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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옴) 영화 '오만과 편견'은 러브스토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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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2-01-24 01:38 조회 102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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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만과 편견'은 러브스토리인가?


사랑?  가난한 집안의 다섯 자매가 부자에게 시집을 가기 위해 벌이는 한바탕의 전쟁을 사랑이라 말할 수 있을까. 결혼은 여자의 ‘팔자(八字)’를 고치는 것이라는 옛말은 18세기 영국의 베넷가(家)에서도 어김없는 사실이었다. 물망에 오른 네 남자. 빙리, 다아시, 콜린, 위컴. 그리고 제인, 리지(엘리자베스), 메리, 키티, 리디아, 이렇게 다섯 여자가 있다. 빙리와 제인이 눈이 맞고, 다아시와 리지와 서로 기묘하게 끌리게 되고, 콜린은 제인에게 마음을 뒀다가 임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꿩 대신 닭’이라며 리지에게 청혼한다. 물론 보기 좋게 퇴짜를 맞지만 말이다. 사기꾼 냄새가 나는 장교 위컴은 막내 리디아를 데리고 달아나 결국 결혼에 이른다. 콜린은 리지의 친구 샬롯과 결혼한다.


베넷가의 모든 여자들은 예쁘고 순수하지만, 가진 재산이 없다. 그나마 있는 재산마저도 ‘남자 친척’인 콜린이 상속하게 되어 있다. 그들의 결혼은 애초에 사랑의 결실이 되기 어려워 보인다. 부자인 빙리, 그보다 더 부자라는 친구 다아시, 그리고 재산 상속자인 콜린, 다아시의 집에서 길러져 그집 돈을 뜯어먹고 살아온 위컴. 네 명의 캐릭터를 들여다 보면 ‘부자’라는 사실 자체가 인간의 덕성과 결부되는 듯이 보일 정도이다. 제인 오스틴이 살았던 시대의 꿈과 현실을 반영하는 부자관(觀)이 아닐까 싶다. 원작 소설은 ‘상당한 재산을 가진 독신 남성에게 아내가 필요하다는 것은 세상사람들의 공통된 생각이다.’로 시작한다. 남자가 지닌 부(富)는 여자의 행복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이다. 여자는 자신의 매력을 최대한 활용하여 운명적인 짝짓기에 성공해야 한다. 지난 시대의 비참에 가까운 성적인 예속 상태를 함의하는 저 돈과 매력의 노골적인 거래는, 이 영화에선 ‘문제’로 부각되지 않는다. 흠, 그런데, 200년 이후인 지금의 현실 속에서도 그 거래는 설득력을 지닌 풍자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영화는 아름답다. 자연과 고풍의 건축물들이 어우러지는 풍경이 낭만적인 미감을 돋우고, 리지와 다아시 등 등장인물들의 미묘한 내면이 그림처럼 읽힌다. 영화가 주는 이런 행복한 고양감(高揚感)을 ‘서비스’로 본다면, 특A를 기꺼이 주고 싶다. 이미 잘 알려진 플롯과 상투적인 결말인데도 영화는 지루하지 않고 전에 알던 ‘오만과 편견’이 낯설어질 만큼 새롭다. 새벽 아슴한 안개를 뚫고 한 줄기 빛이 터져나오는 시각. 귀를 씻는 듯한 피아노 소리가 울려퍼지는데 카메라는 들판에서 책이 읽으며 걷고 있는 한 여인을 찾아낸다. 리지다. 그녀가 집으로 들어오면서 베넷가의 이곳저곳이 구석구석 비친다. 평화로운 집. 그곳에서 들려오는 여자들의 수다들로 평화로움은 더욱 고조된다.


빙리의 집에 초대받은 언니 제인이 감기로 앓아눕자 그를 찾아가는 리지. 카메라는 비 내린 들판을 가로질러 걸어가는 그녀의 모습을 롱샷으로 잡는다. 빙리가 연 무도회에 갔던 리지가 다아시와 춤을 추고난 뒤 마음이 상해서 벽 뒤에 숨어있는 장면을 찾는 카메라워크도 인상적이다, 마치 사람이 찾는 눈길처럼 베넷가의 사람들을 비추다가 좁은 곳으로 들어와 그녀를 가만히 비춘다.


