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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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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05-13 16:57 조회 165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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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의 미학

 봄이 오는 길목의 어느 하루.
나는 두 사람을 몇 시간 간격으로 만났다.
한 분은 정년을 맞이한 노교수, 또 한 분은 갓 육십의 예인(藝人).
내가 두 분을 가까이 만나기 시작한 것은 노교수 쪽이 10년 이쪽 저쪽, 인간문화재이신 그 예인쪽은 3∼4년 남짓이다. 두 분 모두 그 분야에서는 내로라 하는 경력과 실력을 갖춘 분들임은 물론이다. '내 나이 아직 어리다'는 착각에 사로 잡혀 지내온 나로서는, 두 분을 만나면 재롱(?)을 떨기 일쑤다. 그저 '이쁘게' 보아 주시는 그 분들의 순수한 심성 때문이리라. 그런데, 오늘 드디어 나는 두 분으로부터 일생일대의 테러(?)를 당하고 말았다.

    *********

캠퍼스 앞 노상에서 우린 우연히 만났다. 그리고, 찻집에서 한담을 나누었다. 자연스레 정년이 화제로 올랐다. 그 분은 내년 2월말 정년을 앞두고 있었다.
그 분 왈, "조교수도 이제 한 5∼6년 남았지요?"
아뿔싸, 그렇다면 노교수는 나를 59 아니면 60으로 보고 있었단 말인가?
일순 당황한 나, "아직 20년이나 남았어요!"라고 절박한 심정으로 외친 건 당연지사. 그러나 그 외침이 그 분에겐 '농담'으로 들릴 뿐이었다.
 "에이, 그러면 2년 남았다는 말이군요? 하기사 대학교수가 정년으로 밀려나는 일이 억울허긴 허지. 허나 그 2년도 잠깐이란 말이오. 눈 두어번 껌뻑거리면 2년이 훌쩍 지나가요. 그러니 빨리 정년 이후의 삶이나 준비허시오."     
파릇파릇한 젊음들로 만원인 그 찻집에서 나는 허허롭게 웃었지만, 속으로는 미칠 지경이었다. 이제 40 중반의 팔팔한(?) 내가 졸지에 환갑노인으로 비쳐지고 있는 현실이 비애로왔고, 매일 만나는 사이는 아니나 가끔씩 만나서 환담을 나누는 처지에서 내 나이조차 제대로 파악 못한 노교수의 무신경과 아둔함이 원망스러웠기 때문이다. 머리 속에 번개처럼 스치는 생각.
 "아, 전화로 동사무소에 '팩스민원'을 신청하여 주민등록초본이라도 보여 주어야 하나?"    그러나, 민원서류가 도착하려면 적어도 하루는 걸릴 것이니, 노교수를 그 자리에 묶어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머리털은 거의 다 빠져버린 상태이나, 팽팽한(?) 피부와 몸의 상태만은 20대 못지 않다고 용기를 북돋워주는 마누라의 말만 믿고 자만에 빠져 있던 나였다. 그야말로 눈 앞이 캄캄해지는 최종 판결문을 그 노교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읽어 내려간 것이다.
대법원의 최종심에 끌려나온 사형수마냥 애타게 소명하려는 내 마음과 말을 불신하는 듯한  노교수의 눈치. 그게 더 미칠 노릇이었다.
그러나, 어쩌랴! 내 나이가 몇 살이든 그가 그렇게 믿지 못하겠다면 할 수 없는 일 아닌가? 더구나 '내 나이가 십대이든 육십대이든 그 사실이 그 분에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런 판단이 서자, 비로소 나는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있었다.

    *********

20대 초중반, 대학에 전임으로 자리 잡은 나로서는 지금까지의 대학 재임 기간만을 따져도 지금 정년하시는 분들보다 오히려 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학에 오래 재직한 것이 무슨 훈장이란 말인가? 하나의 공동체를 위해 얼마나 기여했는가가 평가의 척도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40중반을 넘기고 있는 지금도 나는 대학에 전임으로 진입했던 20대의 착각 속에 살고 있음이 분명하다. '인생의 기념비는 50전에 마무리되어야 한다'고 연전에 작고하신 은사 원정선생은 늘 되뇌이셨다. 그러나, 나는 인생의 기념비를 준비하기는커녕 아지랑이 자욱한 20대의 꿈에 젖어 50대의 늪을 향해 질주하는 이 고갯길의 번뇌마져 잊고 있었던 것이다. 가련하고도 미련한 내 인생이여!
오늘 눈치 없는 노교수의 한 마디에 '충격'을 받고, 비로소 내 모습을 되돌아볼 기회를 가졌다.

    *********

밥상머리에 붙어앉은 내게 그 인간문화재는 선포하셨다.
 "내 이제 그대에게 와서 대학원 공부를 할테니 그리 알라!" 라고.
놀라움 뿐이었다. 누가 이 분의 예술을 따라잡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왜 이 분은 가련한 내게 가르침을 청하시는가? 더구나 국문학도에게. 일순 고난의 가시밭길이 파노라마처럼 머리를 스쳐갔다. 외국어시험, 종합시험, 논문계획서, 기말세미나, 논문심사, 엠티, 국어문법론, 고대국어특수연구, 문예사조론, 현대소설사, 작가작품론, 문예비평론, 고대소설론, 고대작가특수연구 등등. 악어떼 우글거리는 저 늪지대들을 어떻게 통과하여 광채 찬란한 '월계관'을 쓰시려는 건지, 눈 앞이 캄캄해졌다. '내 직권으로 국문학 박사학위를 드릴 수 있는 길은 없을까?' 대책이 없었고, 지금도 풀 수 없는 과제를 그 분은 성큼성큼 건네시는 거였다.
사실, 얼마나 아름답고 거룩한 일이냐? 배움에 어찌 나이가 대수일 것이며, 사회적 지위가 무슨 걸림돌일 것이냐? 우리가 '제도'라는 미명으로 만든 형식논리 만이 그걸 못하도록 막는 장벽들일 뿐이다. 내실과 전혀 관련 없는, 껍데기 뿐인 형식과 절차. '그 형식논리에 안주하여 진짜 실력 있는 아웃사이더들을 핍박해온 주체가 혹시 나 아닌가?'라는 깨달음에 나는 일순 당황해지기 시작했다. 일생 제도의 바깥에서 예술의 최고봉을 이룬 이 대가에게 제도권의 허상을 '상처 없이' 알려드릴 순 없을까? 형식논리와 제도의 허울 속에서 날마다 '자괴(自愧)'의 다이어리를 채워가는 이 가련한 인생의 실상을 가감없이 알려 드릴 순 없을까?

    *********

사정 없이 내 살갗을 쪼는 초춘(初春)의 양광(陽光) 속에 만난 두 분.
두 분의 일갈 속에 눈을 떠 보니 
내 인생의 한낮은 이미 기울어 있었다.
                        (2003. 4. 3.)


2003-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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