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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을왕리를 꿈 꾸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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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05-13 16:58 조회 18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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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을왕리를 꿈 꾸지 않으리라


 서리철 홍시처럼 농 익은 석양이 빙글거리며 물에 떨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땅 위엔 온통 쓰레기 천지였다. 스티로폼 조각들, 깨진 병조각들, 썩은 그물들, 알록달록한 비닐봉지 등으로 고운 모래 그득한 해변은 추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 뿐인가. 길 가에 세워진 간이화장실에서는 냄새나는 액체가, 줄 지어 늘어선 식당들로부터는 각종 생활하수가 주울줄 흘러나와 모랫벌을 검은 빛으로 썩이고 있었다.
바다에서 못볼 것들을 잔뜩 보고 마을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동남쪽의 야트막한 산 밑에는 갈대 무성한 늪이 있었다. “아, 저 갈대!” 하며 달려간 나는 자지러지게 놀라고 말았다. 그건 낭만 가득한 갈대의 늪이 아니었다.
어망의 부이, 고물 텔레비전, 건축 폐자재, 오물 묻은 화장지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쓰레기들이 하얗게 말라버린 갈대숲 속에 은신하고 있었다. 그건 모든 쓰레기들의 전시관, 아니 박물관이었다.
그 옆엔 시커멓게 썩어버린 오물이 그득 흐르고 있었다. 냄새로 미루어 마을의 생활하수임에 틀림없는 그 물은 해수욕장으로 사정없이 합수되고 있었다.
선글라스 낀 우리의 이웃들은 그 물에 몸을 담그고 한 여름의 정취를 즐겼으리라. 천진난만한 우리의 아이들도 물장구를 쳐댔으리라. 끔찍한 현장이었다.

 *****

을왕리는 어떤 곳인가.
인천에서 서쪽으로 24km 지점에 용유도가 있고, 그 섬의 서쪽에 펼쳐진 1km의 해안이 바로 을왕리 해수욕장이다. ℧형으로 옴폭 파인 해안선이 특히나 아름다운 곳. 바다 쪽으로는 빛깔 고운 은빛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고, 뒤로는 마을이 정겹게 형성되어 있으며, 인가들을 둘러싸고 울창한 해송이 숲을 이룬 포구마을이다.
더구나 동북아의 허브공항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인천 신공항을 바로 옆에 둔 관광지역 아닌가. 풍치 좋은 곳을 찾아 다니는 세계의 여행객들이 인천공항에 내려서 곧바로 들를 수도 있는 곳. 어쩌면 관광 코리아의 첫 인상을 결정하는 곳일 수도 있다.     

*****

눈 앞에 어른거리는 몇 푼의 돈에 눈 먼 상혼들.
순간의 즐거움에 젖어 마구 먹고 마시고 버리는 관광객들.
다시는 오지도 않을 듯이 옹달샘에 오줌을 싸고 떠나는 못된 길손처럼 이들은 자연을 마구 훼손한다. 자신들이 배출하는 쓰레기와 하수가 자연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하늘이 내려준 이 자연이 자손만대 물려줄 공동의 재산임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가 이 아름다운 산과 바다, 모래사장의 임시 관리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이 지역을 관할하는 관청이나 공무원들도 관광수입과 세수(稅收)에만 관심 둘 뿐, 길게 보아 잘 보존된 자연이 더 큰 부의 원천임을 알지 못한다. 누구에게도 쓰레기장으로 변한 을
왕리의 미래를 의탁할 수 없는 현실이 절망적이다.

*****

을왕리 해수욕장은 내 마음 속에만 존재하던 로맨스의 공간이었다.
그러나, 허위허위 달려가 만난 을왕리는 우리 시대의 부정적 리얼리즘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환멸의 현장에 불과했다.

나 이제 다시는 상처받지 않으리라. 다시는 을왕리를 꿈 꾸지 않으리라.

                                                                        2003. 4. 5.


2003-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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