다아시가 처음 프로포즈를 했다가 실패하는 비오는 옛건물 장면도 강렬하다. 언니의 일로 잔뜩 오해하고 있던 리지는 다아시를 몰아붙인다. 그녀는 말한다. “당신이 이 세상에 남은 마지막 남자라 할 지라도 절대 당신과 결혼하지 않을 거예요.” 그때 격해진 두 사람 사이에 마치 키스를 할 듯한 기묘한 성적 긴장감이 생겨난다. 침묵과 말 사이. 남녀 사이에 흐르는, 말과 다른 심리가 비냄새 가득한 공기에 실려 관객의 후각에 전해진다.


새벽녘 산책을 하던 리지와 다아시가 만나는 클라이맥스는 약간 작위적인 냄새가 풍기지만, 감독은 ‘CF의 장면’과도 같은 사랑의 환상을 만들어낸다. 그때 나누는 대화. “일요일에는 ‘나의 진주’, 아주 특별한 날에는 ‘나의 여신’, 가장 기쁘고 완벽할 정도로 행복할 때는 ‘Mrs. 다아시’이라 불러줘요.” 이런 리지의 주문에 다아시는 말한다. “ Mrs. 다아시! Mrs. 다아시! Mrs. 다아시!!!"


나는 ‘오만과 편견(Pride & Prejudice)’은 알맞지 않은 번역이라고 생각한다. pride는 ‘자존심’이라고 풀어야 적당하지 않을까 한다. 다아시는 베넷가의 사람들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편견이라기 보다는 흔히 가질 수 있는 '관점'인데, 이것이 이야기를 얽히게 하는 갈등의 고리가 된다. 즉 ‘베넷가의 자매들이 실제로 사랑의 감정도 없으면서 부자와 결혼하기 위하여 거짓 사랑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영화를 보는 관객으로서도 그렇게 밖에 보기 어려운 점이 있긴 하다. 이런 이유로 다아시는 빙리의 결혼을 말린다. 그리고 자신 또한 리지에게 끌리는 마음을 억누른다.


리지는 자존심이 상했다. 스스로 돈 때문에 사랑 없이 결혼하지는 않을 거라고 굳게 마음 먹어온 그녀에게, 다아시의 저런 관점은 모욕에 가깝다. 리지가 청혼을 거부했을 때 다아시는 자존심이 상했다. 자존심 때문에 사랑을 숨겨왔던 그였다. 리지에게도 다아시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다. 장교 위컴이 귓속말로 넣어준 ‘잘못된 정보’이다. 둘의 언쟁은 서로가 가진 편견과 오해를 풀어주는 계기가 된다. 리지는 다아시에게 언니 제인이 말수가 적고 수줍어서 그렇지 정말 빙리를 사랑하고 있다는 점을 말해준다. (이 일 이후 빙리는 다시 제인과 맺어진다.) 그리고 다아시는 위컴이 거짓말을 했음을 알게 해준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우연한 일이 생겨 리지가 다아시의 저택에 갔을 때이다. 거대한 정원과 아름다운 집을 황홀하게 살피는 여자의 눈길. 다아시와 결혼하면 이 모든 것이 ‘내 것’이 될 수 있는 것인데...카메라는 리지의 욕망에 버무려진 사랑을 천연덕스럽게 캐치해낸다. 어떻게 보면 이 장면은 여성에게 가장 굴욕적인 장면일지도 모르겠다. 이 완전한 복권(福券) 앞에 이성적인 잣대는 무의미한 것일까. 그녀가 다아시를 ‘사랑’하게 된 것은 바로 이날 본  ‘재산의 아름다움’이 아닐까. 그렇게 말하면 실례일까.


다시 묻는다. 대체 사랑이란 무엇인가. 돈이 보장하는 행복의 위력 앞에, 자존심과 편견 따위는 사실 ‘사랑’임을 인증받으려는 자잘한 제스추어가 아닐까. 다아시는 자신의 '편견'을 버렸지만 관객인 나는 아직까지도 그 '편견'의 일부를 붙든 채 쓸쓸해하고 있으니 그것 참 희한하다. 영화는 해피엔딩을 했는데 뭔가 슬픈 기분이 남았다.


이렇게 말하는 게 옳을지 모르겠다. 그래, 돈이 사랑을 당기는 건 사실이야. 하지만 ‘사랑’이란 어떤 상황에서도 피어날 수 있는 것이거든. 어떤 척박한 관계 속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는 것이거든. 다아시와 리지의 사랑에 돈냄새가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정말 순수한 사랑을 한 거잖아. 그러니까 사랑은 돈보다 더 강하고 귀한 거야.  



[출처] 빈섬견문록 (http://blog.joins.com/isomkiss/)


2006-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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