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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둥이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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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05-13 17:00 조회 146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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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둥이의 추억


얼마 전 장경남교수가 쇼핑백 하나를 들고 연구실에 들어섰다. 허겁지겁 열어 본 즉 곱게 말려 다듬은 망둥이들이 그득 들어 있는 게 아닌가! 내 '망둥이 타령'이 생각나 고향 간 김에 모친께 부탁하여 얻어 왔노라는 고마운 설명이었다. 어제 집에 들어가니 태안의 서예가 동포선생이 부쳐온 마른 망둥이 한 상자가 거실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깨닫지 못한 사이에 내가 망둥이 타령을 흘렸고, 동포선생 또한 그걸 잊지 않고 있었던 모양이다. 장교수의 고향은 안산이니 나와 동향인 동포선생과 함께 우리는 서해바다 갯벌 출신이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망둥이에 관한 추억까지 공유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나는 가는 곳마다 망둥이 타령이나 하게 된 걸까?
40 중반을 넘어서면서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추억, 그 가운데 미각과 관련된 추억들이 새록새록 되살아 나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누군가는 말했다. 사람의 입맛이란 지문(指紋)보다 더 정확한 것이라고. 나이 먹어가면서 음식의 취향은 점점 어린 시절의 그것으로 되돌아 간다는 것. 그러니 그가 좋아하는 음식을 보면 그가 보낸 어린 시절의 삶을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 내 음식의 취향을 결정지은 것들 가운데 망둥이를 빼놓을 수 없다. 망둥이는 주로 바닷물과 민물이 합쳐지는, 갯벌이 발달된 연안에서 사는 물고기다. 좌우에 발달된 지느러미를 빨판처럼 사용하여 뻘탕을 기어 다니기도 한다. 사실 망둥이처럼 못 생긴 물고기도 없을 것이고, 그것처럼 '별 맛 없는' 물고기도 없을 것이다. 오죽하면 똑똑하지 못하고 좀 멍청한 사람을 가리켜 '얼간 망둥이'라고 할까. 사람들은 망둥이가 무언지는 몰라도 "숭어가 뛰니까 망둥이도 뛴다"든지, "장마다 망둥이 날까", "망둥이 제 새끼 잡아먹듯 한다"는 등 망둥이를 두고 만들어진 속담들은 잘도 쓴다. 그만큼 어느 시절까지는 우리 주변에서 흔하디 흔했던 물고기 중의 하나가 망둥이였을 것이다.


내 고향은 갯벌이 잘 발달된 서해안에 있다. 그곳에서 가장 흔하면서 맛도 있고, 잡는 재미 또한 느낄 수 있는 것이 망둥이였다. 어느 집에나 망둥이 낚싯대 한 두 개 쯤은 갖추어져 있었다. 투박한 낚시와 납으로 만든 봉돌을 청울치 노끈에 달아매고 짤막한 왕대나무 낚싯대에 묶으면 낚시 도구로는 만점이다. 갯벌에 널려 있는 갯지렁이는 최고의 미끼였다. 낚싯대를 통해 전해오는 망둥이의 힘찬 몸부림, 그 손맛 또한 그만이었다. 당시 고향의 장정들은 틈만 나면 망둥이 낚시질에 나섰다. 물 때를 맞추어 수십 리나 되는 바다로 나가서 하루 종일 물에 하반신을 담그고 망둥이를 낚는 것이 농한기의 일과였다. 돌아오는 그들의 다래끼에는 번들번들 윤기나는 망둥이들로 그득했다. 그들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망둥이의 내장(내장이래야 별 것 없다. 망둥이의 턱 밑에 왼손의 엄지 손톱을 대고 오른 손 엄지 손톱으로 망둥이의 아랫 부분에서부터 밀어 올리면 병아리똥만한 내장은 쉽게 빠져 버린다)을 빼고 다듬는다. 다듬질이 끝난 망둥이에 설렁설렁 소금을 뿌린 다음 댓가지에 가지런히 꿰어 햇볕에 말리면 가공은 끝나는 것이다.


어른들처럼 아이들의 일과도 대개 망둥이 낚시였다. 학교에 모인 아이들은 망둥이 낚시에 얽힌 무용담과 전과(戰果)에 대한 자랑으로 긴 하루를 보내곤 했다. 어떤 녀석은 가끔 팔뚝을 훌렁 까보이며 자신이 잡은 망둥이의 크기를 과장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경쟁이 지나쳐 주먹다짐을 나누는 일이 예사였다. 어쨌든 꽁보리밥과 밥솥에 쪄낸 간망둥이 몇 마리가 그들 도시락 내용물의 전부였다. 도시락에서 꺼낸 망둥이들의 길이를 재보며 무용담의 진위 여부를 가리는 것이 당시 점심시간에 일상적으로 벌어지던 풍경이었다. 나는 망둥이 잘 잡는 그들이 너무나 부러웠다. 그들로부터 가끔씩 망둥이를 얻어 먹으며 나는 결국 '멋진 망둥이 낚시꾼'이 될 수 없을 거라는 좌절감에 젖기도 했다. 별 볼 일 없던 내 망둥이 낚시 실력 때문이었지만, 아버지 역시 망둥이 낚시에 별반 관심이 없으셨던 관계로 다른 아이들에 비해 망둥이 맛을 볼 기회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망둥이와의 만남은 학교 점심 시간이 고작이었다. 그 시절의 점심 시간에 맛본 친구들의 망둥이가 유년기의 상처 받은 자존심과 함께 미각의 지문으로 이토록 오랜 동안 남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순갱노회(蓴羹 膾)', 곧 '순채 국과 농어 회'라는 뜻의 고사(故事)가 있다. 진(晉)나라의 장한(張翰)은 고향의 명산인 순채 국과 농어 회를 잊지 못해 관직을 사퇴하고 고향에 돌아갔다. 그 고사로부터 나온 '순갱노회'의 성어(成語)는 '고향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정'을 뜻한다. 순채 국과 농어 회가 무엇이관대 소중한 벼슬까지 버렸는지 세속의 때에 찌든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지만, 나이가 들수록 잊기 어려운 게 고향의 맛임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망둥이는 참으로 물고기 중의 '촌놈'이다. 숭어나 농어 등 귀족(?) 물고기들에 비하면, 생긴 것도 맛도 지독하게 촌스러운 녀석이다. 궁벽한 고향을 떠나 도회에서 30년 세월을 보낸 나 역시 아직 촌놈의 티를 벗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망둥이고, 망둥이는 바로 나인 셈이다. 근래 되찾은 망둥이의 추억은 그간 잊고 있던 고향의 맛이요, 따라서 '망둥이의 추억'은 바로 '나'에 관한 추억이다.   


망둥이들의 서식처인 고향의 갯벌은 이미 사라졌고 망둥이들도 저 멀리 사라져 버렸다. 지금, 말린 망둥이를 잊지 못해 모든 걸 팽개치고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나 어디서 '잃어버린 고향'을 찾을 수 있단 말인가?
                                                                          2003. 5. 11.


2003-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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