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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서부에서 만난 아름다운 교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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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2-01-24 02:14 조회 9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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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서부에서 만난 아름다운 교회들


해안도로를 달리다가 고운 모습으로 솟아있는 십자가를 보았다. 그 힘에 끌렸는가, 한림읍으로 들어갔다. 햇살은 그리 쌀랑하지 않은 남국의 봄바람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저 아래로 항구의 물이 빼꼼히 보이는 언덕바지에 성당은 자리 잡고 있었다. 한림성당. 이름만큼이나 곱고 한가로워 보였다. 담장은 예의 그 제주 돌담. 안마당에는 야자수가 훌쩍 큰 키로 나그네를 맞아 주는데, 그 그늘에 김대건신부가 서 있었다.

좌우로 십자가를 세운 두 개의 첨탑이 옹위하고 있는 본당. 파사드라 할 수 있는 본당의 앞면에는 두 천사의 호위를 받으며 성모 마리아가 앞을 굽어보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제대 좌측에는 마리아 그림이, 우측에는 삼위일체 그림이 분위기를 차분하게 갈아 앉히고 있었다. 신도 석은 어림하여 100~150석이나 될까. 작고 아름다우면서도 평화로운 성소였다. 기품도 갖추고 있었다. 2005년에 50주년을 맞았다니, 적지 않은 세월이 흐른 셈이다.  

거기서 제주시 방향으로 10분쯤이나 달렸을까. 갑자기 언덕 위로 참한 교회가 나타났다. 급히 핸들을 돌려 좁은 주택가를 비집고 들어갔다. 작고 아름다운 교회, ‘금성교회’였다. 북제주군 애월읍 금성리에 자리 잡고 있는 개신교의 성소였다. 어쩜 이렇게 깔끔하면서도 ‘유쾌한’ 모습으로 교회를 지을 수 있었을까. 십자가가 굽어보고 있는 성전 안은 비어 있었지만, 단정하면서도 조용하고 엄숙했다. 그 적막을 깰까봐 살금살금 돌아 나오는 발길이 가벼웠다.

이렇게 제주 서부에서 만난 두 성전은 작지만 영성(靈性)으로 충만해 있었다. 특이한 체험이었다.

                       ***


유럽 여행 중 어디에서나 목격할 수 있었던 성당과 교회들의 호화로움이 나를 질리게 했다. 참 아름답고 고풍스럽긴 하지만, 사치스러울 정도로 호화롭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예컨대, 멜크 수도원에서는 ‘쳐 바른 듯한’ 황금(빛) 때문에 어질어질할 정도여서 도망치듯 빠져나온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주님이 과연 그토록 호사스런 성전을 원하셨을까? 물론 신에 대한 인간의 믿음과 충성, 그것을 만분지일이라도 표현하려 한 결과일 테지만. 그럼에도 그걸 보면서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한 것은 왜일까? 어쩜 인간의 역사는 신의 섭리나 세계의 본질로부터 자꾸만 멀어져 온 도정(途程)이 아닐까 생각해보는 요즈음이다.


                        ***


아기 예수와 부모, 경배 드리러 온 동방박사들, 그리고 그들이 모여 있는 마구간. 어쩜 그 광경이야말로 진정한 교회나 성당의 본래 모습이 아니겠는가. 엄청난 성전 건축에 힘을 바쳐 온 기독교의 역사를 생각하며, 오늘 만난 두 성전의 아름다움을 가슴에 새기고자 한다.    


2007. 2. 24.


제주 애월에서


백규


2007-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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