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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폐지론의 참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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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05-13 16:56 조회 160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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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02년 11월 8일자 "조선일보"에 時論으로 실려 있습니다.

교육부 폐지론의 참뜻

국민적인 관심 속에 올해의 수능시험도 끝났다. 수시모집 등 부분적으로 새로운 요소가 가미되긴 했으나, 대학입시에서 수능이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절대적이다. 그래서 대학 입학을 인생 승패의 관건으로 여기는 대부분의 수험생들에게 수능은 건곤일척의 승부처일 수밖에 없다. 광복 이후 수십 차례나 땜질을 거듭해 온 입시제도의 난맥상은 21세기에 들어서까지 청산되지 못한 채 수험생이나 학부모는 물론 전 국민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대학을 못 믿어 修能 장악

수능은 대학들로부터 학생 선발권을 회수해 간 교육부의 교육 기득권 행사 의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제도다. 적지 않은 수의 출제위원들이 한 달 이상 감금된 상태에서 출제한 문제들을 한날한시에 수십만 명의 수험생들에게 부과하여, 싫건 좋건 그 점수에 맞추어 대학을 선택하게 하는 기이한 일이 지식정보화 사회를 바탕으로 개성과 자율이 삶의 원리로 정착되어가는 이 땅에서 해마다 벌어지고 있다. 아직 우리의 대학들은 스스로 학생을 선발할 만한 능력이나 공정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판단이 정권이나 교육부가 많은 비난을 받으면서까지 수능을 장악하고 있는 명분일 것이다.

그러나 교육부가 무리수를 두고 있는 일이 어찌 수능뿐일까. 정치권에 휘둘린 결과라고는 하나 무리한 정년 단축과 그로 인한 교원 수급의 난맥상, 신자유주의 사조의 무사려한 적용, 졸속이라 할 만한 교과과정 개편, BK21의 무리한 입안과 추진 등을 포함하여 두 손으로 꼽기에도 벅찬 실책들이 지금 이 나라 교육을 위기에 몰아넣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이 정권 들어서 교육부는 ‘교육인적자원부’로 명칭을 바꾸고, 장관도 부총리로 격상시켰다. 인적 자원의 개발이나 양성이 소임이라면 그에 걸맞은 비전을 가져야 한다. 그럼에도 일부 직제의 개편이나 신설을 제외하곤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는 인적 자원의 양성책을 입안하고 시행해온 흔적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주지하다시피 우리 국민들의 교육열은 세계적으로 으뜸이다. 교육이 정치·경제·사회 등 다른 분야들과 뗄 수 없는 함수관계를 갖게 된 것도 이런 점에서 당연하다. 더구나 지금은 개방과 자율, 다양성의 시대다. 대학만 해도 규모나 지역, 설립주체·이념·목적 등이 다르기 때문에 큰 틀을 벗어나지 않는 한 얼마든지 다른 방법으로 운영될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학부제의 경우도 자발적으로 나선 대학들보다는 임시방편으로 흉내만 내온 대학들이 대부분이다. 학부제 실시 여부와 대학에 대한 재정상의 지원을 연계 조건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채찍에서 당근으로 바뀌긴 했으나 통제의 낡은 방법으로 획일적인 틀 속에 교육기관들을 묶어 두려는 발상만큼은 전혀 바뀌지 않은 것이다.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장관이 교체되고 그에 따라 행정의 실무자들 또한 바뀌는 현실에서 정책의 일관성이나 전문성은 아예 거론할 계제가 아니다.

  시대의 변화와 요구 못 읽는다면...

이런 점에서 최근 물러난 영국의 교육부 장관 에스텔 모리스는 우리에게 경종을 울려준다. 그는 자신이 문제를 잘 처리했고 교사들과는 잘 통했으나, 거대 부처의 전략적 운영에 미숙했고 능률적이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아마도 시대의 변화나 요구를 읽어낼 수 있는 전문적 능력이 부족함을 실토한 것이리라. 그가 털어놓은 전·후자 중 어느 것도 갖추지 못한 우리의 교육 당국자들로서는 뼈 아프게 들어야 할 말이다.

교육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할 만큼 시대사조는 변하고 있다. 명령과 통제를 벗어나 다양성과 자율을 권장하는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지식정보화 사회의 후원자나 견인차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교육부는 이 땅에서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다. 뜻 있는 이들이 교육부 폐지론을 서슴없이 주장하고, 이런 민심을 잽싸게 읽은 어느 대통령 후보가 사실상 교육부를 폐지하겠다는 공약을 내건 사실은 교육부의 험난한 앞날을 예고하는 경보음이다.

(曺圭益/숭실대 교수·국문학)


2002-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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