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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총리 재신임 이해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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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05-13 17:01 조회 150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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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교육부총리 재신임 이해못해


참여정부 출범 100일은 행동보다 앞선 말, 때와 장소에 따라 달라지는 말 때문에 점수를 크게 잃은 기간이었다. 인간의 생각은 말로 표출되는 것이니 생각이 달라지면 말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생각과 말에 일관성을 잃어서는 안 된다. 사람들에게 믿음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말이 일관성을 잃으면 한없이 가벼워지고, 가벼워진 말이 국가적으로 확대되면 재앙을 불러온다. 그 예증이 교육부 장관의 경우다.


말 바꾸기로 지도력 상실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을 두고 취임 초부터 말이 많았고, 여러 번 바뀌기도 했다. 급기야 전교조와의 타협안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정치적 결단 운운’함으로써 쉽게 주워담을 수 없는 실수까지 보태고 말았다. 결코 정치적으로 재단될 수 없는 분야가 교육이다. ‘교육이 백년대계’란 말은 식상할 정도로 반복되어 왔으나, 왕년의 교육부 장관들로부터 ‘정치적 결단 운운’의 말을 들어본 적은 없다.

실상이 그렇더라도 최소한 교육부 수장으로서 할 말은 아니었다. 교육행정정보시스템에 관해 교육부가 해결해야 할 일을 일선학교에 미룬 것은 일관성을 잃은 말, 불합리한 말들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어린 학생들과 국민들이 관전하는 가운데 싸움판만 전국의 교육현장으로 확대된 셈이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바뀌어서는 안 되는 게 있다. 가르치는 자, 다스리는 자의 말과 행동이 지닌 무게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양보할 수 없는 진실과 일관성이 확보되어야 말은 무게를 갖기 시작한다. ‘말 못하는 사기꾼 없다’는 속담에서 ‘말’은 거짓을 실어나르는 도구다. 아침의 말과 저녁의 말이 다르고 이곳에서 한 말과 저곳에서 한 말이 다르면 대부분 거짓이다. 군자와 사기꾼의 말은 그런 점에서 다르다.

묵적(墨翟)은 말 하는 방법에 세 가지가 있다고 했다. 생각하고 나서 말하는 경우, 추측하고 나서 말하는 경우, 바로 실행으로 옮기는 경우 등이다. 성인들의 언행에 합치될 때 비로소 할 말을 하는 것은 첫 번째의 경우다. 듣는 상대편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추측한 연후에 말하는 것은 두 번째의 경우다. 정치의 현실과 백성들의 심정에 비추어 앞으로의 계획을 세운 연후에 말하는 것이 세 번째의 경우다.

묵적이 강조한 것은 다스리는 자의 말이 갖는 무게와 실천 여부다. 의도와 실천 사이의 ‘일관성’으로 입증되는 것이 말의 무게다. 실천으로 연결되지 않는 말은 거짓일 뿐이다. 장관이 묵적의 말처럼 ‘정치의 현실과 백성들의 심정’을 헤아리고 나서 말했더라면 이 땅의 교육대란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최소한 처음의 생각을 일관성 있게 행동으로 옮기기만 했어도 갈등은 지금보다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다.

그런 장관에 대한 재신임을 천명한 대통령의 생각을 상당수의 국민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장관의 경질이 참여정부 전체의 문제를 자인하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일 것이라고 짐작만 할 뿐이다. 이 문제를 그냥 덮고 갈 수 없는 것은 장관이 전국의 교육자들을 이끌어야 한다는 사표(師表)적 측면의 지도력을 이미 상실했기 때문이다.


尹교육, 스스로 용퇴 결단을


그렇지 않아도 장관은 이해를 달리하는 각종 사회 및 교육단체들로부터 사퇴의 압력을 동시에 받고 있다. 교육부가 어떠한 체제를 선택하든 그 문제는 이제 본질로부터 떠나버렸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선택의 과정에서 보여준 장관의 일관성 없는 말은 국민들의 교육불신을 한층 더 심화시키고 말았다.

교육 관련 업무에 종사하는 누구도 초롱초롱한 아이들의 눈망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교육부장관으로부터 일선 교사에 이르기까지 1차적으로는 모두 선생님의 입장에 서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교육부총리의 용퇴는 이 나라 교육의 정상화를 위한 첫 단추일 수 있다.

(조규익 /숭실대 교수·국문학)

*조선일보 2003. 6. 4.


2003-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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