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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등감 버려야 지방대 산다(원제:대학인의 아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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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05-13 16:59 조회 178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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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조선일보 2003년 5월 8일자 시론으로 실린 글입니다.
원제는 '대학인의 아픔'입니다.

열등감 버려야 지방大 산다

 

차별은 사람들 사이에 갈등을 빚는다. 이민족들 간의 차별의식은 타고난 ‘차이’에 근거한다는 점에서 일견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동족 간의 차별이다. 그 가운데 신분계층의 높고 낮음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해 선택할 수 없다는 점에서 아주 고약하다.


              좋은 논문 대서특필 이면엔...


전근대의 불평등은 신분에 따라 인간을 차별한 데서 초래되었다. 오죽하면 남의 관작을 모칭(冒稱)하거나 거짓 족보를 만들어 신분을 위장하기까지 했겠는가. 대를 이어 인권을 유린해온 전통시대 제도적 폭력의 극치가 노비문서였다. 누구나 주체세력의 일원이 될 자격과 가능성을 지닌 것이 자유 민주주의 사회다.

이러한 대명천지에 대학 졸업장은 노비문서 못지않은 위력으로 수많은 인재들을 괴롭히고 있다. 고만고만한 대학들이 좁은 땅덩어리 안에 난립하여 갖가지 기준과 방법으로 차별의 향연을 벌이고 있다. 서울과 지방, 수도와 수도권, 강북과 강남, 일류대와 비일류대 등 정교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차별을 시도한다. 물론 일류 대학들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것도 아니다. ‘초일류대’와 ‘범일류대’라는 구분을 통해 그들 나름의 차별 또한 시도한다. 따라서 일류대의 울타리에 입성했다고 하여 모두 자신감과 우월감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우리나라는 초일류대에 속해있는 소수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열등의식에 휩싸여 살아가는 셈이다.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지방대의 공동화(空洞化)는 1차적으로 입학자원의 부족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사회적 차별이나 열등감으로부터의 절박한 탈출 욕구에 원인이 있다. 이 나라의 모든 분야에 고착되어 있는 차별들 가운데 학력 차별의 구조적 병폐는 말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하다. 대학 4년간 머리 싸매고 공부하여 제아무리 우수한 실력을 갖추어도 졸업장은 모든 것에 앞서서 그의 가치를 재단해 버리고 만다.

요즘 들어 부쩍 지방대 출신의 인재가 좋은 논문을 쓰거나 무언가 성과를 내면 언론매체들이 나서서 대서특필하곤 한다. 좋은 일이긴 하나,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문제가 없지 않다. 성과 자체보다는 그가 지방대 출신이라서 뉴스거리가 된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나라 언론매체의 편견도 대단한 수준이다. 만약 그가 미국 아닌 국내에서 그런 논문들을 발표했다면 그다지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른바 ‘마이너리티’의 실력을 인정할 만큼, 학벌을 중심으로 공고하게 짜인 우리 학계의 가슴은 열려 있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지방대 총장들이 국세(國稅)의 일부를 그들 대학에 지원해달라고 건의했다. 그러나 자칫 나랏돈을 퍼붓고도 지방대의 위기마저 해소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문제의 소지가 돈에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지방대의 위기는 우리 국민이 천형(天刑)처럼 앓고 있는 집단적 열등의식 때문이다.


                      모두 승복할 '평가잣대' 없어


고등학교 때의 성적으로 일류대에 입성한 사람들에게 보내는 무조건적 신뢰는, 한때의 부진으로 그 대열에 합류하지 못했으나 절치부심 실력을 연마한 여타의 사람들에 대하여 이유 없이 갖는 불신과 마찬가지로 위험하다. 우리 사회의 공통된 문제는 대부분의 구성원이 승복할 만한 평가의 잣대를 마련하지 못한 데 있다. 조령모개식 교육정책의 중심에는 대학입시 방법의 혼란이 있고, 대학입시의 파행은 적절한 평가방법의 부재로부터 온다. 대학교육의 부진 또한 교수와 교육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이런 바탕에서 기업을 비롯한 우리 사회 전체가 정확한 평가의 잣대를 마련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의 마음속에 도사린 집단적 열등의식을 청산하는 것만이 차별적 세계관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지름길이자 지방대 회생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조규익·숭실대 국문학과 교수)


2003-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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