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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대필과 교육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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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05-13 16:57 조회 160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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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대필과 교육개방

 요즈음 두 가지 사건이 가뜩이나 취약한 우리나라 대학사회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하나는 학위논문 대필 사건. 편당 50∼500만원에 각종 학위논문을 대신 써주는 업체들과 당사자들이 적발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재수 없어 걸려든 것일 뿐 이런 행태가 이미 만연되어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量으로만 팽창한 대학들

세계무역기구 양허안 제출 시한이 닥친 교육시장 개방 논란이 또 하나의 사건이다. 최근 국무회의 석상에서 교육부총리와 경제부총리 간에 이 문제로 언쟁을 벌였다고 한다. 교육과 경제의 두 접근법으로 교육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상이한 관점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학위논문 대필과 교육 개방은 표면적으로 상관 없는 일들일 수 있다. 그러나 내면을 들여다 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 누가 주도하고 있건, '개방'은 더 이상 거부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다. 교육도 경쟁력만 갖춘다면 전 세계의 인재와 부를 끌어 모을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고 있는 현실에서 교육시장만 개방의 표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고등교육시장, 특히 대학을 섣불리 개방할 수 없는 이유는 많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아직은 그 '기본'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이다.
기본을 세우기 위해서는 개혁을 해야 한다. 개방은 개혁을 대전제로 한다. 개혁을 하지 않은 채 문을 열면 망할 수밖에 없다. 상당 기간 우리의 화두는 대학의 개혁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 개혁은 내실을 외면한 껍질 뿐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제도의 개혁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인적 구성원들의 개혁이다. 제대로 된 평가척도를 적용하여 출척(黜陟)의 정확함과 매서움을 엄정하게 시행하는 데서 개혁은 가능하다. 대학의 구성원들은 교육의 주체이며, 국가나 국민은 그 교육의 수요자들이다. 국가나 국민은 젊은이들을 대학에 위탁할 줄만 알지 그 주체들의 질 관리가 중요하다는 점을 알지 못한다.
현재 구성원들, 특히 교수에 대한 평가척도는 논문의 양이 절대적이다. 아직도 우리나라에는 연구물의 질을 평가할만한 제도나 의지를 갖춘 대학이 없다. 질보다 양이 현실적 이익을 보장하는 체제에서 '논문 제조'는 당연한 관행이다. 학생들 또한 그런 관행을 쉽게 익힌다. 논문작성법에 대한 강의는 하지만, 학문 하는 일이나 글 쓰는 일이 고도의 양심적 윤리적 행위임을 가르치는 학교는 거의 없다.
대학가에는 논문 대필 장사가 인터넷으로 내려받은 논문들을 적절히 짜 기워 1주일만에 만든 논문을 걸러낼만한 장치가 아예 없고, 있다해도 기능이 정지된 지 오래다.
이런 환경에서 익숙하게 살아온 교수가 어찌 '짜 기운 글'을 논문으로 알고 있는 제자들을 닦달할 수 있을 것이며, 학위논문을 '기워 만들어' 장사하는 상혼이 자신들의 행위가 악덕임을 어찌 알겠는가.

      교육개혁 뒤 시장개방을 

개혁을 논하면서 본의 아니게 우리가 지향해온 것은 대학의 양적 팽창이었다. 학문의 전당인 대학을 멍들게 한 논문 표절 문제 역시 양을 중시해온 관행의 결과였으며, 근간 표면화된 학위논문 대필사건은 그런 표절이 진일보 확대된 현상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런 사건들을 겪으면서 대학의 신뢰도는 철저히 붕괴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간 대학들이 지향해온 개혁의 허구성 또한 단적으로 드러났다.
대학의 기본을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개방은 필패의 우책(愚策)일 수밖에 없다. 이런 실정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대학이나 고등교육시장의 개방은 쉽게 말할 수 없다.
시장경제 하에서의 개방은 경쟁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경쟁은 공정해야 한다. 그러려면 경쟁의 당사자들은 최소한의 기본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느리지만 내실을 기하면서 체질을 개선하는 쪽, 온정주의를 청산하고 엄정한 평가척도를 예외없이 들이대는 쪽이 개혁의 새로운 방향이어야 한다. 지금 대학의 개방을 운운하는 당국자들의 인식이 한심하게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기우는 아닐 것이다.

                                                          조규익(숭실대 국문과 교수)


 *이 글은 <조선일보> 2003. 3. 27일자 A27면에 "'논문장사'가 판치는 한..."이란 제목으로 실려 있습니다.


2003-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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