재교육을 통하여 다른 과목의 교사로 발령을 내주기로 했고, 지금 그 정책을 시행 중이다. 아무리 연수를 받는다 해도 대학 졸업 후 수년 혹은 십수년을 가르쳐온 교사가 전혀 다른 전공과목의 교사로 '아무렇지 않게' 옮겨갈 수 있는 나라가 바로 '교육입국'을 부르짖는 이 나라의 형편이다.

이 정권의 최대 실정들 가운데 하나가 교육임은 재론할 필요조차 없다. 교사 수급의 불균형 등 교육현장의 현실이 어렵긴 하나 과연 이럴 수밖에 없는가에 대하여 각계의 지혜를 모아야 할 일임에도 국민들은 으레 그러려니 하며 체념하고 만다. 언필칭 교육 수요자의 입장에서 교육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한다는 정부 당국자들이 수요자들에게 엄청난 불이익을 줄 수 있는 이런 일들을 슬그머니 다음 정권에 넘기려는 것 같아 불안하기만 하다.

필자는 사범대학 4년간 교양 교직 전공을 합쳐 170학점을 이수했고, 석달 가까운 교생실습을 거쳐 중등학교 2급 정교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렇게 하고서도 발령 이후 교단에 서기까지 불면의 나날들을 보냈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막막할 뿐이었다. 교단에 서기 전날 밤에는 머리로부터 대학 4년간 배운 전공지식이 하얗게 사라지는 경험도 했다. 그만큼 학생들에게 전공분야를 가르친다는 것이 수월치 않은 일이고, 교육현장의 교사들 대부분이 이구동성으로 긍정하는 점이기도 하다.

교단이란 단순히 두뇌 회전이나 경력에 의한 노련함 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비유컨대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배운 전공지식들은 허름한 창고에 대충 쌓아둔 1차재료들에 불과하다.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제공하기 위해서는, 재료들을 다시 끄집어내어 세밀하게 가공해야 한다. 수요자인 학생들은 늘 면도날처럼 송곳 끝처럼 정확한 것을 요구하므로, 전공교사로서의 정체성과 자존심을 세우기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 속에서 교사직을 그나마 수행할 있는 것은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쌓아놓은 1차재료들 덕분이다. 4년간 교수들의 강의 전공서적 각종 과제물 시험 등을 통하여 비축해둔 그런 1차재료들이 대단히 긴요하다. 그러면서도 강의에 자신없기는 경력이 쌓여도 마찬가지라는 것이 필자를 포함한 상당수 교사들의 고백이다. 아무리 준비를 많이 해도 강의가 끝나고 나서 상쾌한 적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작금에 벌어지는 교육정책의 문제가 만에 하나 "대부분의 학생들은 사교육을 통해 선행 학습을 하는 입장이니 교사야 아무려면 어떠랴?"라는 발상이라면, 이 나라는 이미 공교육을 포기한 셈이다. 학생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자신의 대답이 약간만 시원치 않거나 실수를 해도 마음의 상처를 받는, 마음 여린 존재들이 교사들이다.

임용시험 40점을 맞은 응시자도 교사로 써야 할 형편이라면, 교원 수급정책에 중대한 문제가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이다. 교원 정년 등 정책의 문제라면 시간이 흐르기 전에 고쳐야 한다. 잘못된 정책으로 국민이나 학생들이 받을 수 있는 피해는 누가 보상해준단 말인가. 이미 학생들이 인터넷의 바다를 헤엄치며 교사들의 머리 위에 앉아 있는 시대에 교육의 전문성을 스스로 부정하고 있지나 않은지 교육 당국은 반성해야 한다.


2002-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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