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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놈들 눈물 나게 만드는 성선경의 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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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2-01-23 20:17 조회 123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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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사람들 웃기지 못하면 시가 아니다.

촌놈들 울리지 못하면 시가 아니다.

잘난 놈들 고개 숙이게 하지 못하면 시가 아니다.

못난 놈들 기 살려주지 못하면 시가 아니다.

.

.

.

이런 말들을 '시론'이라 부를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지독한 촌놈인 저는 성선경의 시집을 읽다가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밀려 올라오는 용암 같은 눈물 몇 방울 떨구고 말았습니다.

아, 그 역시 촌놈이었구나!

'우째' 이다지도 나와 '코드'가 잘 맞아 떨어진단 말인가?

특히 '배추쌈'을 읽다가

저세상에 가신 아버지를 떠올리곤

한동안 멍한 상태로 창밖만 내다 보게 되었지요.


스스로를 '도회인'이라 자처하든

'촌놈'이라 생각하든

성선경의 시집 한 번 읽어 보시면

세사에 찌든 여러분의 마음은

순식간에 '정화'될 것입니다.

한 번 그의 시를 씹어들 보십시다.


성선경, "서른 살의 박봉 씨", 문학과경계사, 2003. 6천원



    배추쌈


오늘 점심은 아버지에 대한 묵념부터다

한철의 자린 땀내를 헹구어내시며

어머니는 싱싱한 배추 한 포기로 긍휼히

우리들의 한 끼 양식을 빛내주시지만

고린내 나는 된장을 한 숟갈 퍼질러

시퍼런 배춧잎을 입대로 뭉쳐 넣으면

한 입 가득 우물거리면 아 보인다

아버지의 풍작과 흉년의 한 해

잠시 허리띠를 푸는 하오의 햇살에

질긴 섬유질들이 힘줄을 튕기고 일어나

각질을 뚝뚝 분지르며 소리 지르는 아버지의

잘못 푼 답안 같은 민둥산의 생애가

쉬 말은 찬밥을 한 그릇 더 비운 후에도

이빨 사이사이에 끈끈이로 남는다

속살을 헤집어 권하시는 어머니의

눅눅한 눈치를 살피며 숟갈을 놓으며

아버지 감사히 먹었습니다

감사히 먹었습니다 입가에 발린

밥풀들을 뜯어 목구멍으로 쓸어 넣으면

겉배 부른 트림을 토해 놓으면

위 안 가득 고이는 침몰의 바다

시퍼런 배추쌈의 점심을 마치면

정말 오늘부터는 아버지에 대한 묵념까지다.


2003-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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